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름 : 치앙마이에서 친구와 보낸 30일
한 달 살이를 하고 돌아오면, 종종 친구들이 이렇게 묻곤 한다.
“한 달 동안 거기서 뭐 하면서 지냈어?”
이번에는 단기여행이 아니어서, 그 전에 갔던 여행처럼 하루하루 촘촘히 계획을 세우고 떠나진 않았다. 대신, 하고 싶은 일을 가볍게 리스트로 적어두고, 한 달 동안 지내며 그 리스트 속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날에는 카페를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동네를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러다 해가 지면 툭툭을 타고 야시장에 갔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들 속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하루의 일정이 있었다.
나와 친구는 올드타운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올드타운에 가기로 한 날이면 우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친 뒤 농푸악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서 열리는 요가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나 요가를 갈 준비를 하는 과정은 우리에겐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우리 요가 가지 말고 시리얼이나 먹을까? 우유에 맛있게 말아줄게.’ 라고 말하는 친구를 내가 얼른 요가복을 입으라며 설득하고, ‘너 오늘 건강해? 어디 아픈 것 같진 않고?’ 라고 말하는 나를 친구가 준비 다 됐으니 나가자고 설득한다. 서로를 설득하고 설득당해주며 결국 준비를 끝내고 공원으로 간다. 하지만 막상 공원에 도착하면, 요가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여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의 표정을 살피니,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 했다.
여름 아침의 공기는 상쾌했고, 푸릇한 잔디 위에 아침 햇살이 점점 귤빛으로 번져갔다.
그걸 보고있으면 친구에게 설득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훈훈한 마음은 요가가 시작되고 약 1분간 지속되었다. 첫 번째 동작까지는 웃으면서 했는데, 두 번째 동작부터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예전에 친구와 치앙마이 여행에 와서 원데이 요가클래스를 들었었는데, 그 때 친구의 동작을 보고 따라하는 내게 요가선생님께서 “돈 룩 유어 프랜드! 찐구도. 틀렸어요. 둘 다. 틀렸어요!” 라고 말씀하셔서 나와 내 친구가 주목을 받았던 안 좋은 기억이 있는데, 괜히 그 날 생각도 났다.
요가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은 내겐 아직 조금 어려운 일이었지만, 어설프게나마 따라잡으며 수업을 듣다보면 점점 뿌듯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설픈 동작, 큰 뿌듯함. 가성비좋은 뿌듯함이었다.
요가수업이 끝이 나고, 슬슬 정리를 시작할 때 였다. 모두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무언가 알려줄 것이 있다고 하셨다. 곧 있을 치앙마이 꽃 축제를 위해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공원에서 하는 요가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이었다. 그 날은 우리가 세 번째로 수업을 들은 날 이었다. 아침의 공원과 요가가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세 번 만에 끝나버렸다. 공사 중에는 장소를 옮겨서 수업을 할 예정이라는 말씀도 하시는 듯 했지만, 아침에 공원에서 듣는 수업을 좋아하던 우리는 여전히 너무 아쉬웠다.
“우리는 꼭 이런다. 좋아하면 없어져. 너가 좋아했던 초콜릿 기억나? 안에 녹은 초콜릿 들어있고, 포장지에 입술모양 있고.”
“단종됐지. 그 아이스크림가게 기억나? 너희 집 놀러 가면 우리 맨날 먹었던 곳.”
“없어졌지.”
좋아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일까, 사라질 것들을 좋아하는 것일까. 마치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와 같은 문제였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했지만 사라졌던 것들을 이야기하며 올드타운 쪽으로 걸었다. 요가를 한 날이면 다음 장소는 정해져있었다. 과일이 잔뜩 올라간 스무디볼을 먹으러 가야 했다.
우리는 평소에도 스무디볼을 좋아한다. 하지만 요가를 하고 난 뒤에 먹는 스무디볼은 과일도, 재료도 똑같은 스무디볼인데 더 맛있게 느껴진다. 친구는 아침에 요가를 하고 스무디볼을 먹으면 건강하게 사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고 했다. 아마 우리는 그 뿌듯함 때문에 더 맛있게 먹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요가와 과일로 시작하는 건강한 하루를 치앙마이에 오기 전부터 상상했었다. 그런데 세 번으로 끝나다니. 좋아했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나야 그렇다 치지만 내 친구는 어떨까. 나와 달리 내 친구는 무언가 시작을 할 때 준비물을 모두 충분하게 갖춘 뒤에 시작하는 편이다. 충분한 양의 요가복이 아직 친구의 캐리어에 있었다. 아주 충분한 양이었다.
“다른 요가 수업이라도 알아볼까? 아님 우리 숙소에 헬스장 있으니까 거기라도 매일 갈래?”
헬스를 하러 가자는 내 말에 친구는 말없이 스무디볼을 먹었다. 한두 번 더 물어보다가 난 눈치를 채고 나도 다시 스무디볼을 먹기 시작했다. 친구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못 들어서 대답 안 하는 거 아니다.
스무디볼을 먹고 가게에서 나오면, 우리가 좋아하는 올드타운의 거리가 보인다. 우리는 올드타운의 거리를 정말 좋아했다. 꽃이 핀 따뜻한 거리의 풍경을 좋아했고, 그 풍경과 잘 어울리는 작고 귀여운 가게들을 참 좋아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친절한 사람들, 따뜻한 햇살과 거리에 핀 꽃들. 그 들이 주는 다정함을 우리는 정말 좋아했다.
올드타운에는 다정함만큼이나 넘치는 것이 있다. 바로 맛집이다. 올드타운에는 우리가 자주 가는 식당들이 모여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앨리스키친이다. 똠얌꿍과 풋팟퐁커리가 맛있는 집이었다.
