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일반이론

은화의 제국-150년의 경제 전쟁

by 정섭

케인즈 일행이 런던 크로이던 공항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가장 먼저 그들을 맞았다. 톰슨 경위가 먼저 트랩을 내려섰다. 그 뒤로 케인즈, 엘레노어가 뒤따라 내렸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번쩍였다. 기자들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은화 살인 사건을 해결하셨는데,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영국 내에도 배후도 있습니까?”


간단한 입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청사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그들을 맞이한 것은 상상도 못 한 인파였다. 대공황으로 피폐해진 영국의 시민들이 케인즈의 귀환 소식을 듣고 몰려온 것이었다. 공항 외곽 도로부터 터미널 앞까지 빽빽이 늘어선 군중은 마치 전쟁에서 돌아온 장군을 맞는 듯한 열기를 뿜어냈다. 플래카드와 사람들의 손에 들린 모자가 일제히 흔들렸다. 꽃다발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간혹 케인즈를 비판하는 문구의 플래카드도 보였다.


'케인즈 교수의 귀국을 환영합니다'
'시장질서 거부하는 케인즈는 소련으로'


경찰들이 인파를 밀어내며 길을 만들었지만, 어느새 사람들 사이로 뻗어 나온 손들이 케인즈의 옷자락을 잡았다. 엄청난 인파에 톰슨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경계했다.


“교수님, 인파와 거리를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연신 케인즈의 주변을 살피며 사람들을 경계했다. 바로 그 순간, 그 혼란스러운 소음 속에 날카로운 금속음이 톰슨의 귀에 꽂혔다.


'찰칵'


권총을 장전하는 소리였다. 톰슨이 외쳤다.


"총이다!"


톰슨의 눈에 권총을 뽑아 든 사내가 검은 모자를 눌러쓴 채 군중 속에 있는 것이 보였다. 총구는 케인즈를 향해 있었다. 사내는 성큼성큼 케인즈를 향해 다가왔다. 톰슨이 케인즈를 끌어당겨 땅바닥에 엎드리게 하는 것과 동시에 첫 번째 총격이 가해졌다.


'탕'


총성이 울렸다. 공항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과 경찰의 호각 소리가 뒤엉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톰슨이 검은 모자의 사내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때 또다시 사내가 든 총의 총구가 불을 뿜으며 벼락같은 소리를 냈다.


'탕'


땅바닥에 엎어졌다가 무릎을 꿇고 일어서려던 케인즈가 가슴을 움켜쥐며 비틀거렸다. 뛰어들어 그 사내를 붙잡은 톰슨이 범인의 손아귀에서 권총을 빼앗았다. 경찰 몇 명이 달려들어 범인을 완전히 제압하고 그에게 수갑을 채웠다. 바닥에 엎어진 남자를 똑바로 세우는 과정에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동그란 금속 조각 하나가 튕겨 나왔다. 은화였다. 은화는 사람들의 발뿌리에 이리저리 차이다가 하수구로 통하는 구멍으로 떨어져 사라졌다.


“구급차!”


톰슨이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케인즈는 무릎을 꿇고 손을 짚은 자세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피가 스며 나온 코트 어깨를 엘레노어가 손바닥으로 눌렀다.


“교수님, 괜찮으세요?”


그는 짧게 눈을 감았다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친 것 같네.”


환호 소리가 비명 소리로 바뀌면서 사람들이 흩어졌다. 총격을 피해 사라졌던 카메라 플래시가 다시 터졌다.


그날 저녁, 런던 세인트 토머스 병원. 병실에 누운 케인즈 옆에 의사가 서 있었다. 엘레노어와 뉴스를 보고 달려온 리디아가 그 옆에 서 있었다.


“탄환은 관통했습니다. 근육이 손상됐지만, 뼈는 괜찮습니다. 필요한 조치는 다 취했으니, 안정을 취하시면 별 일없을 겁니다."


케인즈가 누운 채 한 손으로 붕대를 가리키며 미소를 보였다.


