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의 대상은 문화산업의 발전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작권 침해가 늘어나면서 그 권리구제도 커다란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저작권 분쟁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조선일보의 관련 기사(김영철, 2011년 8월 1일)를 위주로 그 발생 경위와 소송 결과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짚어본다.
김동진은 1920년대 국내 최대 출판사이자 대형서점인 덕흥서림을 소유하고 있었고, 박해묵은 김동진과 공동으로 출판업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들은 1923년경 보성고등보통학교(현 고려대학교) 교수인 황의돈의 동의 없이 <신편 조선역사>를 그대로 복제하여 <반만년 조선역사>로 출판했다. 이에 대하여, 황의돈은 김동진과 박해묵(이하 ‘김동진 등’이라 함)을 상대로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서울지방검찰청)에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제기했다. 검사국은 이 고소사건에 대해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여러 사건에 묻혀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종결될 뻔했다. 그런데, 황의돈이 이에 대하여 항고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끄는 중대 사건으로 급부상했다. 더욱이, 한 개인이 당시 최대 출판사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한 것도 한몫했다.
이에 따라, 경성복심법원 검사국(서울고등검찰청)은 위 항고사건에 대하여 심층 조사를 진행했다. 황의돈은 1919년 총독부에 조선 역사에 관한 저술허가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원고의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원고의 내용을 고쳐 <신편 조선역사>를 출판했다. 그후, 김동진 등은 총독부 검열국 관리로부터 그의 원고를 빼낸 다음 무단 복제하여 <반만년 조선역사>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경성복심법원은 김동진 등에게 저작권 침해죄를 인정하여 각각 벌금 100원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종결되기까지 2년 남짓 걸리면서 공판이 열릴 때마다 주요 기사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외에도, 황의돈은 1926년 이들을 상대로 당시 거액인 9,700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민사사건은 1927년 황의돈이 김동진 등으로부터 손해배상금으로 500원을 받고 화해로 종결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저작권 분쟁이 5년 여의 장기간에 걸쳐 고소, 항고, 형사소송 및 민사소송까지 확대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저작자가 저작권에 대하여 중요한 가치를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저작자들이 저작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황에서, 황의돈이 자신의 권리 위에 잠들지 않고(non dormientibus) 적극적으로 행사한 것은 저작자들에게 권리의식을 함양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이 사건의 공판이 열릴 때마다 주요 기사로 자리 잡을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점에 비추어, 이 사건이 대중에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고취시킨데도 일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