똠얌꿍은 이번 여행에서 내가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음식이다. 태국에 오기 전에는 생소한 음식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좋아하게 된 뒤로는 친구와 밤에 숙소에서 맥주를 마실 때 편의점에서 산 똠얌컵라면이 없으면 허전할 정도가 됐다.
친구는 앨리스키친에서 똠얌꿍을 먹더니 갑자기 엄마가 생각이 난다고 했다. 친구가 이렇게 효녀였구나, 잠시 나를 돌아보며 반성을 하려던 때였다.
“엄마한테 레시피 알아와서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내 친구는 효녀와 불효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한 달 동안 태국에 살며 종일 태국음식만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태국음식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국음식이 있다. 다른 태국음식을 좋아하는 정도라면, 이건 사랑한다고 해야 맞는 말인 것 같다. 바로 ‘망고밥’ 이다. 나는 태국을 망고밥을 먹으로 간다고 해도 농담이 아닐 정도로 좋아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치앙마이 최고의 망고밥을 파는 가게는 올드타운에 있다.
신호등마저 귀여운 도로를 걸어가다 보면 망고를 쌓아놓은 귀여운 초록간판의 가게가 보인다.
망고밥 큰 거 하나, 망고 큰 거 하나. 이게 우리의 단골주문이었다. 만약 올드타운에 가지 않는 날이면 우리는 배달을 시켜서 먹었다. 정말, 매일.
망고밥은 달콤한 코코넛연유가 뿌려진 쫄깃한 찰밥을 잘 익은 망고와 함께 먹는 음식이다. 과일과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게 생소해서인지 종종 호불호가 갈릴 때도 있는데, 식사보다는 디저트라고 생각해야 덜 어색할 것 같다. 친구도 한 때는 망고밥의 매력을 깨닫지 못하고 내가 망고밥을 주문하면 망고밥에 있는 망고만 주워 먹어서 잠시 이 친구에게 인간적으로 실망을 할 뻔 했는데, 이제는 나와 함께 망고밥을 매일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됐다.
가방에 망고밥 키링을 달고 다니며 한 손에는 망고밥을 들고 다니는 나와 함께 한 달을 사느라 식성이 바뀐 것일까? 약간의 강제성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나는 나와 함께 망고밥을 좋아해주는 망고밥메이트가 생겨서 기쁘다.
올드타운의 필수코스가 아직 남아있다. 그 곳은 오후에 영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찾아가곤 했다. 하지만 준비한 재료가 떨어지면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시기 때문에 너무 늦으면 안된다. 타이밍을 잘 맞춰야 만날 수 있는 인기가 넘치는 ‘무삥아저씨’였다.
무삥은 양념이 된 고기를 꼬치에 끼워서 굽는 요리이다. 올드타운 무삥아저씨는 이동식 가게에서 무삥을 만드시는 분인데, 그 무삥은 우리가 치앙마이에서 먹어 본 무삥 중 가장 맛있는 무삥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밖으로 나가기 귀찮았던 어느 저녁, 우리는 숙소에서 나가지 않고 배달 음식을 시켜먹기로 한 적이 있었다. 아무 식당을 골라서 무삥을 주문했다. 잠시 후 배달 온 상자를 연 뒤, 호호 불면 구멍이 뚫릴 듯 얇은 무삥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는 올드타운 무삥아저씨의 무삥을 먹어 본 이상, 어지간한 무삥으로는 만족하지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렇게 우리는 무삥아저씨의 무삥에 익숙해져 버렸는데, 그런 우리에게 가혹한 일이 생겨버렸다. 무삥 아저씨가 일주일 째 보이지 않는 것이다. 꽃 축제가 열린다고 하던데, 혹시 그 곳으로 출장을 가신 것일까? 요가에 이어 무삥까지. 꽃 축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는 것일까? 무삥아저씨가 없는 올드타운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 날도 혹시나 무삥아저씨가 돌아오셨을까 기웃거리던 참이었다. 저 멀리 아저씨가 늘 계시던 그 자리에서 연기가 피어나는게 보였다. 친구와 나는 그 연기를 향해 달렸다. 마치 분식집에서 이제 막 나온 피카츄돈까스를 발견하고 뛰어가는 초등학생들처럼. 그 연기 아래에는 정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무삥아저씨가 계셨다.
“아이미쓔!”
아저씨에게 달려간 우리가 인사를 하자, 웃음을 터뜨린 아저씨도 ‘아이미쓔, 투~’ 하고 대답 해 주셨다. 곧 우리가 주문한 무삥을 그릴에 올려놓으신 무삥아저씨께서 우리에게 손 짓을 하셨다. 그릴 앞에 서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를 그릴 앞에 세운 무삥아저씨는 구워지고 있는 무삥을 손으로 가리키며 들어보라고 자세까지 잡아주시곤 기념촬영을 해 주셨다. 어렸을 때 가 보지 못했던 키자니아를 이제야 가 본 기분이었다. 역시 치앙마이 최고의 무삥을 파는 곳에 걸맞는 문화체험이었다.
친구는 가장 좋아하는 태국 음식 중 하나가 무삥인데, 얼마나 무삥아저씨의 무삥을 좋아하냐면 친구의 게임 캐릭터가 무삥아저씨 일 정도이다.
올드타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가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비행기를 타면 양 옆에 좌석이 있잖아? 만약 할 수 있다면 넌 그 자리에 누구 앉히고 싶어?”
처음엔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는?’ 하고 되묻자, 친구가 꽤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진짜 고민됐는데, 일단 난 무삥아저씨랑 망고밥 사장님 부부를 앉힐래. 가는 길 내내 설득해야지. 한국에서 팔아달라고.”
친구의 말에 난 동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최고의 무삥과 최고의 망고밥이었으니까.
역시 올드타운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