“아직 몇 년은 더 살게 되나 보군.”


리디아가 케인즈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농담이 나와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는 여전해요, 당신."


케인즈가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사랑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건 내 전공이오. 당신 놀라게 하기.”


톰슨이 병실로 들어왔다. 표정이 굳어있었다. 케인즈가 법인을 잡았는지, 누구인지를 물었다. 케인즈의 안색을 살피던 톰슨이 주저하며 말했다.


“범인은 20대 중반의 폴란드계 남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국적이...”

"국적이 왜?"

"소비에트연방공화국입니다."

"간첩이란 말인가?”

"간첩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캐임브리지대학 유학생입니다. 그런데... 자택을 수색한 결과 소비에트 언어로 된 잡지가 다수 나왔고, 그 가운데에는 케인즈 교수의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에서는 나를 어떻게 비판한다던가?"


톰슨이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요약하면, '자본주의 체제를 연명시키려는 반혁명적 이론가'쯤 되는 것 같습니다."


케인즈가 '허허' 웃다가 고통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자본주의 체제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의사가 되었군."


6개월 후, 미국 연방교도소의 작은 독방. 블랙우드가 침상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간이 제본된 인쇄물이 놓여 있었다. 인쇄물의 맨 앞장엔 케인즈가 직접 쓴 글씨가 적혀 있었다.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초고) 제이. 엠. 케인즈 저'


케인즈가 출판을 앞둔 원고의 초고를 블랙우드에게 보낸 것이었다. 원고를 읽어가는 그의 얼굴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목차만 봐도 책은 이전의 어떤 고전보다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원고는 첫 장부터 블랙우드가 신봉하는 모든 경제학 이론을 옛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원고에 의하면 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생산능력만큼 모두 소비되는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이론이었다. 마셜을 포함해 이전의 모든 경제 이론이 그랬다. 케인즈는 이를 고전 경제학이라 칭했다. 원고에 스승인 마셜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마셜의 제자인 아서 피구가 고전 경제학의 대표 격으로 뭇매를 맞고 있었다. 블랙우드의 눈에 핏발이 섰다.


원고의 마지막 장을 덮은 블랙우드는 독방의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투자의 사회화라니... 시장 질서를 국가가 대체해? 이 정신병자가 도대체 선택의 자유를 어디에 처박아버린 것인가!”


블랙우드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 블랙우드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치를 떨었다. 그가 일어나자 벽의 그림자가 그의 어깨를 넘어 길게 흘렀다.


“대중의 무지와 불확실성을 해결한다는 미명 하에 국가의 인위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시장 질서에 반하는, 이 사회주의자 같은!”


그는 고함을 지르며 원고 뭉치를 땅바닥에 집어던졌다.


며칠 후, 케임브리지의 하늘이 오랜만에 푸른빛을 드러냈다. 고든 스퀘어의 케인즈 집 응접실에서는 블룸즈버리 클럽의 오랜 벗들이 모여 케인즈의 원고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오랜만에 버지니아 울프의 남편 레너드도 참가했다. 출판사 사장인 레너드가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원고 뭉치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메이너드, 며칠 동안 이 원고를 읽은 끝에 '일반이론'이라는 제목은 이 책에 딱 맞는 제목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케인즈가 감사의 표시를 하며 겸손하게 말했다.


"출판사 사주께서 그런 덕담을 해 주니 나로선 고마운 일이네. 하지만 처음엔 사실 너무 오만한 제목이 아닌가 고민이 많았네. 그러나 이렇게 붙여야 이 책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붙이기로 결심했네."


던컨 그랜트가 레너드 울프의 생각에 동의하고 나섰다.


"메이너드 자네는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이 흠이야. 나 역시 합당한 제목이라 생각하네. 자네 이전의 이론, 즉 생산된 상품이 모두 소비되는 것을 가정하는 이론을 모두 고전경제학이리고 규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생각하네. 자네의 이론은, 수요, 자네 표현에 의하면 유효수요 부족으로 완전고용이 달성되지 않는 경우까지 설명하는 이론이니 일반이론이라고 붙이는 것이 합당해."


