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은인을 만나다.

매일 여름 : 치앙마이에서 친구와 보낸 30일

by 땅콩


그 날은 우리가 아침에 수영을 하려고 했던 날 이었다.

수영장이 있는 숙소를 고르고 수영복도 세 벌이나 챙겨왔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초여름같은 날씨는 수영을 하기에는 조금 춥게 느껴졌다. 방콕에서도 수영을 하려고 시도했었지만 3분정도 몸을 담갔다가 결국 못 버티고 나와서 물기를 닦고 사우나를 하러 갔었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 우리는 이번에는 꼭 수영을 하려고 했다.


그 날은 아침에 수영을 하기 위해 수영복을 입고 수건도 챙겨서 수영장이 있는 층으로 갔다. 친구가 아침의 수영장이 오히려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고 했다. 잘못된 이야기였다. 우리는 수영장에 무릎까지만 들어가서는 더 들어가질 못했다. 자로 길이를 재는 것처럼 용기를 잴 수 있다면, 우리의 용기는 무릎까지였다. 무릎까지만 담근 채 멀뚱멀뚱 서 있었다. 조금 버티면 차가움이 익숙해지진 않을까하고 기대했는데, 그런다고 차가운 물이 따뜻해지진 않았다.


“그냥 밥 먹으러 갈래?”

친구의 말에 그만 버티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방콕에서 만난 택시기사님께서 하셨던 감기 조심하라는 인사는 정말 걱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숙소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수영하러 갔었지만, 수영복은 물 한 방울 없이 여전히 뽀송했다.

우리가 간 식당은 까이앙청더이였다. 유명한 닭구이 맛 집이었는데, 숙소에서 아주 가까웠다. 우리는 닭구이와 찰밥, 파파야전, 그리고 옥수수 솜땀과 콜라를 시켰다. 솜땀은 이번 여행에서 처음 먹어보고 아주 좋아하게 된 음식이었다.



굽네치킨과 비슷한 듯 다른 닭구이와 찰밥은 어딘가 익숙한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닭구이의 담백한 맛이 쫀득한 찹쌀밥과 잘 어울렸다. 친구와 나는 식당에 가서 밥을 시킬때는 거의 일반 밥이 아닌 찰밥으로 시켰는데, 그럴 때 마다 ‘스티키라이스 맛이 있지요? 많이 먹으면 많이 살쪄요!’ 라고 했던 가이드님의 경고가 생각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찰밥의 쫄깃한 식감을 여행 마지막 날 까지 포기하지 못했다.

식사가 끝난 우리의 오후 계획은 치앙마이 예술가 마을인 ‘반캉왓’에 가는 것이었다. 반캉왓은 우리가 저번 치앙마이 여행에서 한 번 가 봤던 곳이다. 초록색 자연 속에 있는 작은 예술가들의 마을인 반캉왓에는 현지 예술가들이 창작한 수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고,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카페도 있다. 우리의 숙소에서는 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택시를 불러서 반캉왓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도착한 반캉왓은 여전히 푸르고 아기자기한 마을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는 제일 먼저 소품샵으로 향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깨지기 쉬운 물건은 기념품으로 사기를 망설이면서도, 이런 귀여운 소품들은 볼 때 마다 나도모르게 굉장히 열심히 고르게 된다.

소품샵 구경을 끝내고 가게를 나설 때 였다. 소품샵입구로 향하는 마당 한 켠에 흥미로운 팻말이 걸려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의 바느질 클럽’


죽음의 바느질 클럽이라니.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다는 걸까?


죽음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비장함이 깃들어 있는데, ‘죽음의 바느질 클럽’ 은 그 비장함이 정말 귀엽게 느껴졌다. 진지하고 귀여운 이 클럽이 치앙마이의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풍경과 정말 잘 어울렸다.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바느질의 사랑스러움은 내게 잔잔한 여운을 남겼고, 그렇기 때문에 후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우연히 들어간 한 책방에서 이 죽음의 바느질 클럽에 대한 책을 발견했을 때 아주 반가웠다. 알고보니 유명한 클럽이었구나! 책의 제목은 ‘죽음의 바느질 클럽. 모쪼록 살려내도록.’. 한결같이 비장하고 귀여웠다.


소품샵을 나온 뒤에는 카페로 향했다. 미리 알아 본 귀여운 카페가 멀지않은 거리에 있었다. 그렇게 지도어플을 따라 걷는데, 친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바나나다!”


그렇다. 바나나였다.


친구는 나무에 달린 바나나를 무척 신기해했다. 치앙마이에서 길을 걷다보면 나무에 바나나가 달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그 때마다 ‘바나나다!’ 하고 외치며 사진을 찍었다. 마치 바나나를 태어나서 처음보는 사람같았다. 가끔 바나나 꽃까지 함께 달려있는 날엔 유명인을 본 것처럼 신기해하고 기뻐하며 사진을 찍었다. 친구의 핸드폰 앨범에는 곧 바나나사진이 가득하게 되었는데, 친구는 그걸 바나나 사진 컬렉션이라고 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어쩌면 헝태우인에서 식사를 할 때 마다 ‘여기 접시에 깐 이 잎은 바나나잎인가...?’ 하며 궁금해했을 때부터 이미 바나나를 향한 사랑과 호기심은 예견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 바나나가 그렇게 신기하냐고 물어보면, 친구는 사진을 보여주며 ‘바나나 무거워서 가지 휜 것 좀 봐. 안 신기해?’ , ‘너 바나나 꽃 실제로 본 적 있어? 안 신기해?’, ‘너 바나나가 거꾸로 자란다는 거 알고 있었어? 난 이번에 처음 알았어. 안 신기해?’ 라고 질문같은 대답을 했고, 난 사진을 약 열 두 장정도 볼 때쯤에 신기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게 친구의 바나나를 향한 폭주기관차같은 사랑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치앙마이 길에는 바나나나무가 생각보다 많다. 어느 정도냐면, 도보로 10분 걸리는 카페를 약 20분이 넘게 걸려서 도착할 정도다. 바나나사진을 찍으며 도착한 카페는 ‘페이퍼 스푼’ 이라는 카페였다.



