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년 늦가을 저녁, 영국 중부 레스터셔. 네드 러드는 애니스톤 방직공장 문 앞에 서서 손에 쥔 해고 통지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36세, 그는 이 공장에서 21년을 일했다. 15살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날도 이렇게 추운 늦가을이었다.
열다섯 살의 네드는 토마스 크롬웰이라는 사람이 쥐여준 종이 한 장을 품고 런던을 떠났다. 추천장이었다. 추천장에는 애니스톤 공장의 주소와 찾아갈 사람의 이름, 그리고 추천인 크롬웰의 이름과 사인이 적혀 있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네드에게 집을 떠나 그곳으로 가라고 말했다.
"네드, 이걸 가지고 레스터셔로 가거라."
아버지 존 러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드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크롬웰이라는 분이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건가요?"
아버지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뿐이야."
네드는 아버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네드는 다음 날 집을 떠났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다.
"네드, 잘 도착했으리라 믿는다. 너에게 한 가지만 기억하라고 전하고 싶구나. 이 세상은 불의하다. 하지만 그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모든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살아남아라.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애니스톤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나흘 째 되는 날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확히는 기사가 났다. 존 러드가 크롬웰을 죽인 살인자이고, 체포되는 과정에 경관의 총에 사망했다는 말을 공장 사람들에게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네드는 그가 그의 아버지임을 부인했다. 어린 나이의 네드로서는 그 모든 사실이 무서웠다.
네드는 해고 통지서를 주머니에 넣고 공장 문을 나섰다. 21년.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죽기 살기로 일했다. 숙련공이 되었고,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 낳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기계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대 두 대 들어오기 시작한 기계는 이제 공정 전체를 메웠다. 한 대의 기계가 수십 명의 숙련공을 대신했다.
"미안하네, 네드."
공장장이 해고 통지서를 건네며 말했다.
"자네가 일을 못해서가 아니야. 하지만 기계가 더 빠르고 더 싸게 천을 만들어내니... 우리도 어쩔 수 없네."
네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21년 전 런던을 떠나던 길을 떠올렸다. 그때 그의 품에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크롬웰의 추천장.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해고 통지서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 헬렌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헬렌의 본명은 그레타 폰 베스트팔렌이었다. 그녀는 원래 독일 귀족 가정의 입양녀였다. 그녀 나이 열두 살에 가문이 경제적으로 몰락하자 쫓겨나 영국으로 건너왔다. 영국에서 헬렌 웨스트로 이름을 바꾸고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다 네드 러드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일찍 퇴근했어요? 당신 어디 아파요?"
네드는 우물쭈물했다. 그럴수록 아내는 더욱 그를 다그쳤다. 네드가 할 수 없이 해고 통지서를 꺼내 건넸다. 헬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날 밤, 네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세상은 불의하다.'
21년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이, 이제야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생각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문득, 오래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속해 있던 길드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어떻게 전통을 지키려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무너졌는지.
'아버지는 그 무너짐을 막으려 했던 건가?'
네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일자리를 추천해 준 크롬웰을 왜 살해한 것인지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의문은 평생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이었다. 왜 크롬웰은 자신의 아버지를 도왔을까? 그런 크롬웰을 아버지는 왜 살해한 것일까?
일주일 후, 네드는 런던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21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과거를 알고 싶었다. 화이트채플 근처에 온 네드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눈에 띄는 대로 선술집 '목마른 까마귀'로 들어섰다. 낡고 어두운 곳이었다. 네드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두 잔 째 비운 맥주잔을 테이블에 놓고 주인에게 손짓했다. 주인이 테이블로 오자 네드가 물었다.
"21년 전..., 이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토마스 크롬웰이라고..."
주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 지난 일을 다시 들추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왜 그런 옛날 일을 묻는 거요?"
"제가... 크롬웰을 죽인 존 러드의 아들입니다."
주인은 놀란 표정이 되어 네드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그때 당시 사망한 크롬웰이라는 분이 제게 일자리를 주선해 줘서 지금까지 레스터셔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까지 말하자 네드를 한참 살피던 주인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 골목 끝에 사는 늙은 토마스를 찾아가 보시오. 그는 당시 존과 같은 길드 소속이었고, 그 사건을 잘 알고 있소."
