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15분 거리에 롯데콘서트홀이 있다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내겐 작은 행운이다. 지난달 마음먹고 이 좋은 콘서트홀에 공연일정을 찾아보다 4월 4,5일에 Zweden 지휘의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 7번 교향곡 '레닌그라드'를 발견하고는 와이프 허락도 없이 4일 공연표를 예매해 그야말로 소풍 기다리는 아이 마음으로 4월 4일을 기다렸다. 느지막이 있는 즉 6시에 마치는 회의에 멀리서 오신 분들에 저녁 대접도 없는 것으로 하고 콘서트홀로 향했다.
아니, 베토벤, 모차르트, 브람스 레퍼토리도 아니고 요즘 클래식 아이돌 임윤찬 연주도 아닌데 이렇게 사람이 많단 말인가. 하긴 쇼스타코비치 곡 연주는 그리 많지 않았고 간혹 있다라도 교향곡 5번이 대부분이었다. Zweden의 레닌그라드 연주를 나만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첫 곡은 Elga의 첼로협주곡이다. 협연자는 Daniel Muller-Schott인데, 역시 그는 요즘 섭외 1순위답게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는 활질을 했다.
인터미션 후 기다리던 레닌그라드 교향곡이 시작된다. 악장을 비롯한 현악기 모든 연주자가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내가 기대한 대로 대담하게 시작했다. 물론 제1악장은 정신없이 몰아치고 집중력이 높은 훌륭한 연주였다. 앙증맞은 드럼이 점점 크게 되며 내 촉감을 긁는다. 이후 나머지 2, 3, 4악장도 Zweden의 지휘에 의한 시향의 연주는 쇼스타코비치의 마음을 아는지 무척 아름답게 연주되었다. 직접 들으니 더할 나위 없는 대곡이다. 그렇게 70분의 연주가 끝났다. 물론 내가 느끼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지 않기도 했지만 Zweden의 레닌그라드 교향곡 지휘스타일 인 듯하다.
이곡이 공개될 당시 아름다운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의 침략을 받고 있었고 거리에는 시체가 쌓여가는 생지옥이었다고 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침공을 두려워하고 1악장에서 드럼소리로 묘사했다. 앞에서 난 앙증맞다했지만 독일군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저벅저벅, 하나, 둘, 하나, 둘 소리가 들려오면 독일군은 국경을 넘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곡이 아름답게 연주되고 표현되지만 이 곡의 초연은 비장했겠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을 파시즘에 맞서는 고향 레닌그라드에 바친다 했다. 죽은 자들의 도시였던 레닌그라드가 그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공개 20년 후 쇼스타코비치는 1941년에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바비야르(Babi-Yar)에서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 학살 내용을 기리는 교향곡 13번 'Babi- Yar'를 발표한다. 남성 성악이 비장하게 시작하는 13번 교향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폭력을 고발하고 이념이 아닌 휴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레닌그라드 즉,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전장이 형성되어 있다. 죽은 자들의 도시가 생겨날 수 있는 위기이다.
세상과 거리를 두지 않았던 쇼스타코비치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음악으로 전쟁반대를 표현하고 죽은 자들을 위로할까.
* 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을 즐겨 듣는다. 러시아 곡은 러시아, 슬라브계 지휘자가 연주해야 꽁꽁 언 술집에서 보드카 마시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언젠가 (좋아하는) 번스타인 지휘의 뉴욕필이 연주하는 레닌그라드를 CD로 들어보았다. 배 나온 아저씨가 거하게버번위스키 한잔 한 채로 뒤뚱거리는 맛이어서
뉴욕필 출신 Zweden도 그렇게 연주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4월 4일 연주는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