네 번째 직장 이직 전 나의 모습
올해로 직장생활 30년째이다. 3월부터 새로운 일터에서 근무하는데 나의 네 번째 직장이다. 그동안 공공기관에서만 근무했는데 이직 당시에는 나름대로 이유를 내세웠다. 첫 직장 근무 9년 이후 첫 번째 이직에는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서울을 떠날 수 없어서였고 두 번째 이직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다며 싫다던 세종 근무지로 왔다. 각각 10년을 근무했다. 서울에 집을 두고 세종에 조그마한 오피스텔을 얻어 10년을 지냈다. 이번에는 가족과 서울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이직을 결정했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지만 다시 서울로 돌아오고 싶었다. 이유는 마음대로다 실상은 10년간 지겨웠던지 아님 사람이 싫었을 것이다. 마침 서울에 있는 민간 기관에서 제안을 해 왔고 이 기회가 지방을 탈출할 마지막 기회임으로 알고 냅다 받았다. 50대 후반에 접어들었는데 주위에 친구들 보니 일찌감치 퇴직하거나 일부는 임금피크로 급여가 삭감되어 회사생활을 하는 친구가 많다. 물론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대표 등 좋은 대우를 받고 일을 하는 친구가 있지만 많지 않다. 그래서 서울로 돌아왔고 이 나이에 이직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지난해 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남은 휴가 올해 휴가 몰아 사용하느라 근 3개월을 쉬었다. 젊은 친구들이 말하는 꿀 빠는 시간이었다. 계획에는 기타 등 악기를 배우고 싶었고 책도 많이 읽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책은 많이 읽었는데 기타 교습은 실패했다. '숨고' 연락처만 메모해 두었는데 연락도 못했다. 이건 좀 후회스럽다.
바쁘지도 않았다. 마침 연말이고 조직을 떠난다는 핑계로 여기저기 저녁 약속 자리가 많았다. 지난 30년간 여러 사람 만나면서 네트워크 많이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50대 중반부터 의미 없고 2년 이상 연락 않는 인맥들은 전화번호에서 지워나갔는데 그 저녁자리 때문에 오랜만에 연락된 지인들 만나느라 결국 하고 싶은 일을 못했다. 역시 매 저녁마다 참석자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대부분 비슷하다. '떠나서 아쉽다', '연락 자주 하자' 등등 이런 말들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약속을 참석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정말 좋은 시기였고 재충전할 수 있는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3월부터 새로운 기관에서 일한다.
여러 저녁자리는 참석했다지만 지난 30년간 일과시간 즉, 낮시간에는 오롯이 내 시간이었고 혼자 보냈다. 인맥을 과시하며, 내가 먼저 연락하던 직장생활에서 전화화 메일을 수시로 확인했던 내 모습과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이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와이프의 기상시간에 맞춰 내가 챙겨 먹는 아침식사와 커피를 마시는 딱 한 시간이 내 머리를 깨운다. 출근하면 테이크아웃 커피 혹은 머신으로 채워와 내 책상에 놓고는 할 일을 챙겼다. 그러나 물을 마시고 사과를 깎고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1시간 남짓의 루틴이 바쁘다. 주방에 앉아 있지만 일터 책상에서 마시는 커피와 다르게 향을 느낄 정도로 여유롭고 여러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생각이다. KBS 클래식 FM을 켜던, 전날 읽지 못한 책을 펴던 내 마음이다. 사람이 드문 오전 피트니스 센터에서 마음껏 운동한다 하고 싶은 기구들 다 사용했는데도 사람이 적어서 긴 시간이 필요 없다. 샤워장에서 뜨거운 물로 땀을 씻어내고 찬물로 헹구어 내는 기분이 하루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절정이다. 운동을 하며 근육을 깨웠다면 찬물 샤워는 그 활기를 유지해 주는 영양제이다.
점심 메뉴도 내 마음이다. 전 직장에선 구내식당에 대한 불만이 있었고 차가 없어 근처 상가까지 걸어가 혼자 평범한 국과 찌개를 시켜 먹고 오후 업무에 복귀한다. 저녁에는 내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배고프고 내가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마음을 갖는 순간 햄버거와 탄산음료를 메뉴로 선택해도 '굳초이스'이다.
혼자 지내는 방법을 찾은 건지 아니면 나잇값을 하는 건지 혼자 있어도 집에서 TV를 켜지 않는다. 조용한 집이 싫어 TV 채널을 스캔해 가며, 의도에 없는 프로그램 혹은 뉴스를 켜 놓고 사람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TV 리모컨에 손이 안 간다. 태블릿을 보면 대부분 뉴스를 보았는데, 태블릿 충전한 지도 꽤 오래된다. 즉, 세상이 나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난 일방적으로 관심을 두고 업데이트에 강박이었다.
계획에 없이 강릉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도착해 현지 시장에서 밥 먹고 버스 타고 해변 가서 바다보고 차 마시고 다시 낯선 거리를 둘러보며 기차 타고 왔는데 머릿속이 개운하다. 춘천도 가봤고 광주도 다녀왔다. 여행이라기 보단 바람 쐬는 당일치기 일정인데 왜 진작 못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려, 앞으로도 틈나면 다른 도시도 가고 싶다. 세상 좋아져서 손해 휴대전화만 있으면 밥값 교통비 다 해결되니 배낭 메고 거추장스럽게 여행객 행세도 필요 없다.
나를 위한 커피, 운동, 책 읽기 그리고 쉼이 좋아지니 내가 나다워지는 느낌이다. 절정은 기도이다. 12월부터 휴가를 쓰기 시작했으니 천주교에서는 크리스마스와 부활 사순시기가 내 휴가기간에 있었고 두 달 내에 고해성사도 했다. 보속을 실천하고 또 무사히 전 직장에서 업무를 마침에 감사하며 헌금도 꽤 많은 금액을 내었다.
50대 중반에 느낀 최고의 행복을 느꼈다.
30년 공공기관에서 처음으로 시장에 나왔다. 물론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쉬는 기간에 나를 채워봤다. 앞으로 있을 여러 상황에 감사하며, 사색하고 나를 위하고 그리고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 준 이번의 이직 기회가 고맙다.
Brvo,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