주인은 종업원을 시켜 토마스의 집으로 네드를 안내했다. 늙은 토마스는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늙은이였다. 그는 허름한 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안내를 해 준 종업원이 주인에게 들은 대로 존 러드의 아들이라고 토마스에게 소개한 후 돌아갔다.
"존 러드의 아들이라고?"
노인이 다소 놀라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네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잠시 말없이 네드를 바라봤다.
"그게 벌써 20년이 넘었구먼...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나?"
네드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21년 전, 왜 아버지가 크롬웰을 죽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노인은 의자에 앉아 네드를 빤히 쳐다봤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 노인이 한참을 침묵하고 있다가 말했다.
"아니야. 존 러드는 크롬웰을 죽이지 않았어."
네드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신문에는..."
"신문이 모두 진실을 보도하지는 않아."
노인이 담배를 깊이 빨아들인 후, '후'하고 뱉은 후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날 밤의 일을 나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 왜냐하면... 나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
네드는 숨을 죽이고 노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저녁, 크롬웰이 자네 아버지 집을 찾아간다는 말을 듣고, 당시 우리 길드의 장인이었던 제임스 크라운 그 사람이 몇 사람을 불렀어."
말하는 노인의 호흡이 가빠졌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담배를 비벼 끄고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길드 내에서도 과격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불렀던 거였지. 나도 그중 한 명이었고. 우리가 모인 건, 바로 자네가 방금 들렀던 선술집 '목마른 까마귀'였어. 모두 세 명이었어. 자네 아버지는 없었어.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 기회에 크롬웰을 처단하기로 결의했네."
말을 듣는 네드의 숨소리가 커졌다.
"크롬웰이 자네 아버지의 집에서 나와 자기 집에 가기 위해서는 화이트채플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지. 제임스와 또 한 사람은 존의 집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크롬웰을 뒤따라 가기로 했고, 나는 선술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네. 화이트채플 골목으로 들어오면 거사를 치르기로 하고."
"제임스와 함께 간 사람은 누구입니까?"
노인이 네드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 설사 기억이 난다고 해도 그 이름을 어떻게 말하겠나. 지금에 와서... 설사 그 사람이 크롬웰을 죽인 범인이라 하더라도 말이네."
"그럼 아버지는 왜 범인이 된 겁니까?"
"그야 존이 재수가 없었지."
네드가 화난 표정이 됐다. 재수가 없어서 살인자가 되어 죽다니, 무슨 말이 안 되는 일인가 말이다.
"자네 마음은 이해가 가. 하지만 이미 21년이 지난 일이야. 다만 자네 아버지가 범인이 된 경위는 자네에게 설명하는 것이 도리겠지..."
이렇게 말머리를 땐 노인이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크롬웰이 죽은 지 댓새 지났을꺄, 제임스가 나를 통해 존에게 연락을 했어. '크롬웰을 처단했으니, 마지막으로 길드의 형제들이 모여 작별 인사를 하자'고. 공범 중 한 명은 이미 도망친 이후였고, 제임스도 곧 도망칠 계획이었거든."
"그래서 아버지가 킹스 부두의 그 석탄 창고로 갔던 겁니까?"
"그래. 존은 크롬웰이 죽었다는 소식에 많이 상심했네. 그렇게 슬퍼할 줄은 몰랐네. 나중에사 크롬웰이 자네의 취직 자리를 추천해 준 사실을 나도 알게 됐지. 아무튼 제임스는 당시 우리 길드의 장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호출을 거절할 수 없었지. 그들은 길드에서 오랜 시간 함께 했던, 형제 같은 사이였으니까."
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그때, 지금은 무슨 일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석탄 창고에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겼어. 존에 비해 나는 운이 좋았던 셈이지."
네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런데 그날 밤, 경찰이 창고를 급습했어. 브라운 경위가 이끄는 경찰들이었지. 아마 누군가 밀고를 한 것 같아."
"그래서..."
"그다음은 신문에 난 그대로네. 존이 제임스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바람에 가슴에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제임스는 부상을 입었네..."
네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신문은 왜..."
"경찰로서는 달리 조사할 이유도 없었어. 죽은 존이 공범이었다고 제임스가 자백했으니까. 그로서는 다른 사람을 끌고 들어오느니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눈물을 흘리는 네드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21년 동안 자신은 아버지를 살인자로 믿으며 살았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누구 하나 원망할 대상도 없었다. 문득 제임스가 궁금해졌다.
