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이 풀리면 하원하고 꼭 들리게 되는 놀이터.
계단, 미끄럼틀, 균형 잡기 각종 놀이기구로 대근육과 협응 발달을 도와주고 동시에 또래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놀이 활동, 사회성을 길러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다. 그렇게 놀이터는 아이들만의 세계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끔은 그 속에서 오래된 나를 만나기도 한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첫째는 5살 남자아이(튼튼이)로 친구들을 특히 같은 반 친구들을 좋아라 한다. 어제도 놀이터에서 같은 반 친구가 보이자 들뜬 마음으로 친구 이름을 부르며 뛰어갔다. 그리고 친구 옆을 따라다녔다. 그 마음이 얼마나 큰지 지켜보고 있는 나는 다 느껴진다. 하지만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와 놀이를 하고 있었고 우리 아이에게까지 내어줄 여유는 없어 보였다.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아이를 불러 이야기해 주었다.
"튼튼이는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이만~큼 큰데, 친구는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친구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튼튼이는 엄마랑 놀면서 기다리자!"
아이도 이제는 이런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쉬워하면서도 민망한지 말을 돌린다.
이 순간이 묘하게 마음속에 남았다.
그리고 문득 알게 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온전히 튼튼이의 모습이 아니라 실은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이라는 것을.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 어울리고 싶을 때,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내 마음이 우선이었다. 어색한 타이밍에 말을 걸기도 하고 부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상대방에게 접근했던 기억들. 그때의 나는 그저 '인연이 아니었나 보다'하고 물러섰지만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관계란 마음이 앞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타이밍과 적절한 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향한 여유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튼튼이를 보며 생각한다.
이 아이는 지금 실패감을 느낄까 아니면 배우고 있음을 느낄까.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큰 아이는 그만큼 더 다가가고 그만큼 더 많은 거절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타인에 대한 마음을 살피고 기다림을 배우고 상대방의 표정을 배운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좋은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일 것이다.
같이 놀래?라고 물어보는 법, 기다리는 법, 거절당해도 괜찮은 것.
무엇보다 혼자서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아이가 깨달을 수 있게 깨달을 때까지 옆에서 믿고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는 관계에 매달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아이 곁에는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인다. 웃으며 다가가고 편안한 에너지를 가진 아이, 우리 튼튼이가 그런 결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길 희망한다.
내 맘에 남아 있는 아이 시절 상처를 어루만진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어쩌면 5살 아이를 키우는 지금 뒤늦은 성장기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