그랜트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더 이상 다른 말 말라는 식으로 말한 후 한 가지 걱정을 제기했다.


"그런데 고전경제학의 기본 명제를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걸리긴 해."


이 걱정에 대해 케인즈가 의외로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않네. 이 책의 전개를 위해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네. 이전의 경제학은 상품시장과 노동시장을 전혀 다른 시장으로 인식하네. 말하자면... 세이의 법칙으로 상품시장의 균형을 설명하고,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으로 노동시장을 설명하는 방식이네. 그러다 보니 상품시장은 세이의 세계에서 그 자체로 완벽하고, 노동시장은 임금 경직성만 없으면 자동으로 균형이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지. 이 관점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이론이 시작되는 거거든."


그랜트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처드 칸이 유효수요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바꿨다. 칸은 케인즈의 케임브리지대학 제자였다. 그는 블룸즈버리 멤버는 아니었지만 케인즈의 초대로 자리에 함께 하고 있었다. 칸은 케인즈의 일반이론으로 유명해진 승수이론을 최초로 제안한 바 있었고, 케인즈가 특별히 아끼는 제자이기도 했다.


"교수님. 전체 원고에서 유일하게 본문에 수식이 나오는 대목이 유효수요에 대한 설명 부분입니다. 아마 수식으로 하지 않으면 뜻이 왜곡될 것을 우려한 것 같습니다만."

"바로 그렇네. 그런데 수식이 다소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의미는 단순하네."


버지니아 울프가 잘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메이너드, 요점만 분명히 설명해 주면 고맙겠어요."


울프가 이렇게 요청하자 좌중이 모두 케인즈를 바라봤다. 좀 떨어져 앉아 있던 포스터는 가까이 다가와 앉기까지 했다. 케인즈가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유효수요는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을 결합하는 개념이네. 그리고 유효수요는 기대라는 개념으로만 설명이 되네. 이 두 가지 성질만 알아도 그 개념 전체를 파악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네."


이렇게 말을 시작한 케인즈가 모두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잠깐 사이를 둔 뒤 말을 이었다.


"가장 단순하게 정의하면, 유효수요는 기업가가 N명을 '고용'했을 때 '기대'되는 소비지출과 투자지출의 합으로 구성이 되네. 원래 수요는 소비와 투자로 이뤄지는 것이니 당연한 명제이지. 그런데 이 개념이 고전 이론과 다른 것은 노동시장의 변수인 고용과 생산물시장의 변수인 수요가 한 문장 안에서 결합된 것이네."

"그 말은, 고용 수준 N에 따라 생산물시장의 수요가 달라진다는 것이군."


그랜트가 이해했다는 식으로 감탄하며 자기가 해석한 것을 말했다.


"고용이 늘면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가 증가하겠지. 소비 증가는 다시 고용 증가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이 간단한 논리로 노동시장과 생산물시장이 유기적 순환 시스템이 됐군. 자넨 역시 천재야. 이때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메커니즘을 이 간단한 개념으로 완성해 버렸어."


그랜트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보며 케인즈가 웃었다.


"나는 이 유효수요의 개념으로, 고용은 임금이 아니라 유효수요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네. 그랜트 자네가 내 의도를 정확히 꿰뚫은 것이네."


모두들 이해하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때 옆에서 이 모습을 바라만 보던 리디아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메이너드. 이렇게 하면 고전 이론을 넘어서는 일반이론으로 충분한데, 왜 기대라는 개념을 굳이 쓴 건지 물어봐도 될까?"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 되었고, 케인즈는 역시 리디아라는 표정으로 빙긋이 웃었다.


"맞아. 사실 내 책의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기대를 꼽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야."