"제임스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임스 크라운, 그 사람은 천벌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감옥에서 한 일 년쯤 살았을꺄, 같은 방 죄수들과 다투다 칼에 찔려 죽었다고 했네."
네드의 눈물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을 보던 노인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크롬웰을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어. 크롬웰은 원래 우리와 같은 길드 출신이었어. 존 러드와는 같은 작업대에서 일했던 동료였지. 하지만 그는 길드의 전통에서 빠져나가 새로운 길을 선택했어. 공장 시스템... 그게 미래라고 믿었던 거지."
"그래서 길드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한 거군요."
"그래. 제임스 크라운은 크롬웰이 만드는 미래를 저주하며 막으려 했어. 하지만..."
노인이 창밖을 가리켰다. 멀리 공장 굴뚝들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크롬웰 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지는 않았어. 그 후 더 가속화되었지. 지금 런던 곳곳에, 아니 영국 전역에 크롬웰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해. 그리고 그들이 세운 공장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계속 거리로 내몰고 있지."
네드는 자신의 해고 통지서를 떠올렸다.
"저도... 이십일 년 일한 공장에서 해고당했습니다. 기계 때문에."
노인이 네드를 바라봤다.
"그래, 자네도 이제 알겠구만. 크롬웰이 시작한 것이 뭔지.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네드는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임스는 사람을 죽이는 방법으로 저항하려 했어.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지."
노인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죽여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야. 죽여야 할 것은..."
토마스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하지만 네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죽여야 할 것은... 기계다!"
레스터셔에 겨울이 왔다. 깜깜한 밤, 애니스톤 공장의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경비가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공장 안의 기계가 모두 박살이 나 있었다. 벽에는 하얀 석회암으로 만든 분필로 쓴 글씨가 있었다.
"네드 러드 대장의 이름으로"
다음 날, 노팅엄의 한 공장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다음 날에는 더비셔에서도 일어났다. 급기야 기계 파괴의 물결이 네스터셔를 비롯, 노팅엄셔, 요크셔, 랭커셔 등 잉글랜드 중북부를 휩쓸기 시작했다. 공장에 불이 나기도 했고 공장주가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모든 현장에는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네드 러드 대장의 이름으로"
런던과 영국 전역의 신문들은 "러다이트 폭동"에 대한 기사로 가득했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많은 노동자들이 체포되고, 몇몇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정부는 네드 러드 대장이라는 인물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가 실제 인물이 아니라 상징이라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이미 죽었다고도 했다.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몇 년이 지난 어느 겨울, 정부의 강경한 대응으로 러다이트도 시들해져 가던 때였다. 런던 외곽, 닭장 같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은 공동주택 한 귀퉁이 방구석에 네드 러드가 누워있었다. 그 옆에는 그의 동지이자 동반자인 아내 헬렌이 앉아 있었다. 네드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네드는 폐병을 앓고 있었다. 수십 년간 방직 공장에서 일한 대가였다.
"헬렌, 당신에게는 너무 미안한데..."
"말 너무 하려고 하지 말아요. 네드"
"내 말을 동료들에게 전해 주기 바래."
이제 그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헬렌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래요. 꼭 전해 줄 테니 안심하고 말해요."
"기계를 파괴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로 인해 죽은 동료들 생각에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 기계나 공장들이 없어지지도 않았고..."
숨이 가쁜지 말을 멈춘 네드가 헬렌의 손을 잡았다. 잠시 그렇게 있던 네드가 말을 이었다.
"처음에 우리 선배들은 크롬웰이라는 사업주를 죽이는 것으로 대응했어... 내 방식은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었지... 이제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음 세대에는 방법이 바뀌어야 해..."
"그게 뭐예요?"
"그건 사람이야. 사람을 모아야 해. 그리고 기계를 파괴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단결된 힘으로 기계를 멈춰야 해.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
헬렌이 눈물을 쏟으며 네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걱정 말아야. 내 반드시 전할게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은... 네드... 부디... 편히 가세요."
한 손으로는 헬렌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힘겹게 들어 올려 헬렌의 볼에 흐른 눈물을 닦던 네드의 손이 툭 떨어졌다.
(은화의 제국-150년의 경제 전쟁 끝. 끝까지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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