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
시부모님이 이사를 하면서 30년 묵은 살림살이를 정리했다. 구시대 유물 같은 물건들이 대량 발견됐다.
주방 뒤 창고 안에서 포장지 상자 째로 있는 그릇 박스들이 몇 개씩 나왔다. 심지어 상자에 먼지라도 묻을까 봐 비닐봉지로 한번 더 씌어 있었다.
"어머니, 여기 그릇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꺼내서 안 쓰신 거예요. 수저세트도 새 거가 한 상자 있네요"
그동안 시댁에 식구들이 한자리에 다 모이면 오합지졸 그릇들과, 수저세트들로 겨우 식구수에 맞춰 상 차리기 바빴다. 그릇이 부족해서 더 사겠다고 하면 "새 거 사지 마. 지금 쓰는 것도 겁나 많은디" 뜯어말리곤 하셨다.
안방 장롱 안에는 상자째 고이 모셔둔 내복과 속옷들이 한 보따리가 나왔다.
"맨날 다 낡은 거 입으시더니, 속옷 상자가 이렇게 많이 있네. 이거 다 언제 입으실라고요?"
속옷이랑 더 사러 가자고 하면 "새 거 사지 마. 장롱에 겁나 많아" 말씀하시곤 했는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오랜 세월 상자 안에 고이 모셔둔 물건들을 귀중품처럼 우리 앞에 내미신다.
"이거 느그들 가져갈래"
"어머니, 지금 저희한테 인심 쓰시는 거예요?"
형님과 나는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해마다 시골 논에서 농사지은 쌀이 올라오는데, 어머니는 기존에 먹던 쌀을 다 먹을 때까지 햅살을 꺼내서 드시지 않는다. 결국 해마다 묵은쌀을 먹고 있는 셈이다.
자식들에게는 아낌없이 퍼주면서, 90세에도 아까워서 못쓰면, 도대체 어머니는 언제 새 물건들을 마음껏 쓰시는 걸까. 너무 아끼다 똥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