숲 속의 나무집 같은 느낌의 귀여운 카페였다. 마당과 2층에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오셔서 친구과 이야기를 하거나 독서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친구와 나도 음료를 시킨 뒤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마당에는 닭과 병아리들이 쫑쫑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나 잘하는거 있는데, 보여줄까?”

“뭔데?”

“닭 부르는 거. 나 모이 없이도 쟤 부를 수 있어.”

“오, 해 봐!”


친구가 닭이랑 조금 떨어진 곳에 쭈그려 앉더니 손바닥을 펼치고는 말했다.

“구구구구구... 구구구...”

그러자 닭이 친구를 향해 종종종 다가왔다. 놀라웠다. 작은 시골에서 보낸 친구의 어린시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내 친구는 재능이 있었다.


신기해서 이번에는 좀 더 떨어져서, 닭이 아예 딴 곳을 보고 있을 때 다시 해 보라고 했다. 내 말에 친구는 다시 자리를 고쳐앉고, 때를 기다렸다가 다시 손바닥을 펼쳤다.


“구구구. 구구구구구.”

아까보다 좀 더 자신감있는 목소리였다.




외국에 피리부는 사나이가 있다면 한국에는 구구하는 아가씨가 있다.

그렇게 닭과 놀고 있자, 어느새 우리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음료를 주시는 사장님께 친구가 ‘코쿤카~’ 하고 인사를 하더니, ‘저 병아리는 저 닭의 아이인가요?’ 하고 물어보았다. 사장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그럴거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하지 않아요.’ 하고 웃으셨다.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어쩌면 복잡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닭에게도 그런게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은 금방 흘러 이제는 숙소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택시를 타야 숙소로 갈 수 있는데, 아무리해도 택시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거리에는 자동차나 버스가 보이지 않았고, 택시는 40분이 넘도록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점점 더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택시 아니면 썽태우라도 지나갈까 싶어서 도로와 핸드폰을 계속 번갈아보고 있던 우리에게 어떤 여성분이 다가오셨다.

“저기, 혹시 한국분들 맞으시죠?”

“앗, 네. 맞아요.”

“제가 택시를 잡아서 지금 오고 있는데, 저는 혼자라서 자리가 남아서요. 괜찮으시면 같이 타고 가실래요?”

우리가 은인을 만난 순간이었다. 우리는 이 후 이 날을 회상할 때 그 분을 ‘은인님’ 이라고 칭한다.

실례가 되는 상황일 수 있었지만, 집에 가고 싶다면 실례를 무릅써야 할 상황이었다. 우리는 은인님이 부른 택시를 함께 타고 반캉왓을 벗어났다. 어떻게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우리의 인사에 은인님은 그저 ‘반캉왓이 택시가 잘 안 잡히더라구요. 저도 오래 걸렸어요. 자리 남으니까 같이 타고가면 좋죠.’ 하고 대답하셨다. 친절을 담백하게 포장하는 멋진 어른처럼 보이는 분이셨다.


“너무 감사해요. 택시비는 저희가 내게 해 주세요!”

“아니예요. 카드결제라서 이미 결제 됐어요.”

“그럼 현금이라도 받아주세요.”

“아이, 아니예요. 가는 길에 내려드리는 건데요.”

“아니예요, 그래도 받아주세요,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은인님과 우리는 ‘주지마라’ ‘받아라’를 도돌이표처럼 한 다섯 번 반복하고 나서야 반만 받는 걸로 합의를 했다. 쉽지 않은 협상이었다.


“치앙마이에 여행오신 거예요? 얼마나 머무르세요?”

“저희는 한 달 살이 하러 왔어요! 치앙마이에 오래 계셨어요?”

“저는 두 달 살았어요.”


두 달이라니. 너무 부러웠다. 한 달만 살아도 이렇게 행복한데, 두 달 산다면 이 것의 두 배만큼 행복하지 않을까?


“와, 너무 부러워요. 그럼 크리스마스도 여기서 보내셨겠네요!”

“네, 맞아요. 근데 이틀 뒤에 귀국해요.”

한 달만 살아도 이렇게 돌아가기 싫은데, 두 달 산다면 이 것의 두 배 만큼 돌아가기 싫지 않을까?


우리는 곧 님만해민에 도착했고, 은인님께 안전한 귀국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 무렵, 나는 그런 게 궁금했다.


치앙마이에 몇 달 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치앙마이의 귀여운 소품샵을 열고 있는 사장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리고 사계절 내내 따뜻한 여름에서 사는 사람들, 이 태국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다른 어떤 여행지에서도 생기지 않았던 호기심이었다. 나는 치앙마이에서 한 달을 살며 점점 더 많은 것 들이 알고 싶어졌다. 어쩌면 좋아하게 된 만큼 궁금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치앙마이를 정말 좋아하게 됐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그 날의 은혜는 아직도 갚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기적이 일어나 이 글을 읽으신다면, 은인님께 맛있는 태국음식을 대접해드리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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