다시 모두의 얼굴이 케인즈를 향했다. 케인즈가 리디아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 역시 고전 경제학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개념이야. 사실 나는 그동안 미래의 불확실성과 그로 인한 인간의 무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왔어.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대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어. 경제가 미래에 대한 인간의 심리적 판단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밝혀야 완벽한 이론이 된다고 믿은 결과라 할 수 있어."


리디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중요한 개념이란 것은 알겠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면 좋겠어."


케인즈가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좀 더 잘 이해하려면 고전파 경제학의 가정을 알면 도움이 돼. 인간은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모든 결정은 합리적이라는 가정이 그것이야. 그러나 과연 그래? 내일의 이자율이 어떻게 변할지, 소비나 기술, 심지어 정치적 사건이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사실 알지 못하지.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기업가들은 투자 결정을 내려. 이 경우 기업가들은 현실 경제에 대한 완벽한 계산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심리적 판단에 근거해서 투자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야. 이런 개념을 기대라는 단어에 담은 것이지."


그랜트가 중얼거렸다.


"시장은 현재의 가격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심리적 판단에 의해 작동된다..."


그러자 리디아가 다시 말을 더했다.


"그런 설명이라면, 기대라는 개념은 수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 않아? 이 부분이 비평가들의 도마에 오를 수도 있겠는데?"


케인즈가 리디아를 보고 윙크를 한 후 말했다.


"그건 그래. 하지만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니야. 이미 기업가들은 그렇게 결정하고 있거든. 기업가가 투자 결정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봐."


케인즈가 리디아를 보고 계속 말을 이었다.


"기업가가 투자를 결정할 때는 보통 이자율과 비교해서 결정을 하게 돼. 이 결정을 하는 기업가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자고. 기계를 도입할까 말까 하는 결정을 할 때 그는 그 기계로 인한 장래의 수입을 추산할 거야. 지금으로서는 오직 예측을 할 수밖에 없어. 즉 내년에 얼마 벌고, 후년에 얼마 벌고..., 10년 후에는 얼마 벌 거야 하는 예측, 내지 기대를 하겠지. 그렇게 예측한 해마다의 예측, 혹은 기대를 전부 현재가치로 계산한 후 이를 현재의 이자율과 비교해서 투자 결정을 하게 될 거야. 여기까지 오케이?"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케인즈가 이 개념의 이름을 말했다.


"이렇게 들쭉 날쭉한 수입을 하나의 지수로 나타낸 것을 나는 자본의 한계효율이라고 이름 붙였어."


리디아가 '자본의 한계효율'이라는 말을 입으로 되풀이하고, 수긍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맞는 것 같아. 투자 결정을 하면서 그 투자로 인한 수익을 예측해서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그 미래 가치 총량을 현재까지로 환산해서 지금 이자율과 비교한다면 정확한 의사 결정이 되겠지. 그런데 이런 개념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걸..."


그러자 케인즈가 손가락을 튀기며 말을 보태 말했다.


"그 말이 맞아. 그런데 문제는 그런 예측이나 기대가 얼마나 정확할지는 기업가는 물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야. 그 불확실성은 확률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 리스크라고 할 수도 없지.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까. 어떻게 결정될지 아예 알 수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지. 그래서 기업가의 야성적 충동이 중요하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투자이론의 정수야."


여기까지 말한 케인즈가 잠시 쉰 후 말을 이었다.


"이렇게 기대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투자지출은 유효수요의 구성요소가 돼.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 결정되는 투자의 결과가 완전고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야."


그랜트가 씁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사익이 공익으로 인도된다는 아담스미스의 이론이 현실에서 적용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군. 기업가 각자의 이윤추구를 위한 투자 결정이 완전고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니..."


그러자 경제학과 가장 먼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어. 이 원고에는 대안이 있으니까. 기업가들이 각자 따로 결정하지 말고 하나의 단위를 이뤄서 투자를 결정하면 실업을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어. 이렇게 하면 완전고용이라는 사회적 공익이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케인즈의 생각이야."


