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알면서도 크게 와닿으며 살진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말이 내 일상에도 접목이 된다는걸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화장실 수도꼭지가 그 시작이었다.
수도꼭지는 늘 사용하기에 물때가 끼기 쉽고 물 얼룩이 남아있다. 그저 그러려니 하거나 한 번 씩 날을 잡아 청소해주는 정도였다.
어느 날은 손을 씻다가 수도꼭지를 함께 문질러 닦아보았다. 금세 깨끗해지며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아, 굳이 날을 잡지 않아도 되구나. 세수하거나 손 씻을 때마다 한 번씩 닦아주면 늘 깨끗한 상태가 될 수 있구나.'
그 뒤로 우리집 화장실 수도꼭지는 늘 반짝반짝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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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숙명인 설거지에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다.
나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스타일이다. 스스로도 알고 있는 성향이라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 모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며 살고있다.
설거지 할 때마다 늘 싱크대 안에있는 그릇들부터 시작했다. 하나씩 씻어내고 나면 그제서야 식탁위에 아직 설거지를 기다리는 접시나 식기류들을 다시 발견하곤 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일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그만큼 기운빠지는 일이 없다.
이제는 설거지 하기 전에 식탁을 한 번 훑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튀어나온다. 인덕션 위에 있는 요리할 때 썼던 집게, 가위 등.
이 모든 과정을 겪고나서야 깨닫는다. 나는 늘 하나를 보며 움직였고 그래서 같은 일도 두 번하게 되는 것을.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내 성격이 여실히 드러나는 생활 습관이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한다.
설거지를 끝내는 기준은 싱크대 안이 아니라, 주변까지 모두 정리된 상태여야 한다고.
밥을 다 먹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식탁까지 닦아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야 비로소 ‘끝’이라고 느껴진다.
그렇게 해두면 신기하게도, 우리 집 식탁은 늘 깨끗한 상태로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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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하나를 대하는지가 결국 내 생활 전체를 만들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변화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 순간에 한 번 더 둘러보는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