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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의 이사 3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 59일 차

by 은혜

시부모님이 새집으로 이사하신 지 10여 일이 지났다.


"텔레비전이 왜 안 나오냐"


하루에도 몇 번을 전화하신다. 시모님은 두 분 다 귀가 잘 안 들리신다. 보청기가 있음에도 잘 사용하지 않아서

통화를 할 때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짐작컨대, 난청이 있는 어르신들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남의 말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일 확률이 높다. 남의 말에 관심이 높았다면, 그렇게 난청이 되도록 방치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생활이 불편해, 어떻게든 병원에 가서 "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적극적인 처치를 하며 살지 않았을까?


우리 시부모님 경우는 건강 등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인데, 유독 난청은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으신다. 아마도 난청이 크게 불편하지 않으신 듯하다. 소통 따위는 오래전에 물 건너갔고, 일상에서 꼭 필요한 대화만 주고받으며 사는 노부부의 모습이다.


내가 시집와서 30년 동안 겪어 본 어머니는 무정하고 아무 감정선이 없는 분처럼 보였다. 함께 사는 남편인 아버지 하고도 그냥 한집에 함께 기거하는 동거인 같다. 아버지가 무릎수술을 하셨을 때도 "나 아버지 간병 하기 힘든데, 한 달 정도 입원할 병원 없냐" 조용히 내게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께 무릎 재활을 핑계 삼아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도록 권유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나는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이런 마음으로 아버지와 사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집 앞에 한 바퀴 산책하고 온다더니 1시간이 지나도 집에 안 들어온다. 아버지 좀 찾아봐라"


시집와서 30년 동안 어머니가 아버지의 행적을 걱정하는 전화는 처음 받아본다. ' 때가 되면 집에 들어오겠지' 아버지에 대해서, 늘 이런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시던 어머니였다. 적어도 내가 아는 어머니 는 아버지가 멀리 외출 하신것도 아니고, 고작 외출1시간 정도로 걱정하실 분이 아니다. 어머니가 30년 만에 새로 바뀐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버지를 의지하기 시작한 걸까 (참고로 아버지는 길눈이 엄청 밝은 분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이혼직전인 부부가 함께 일본에 갔다가 지진을 만나, 함께 살아남으며 다시 관계가 반전되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어쩌면 어머니도 90세가 되어서야 아버지와 새로운 부부 관계 국면을 맞고 계신지도 모른다('사람들이 황혼이혼을 왜 하는지 그 속을 알겠다'라고 내게 하소연을 몇 번 하신 기억이 있다) 힘든 갈등 속에 살아가는 모든 부부들이 생존을 위협하는 극한 상황에서 함께 살아남으면 '과거의 갈등,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러면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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