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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100일 글쓰기(곰사람 프로젝트)-61일 차

by 은혜

옛날 어느 시골 장터에 김 씨 성을 가진 백정이 고기를 팔고 있었다. 하루는 두 젊은 선비가 고기를 사러 왔다. 첫 번째 선비가 “어이, 백정 쇠고기 한 근만 팔거라”하며 한 근을 샀고 또 다른 한 선비는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나 “김서방, 나도 쇠고기 한 근만 주게나”며 예의를 갖췄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똑같은 한 근인데 누가 봐도 두 번째 선비에게 준 고기가 곱절이나 될 만큼 분량이 많았다. 그것을 본 첫 번째 선비가 대뜸 큰소리로 “야! 이 백정 놈아, 왜 사람을 차별하느냐?”며 따지자 푸줏간 주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손님을 보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를 판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선비님에게 고기를 판 사람은 백정이었고, 저 선비님에게 고기를 판 사람은 김서방이었으니 고기 분량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남편은 말을 참 안 이쁘게 한다. "이거 왜 그렇게 한 거야? 안된다고 분명히 말했어. 한번 더 하면 끝이야" 따지는 듯한 공격적인 말투에 늘 협박당하는 기분이다. 게다가 인정머리 없는 그 특유의 표정까지 더해지면, 정말 기분이 더럽다. 특히 아이들에게 그런 태도를 보일 때 기분이 더 더럽다.


"아빠를 잘 견뎌내면 그 어떤 압박 면접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는 가끔 아들,딸에게 농담 반 진담반 얘기한다. 남편이 작정하고 한번 따져 묻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압당하는 장면을 가끔 목격하곤 했다.


지난주 시부모님 댁 이사는 90세 연로한 시부모님을 대신해, 대부분 남편이 준비했다.(시부모님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집이 불편해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처음은 6개월 전 집 계약부터였다.


워낙 검소한 시부모님 의 오래된 살림살이는 변변하게 없어서 몸만 나오다시피 했다. 이사 가는 새 집에는 거의 신혼집 살림 장만 하듯 모두 새로 사야 했다.


남편은 리스트를 작성하고 4개월에 걸쳐 가구, 가전, 숟가락 하나까지 꼼꼼하게 골랐다. 시부모님이 이사한 첫날부터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으시도록 완벽하게 풀세팅을 해놓은 것이다. 나도 그 꼼꼼함과 정성에 감탄이 나왔다. 문제는 남편의 안 이쁜 말뽄새다. 이사한 날에 아버지는 이사 예배를 드리고 싶은 모양이다.


"오늘 가까운 교회 사람 한 명 불러서 이사 같이 예배 드리고 싶다"


"안 돼요. 오늘 짐 정리 안 돼서. 우리 식구들끼리 예배드려요"


"친한 사람이라 짐정리 안 돼도 괜찮아. 내가 오늘 오라고 했어"


"왜요? 우리끼리 예배드리면 안 돼요? 안된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짐 정리된 후 부르세요"


남편 특유의 못된 표정과 못된 말투가 나온다. 아버지가 마지못해 포기하며 이사 예배는 가족끼리 마쳤다. 나는 아버지의 지금 기분을 너무 잘 알 것 같다. 나도 많이 당해 봤기에.


"내가 자식들 덕을 많이 본다. 고맙다"


큰 아주버님이 집에 오시자 아버지는 반색을 하셨다. (큰 아주버님은 외국에 사시는데 사업차 가끔 한국에 오신다. 이번에는 일부러 시부모님 이사 날짜에 맞추어 귀국하셨다 )아버지는 큰 아주버님께 몇 번이나 내가 자식복이 있다며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그때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이삿짐을 정리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남편이 6개월에 걸쳐 세심하게 부모님 이사 준비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혼자 일은 다 해놓고, 곱지 않은 말로 아버지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듣는 짠한 남편의 뒷모 습이다.


그동안 나와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상황이였겠지.

나는 오늘, 남편의 아픔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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