리디아가 덧붙였다.


"맞아요. 그걸 케인즈는 투자의 사회화라고 표현했죠. 사실 나로서는 그런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대공황이라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투자의 사회화 개념도 못 받아들일 이유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밤이 깊어지면서 토론을 정리할 때쯤 그랜트가 말했다.


"메이너드. 이제 이 책은 공식적으로 출판이 되면 큰 방향을 일으킬 텐데, 이 책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 줘."


잠깐 생각에 잠긴 케인즈가 테이블 위에 컵 두 개를 올려놓은 후 왼쪽 컵을 테이블 가운데로 가져왔다.


“이 왼쪽 컵이 N명 고용으로 인한 생산물의 총공급가격이야. 기업 입장에선 매출인 셈이지. N명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매출액이네. 오케이?"


사람들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오른쪽 컵을 들고 테이블 중앙으로 가져온 후 말을 이었다.


"이 컵은 유효수요, 즉 사람들이 실제로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지출총액이야. 굳이 간략하게 말하자면 소비자와 투자자의 지출액이야. 오케이?"


반응을 살핀 후 케인즈는 두 컵을 가운데로 밀어서 서로 맞붙인 후 말했다.


"둘은 서로 반대되는 측면을 표현한 개념이야. 하나는 N명 고용을 위해 필요한 매출액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만큼 고용할 때 사람들이 살 것으로 기대되는 지출액이야. 이 둘, 기업의 매출과 소비자의 지출, 즉 매출과 유효수요가 같아지는 점, 즉 N명 고용으로 인한 생산과 소비가 같아지는 이 점은, 일종의 균형이라고 할 수 있을 걸세."


사람들이 이해하는 표정이 되자 케인즈가 말을 이었다. 사람들의 눈은 서로 접한 두 개의 컵에 모였다.


"그런데 문제는..."


케인즈의 눈이 빛났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 만남에서도 완전고용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네. 그 말은.... 고전경제학이 균형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도 시장에 실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고."


사람들이 케인즈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윽고 케인즈가 서로 접한 두 개의 컵을 그 상태대로 테이블의 윗부분 가장자리로 쭉 밀어 올렸다. 그리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결론을 내렸다.


"이 경우 누군가, 그것이 정부든 아니면 사회든, 완전고용이 될 수 있는 수준의 유효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이 균형 상태의 수준을 위로 밀어 올려줘야 한다는 말일세. 이것이 일반이론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일세."


사람들이 눈을 두 개의 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모두 감동하는 눈빛이었다. 그랜트는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했다. 이윽고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방에 여러분과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를 거야."


모두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부터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던 톰슨과 엘레노어도 서로 눈을 맞추었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가 쏟아졌다. 박수가 계속되면서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리디아가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남편을 지켜보았다. 톰슨은 두 개의 원이 접하는 것으로 자신의 균형이론을 설명하는 케인즈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케인즈가 톰슨에게 윙크를 했다. 톰슨도 머리를 숙여 존중의 답을 했다.


잠시 후, 케인즈가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껴냈다. 워싱턴의 호텔에서 살인 예고용으로 받아서 보관하고 있던 은화였다.


“이제 보내야지.”


케인즈가 이렇게 말하고 톰슨을 바라보았다. 톰슨이 일어나 케인즈에게 다가가 은화를 받아 들었다. 창밖으로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기차의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리디아가 화로에 석탄을 넣자 불씨가 크게 밝아졌다 잦아들었다.


케인즈는 자신이 갖고 있던 원고 상단에 날짜를 적어 넣었다. 그는 펜을 내려놓고 모두를 둘러보았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겨울 방의 온기, 흔들리는 불빛, 카펫의 푹신한 촉감이 분위기를 아늑하게 만들었다, 케인즈가 모두와 한 명씩 포옹하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목요일에 마지막화, 에필로그가 연재됩니다)


#일반이론 #케인즈 #투자의 사회화 #자본의 한계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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