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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다큐였다 — 순자엄마가 부러운 이유》

- 우리 가족을 시트콤처럼 바라보는 연습

by 은혜

유튜브 채널 ‘순자엄마’를 보다 웃음이 났다.

그런데 진짜 흥미로웠던 건,

엄마가 욕을 쏟아낼 때마다

그걸 받아치는 아들 ‘쫑구’의 자막이었다.



“십팔 조졌네.”

구독자 100만 명을 넘긴 유튜브 채널 ‘순자엄마’는 그렇게 시작한다.

김치 담그다 욕하고,

밥 차리며 욕하고,

아들한테도 서슴없이 소리친다.

“야, 이 쌍놈의 새끼야!”

그런데 그걸 받아치는 아들은 자막을 이렇게 단다.

“순자씨의 격한 아들 사랑 ”

욕을 욕으로 두지 않고,

웃음과 사랑으로 번역해낸다.


그걸 보며 나도 웃는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친다.

‘나는, 왜 우리 가족을 그렇게 바라보지 못했을까?’

순자엄마 아들은 엄마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신, 엄마의 삶을 ‘순자극장’이라 부르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다.

엄마의 욕도, 버럭도,

그저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받아낸다.

욕은 여전한데,

그걸 “사랑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순간—

가족은 싸우지 않고,

웃고,

서로를 놓지 않는다.

나는 그게 부러웠다.

그 시선이,

그 거리두기가.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우리 가족을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엄마가 김치 담그다 몸살이 났을 때—

“ 김치한테 당한 박여사”

엄마가 땀 뻘뻘 흘리며 잔소리할 때—

“엄마의 격한 딸 사랑 ”

물론, 그건 현실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 해석하고 싶은 바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가족을 덜 미워하고,

덜 싸우고,

조금은 더 오래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나도,

너무 다큐였던 내 시선을 내려놓고 싶다.

우리 가족의 삶을

한 편의 시트콤처럼 바라보고 싶다.

욕설도, 실수도,

그 안에 있던 사랑까지도—

웃음 섞인 자막처럼,

다정하게 기억하고 싶다.

이제야 조금,

내가 순자엄마 아들이 부러운 이유를 알 것 같다.


돌아가신 술꾼 욕쟁이 아버지도

술 드시고 만신창이로 들어오시던 그 모습,

그땐 너무 싫었지만—

만약 그날, 자막 하나만 달아줬다면 어땠을까.

“술이 아빠를 먹었네.”

“인생의 고뇌를 찰진 욕 한 바가지로 표현하는 중 ”

그렇게라도 웃으며 받아들였더라면,

아버지를 덜 미워하고,

덜 상처받고,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만 했더라면,

아버지도 우리 곁에서

조금 덜 외롭고,

덜 망가질 수 있었을까.


나는 이제,

내 가족에게 자막을 달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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