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친친소. 친구와 친구를 소개합니다.

매일 여름 : 치앙마이에서 친구와 보낸 30일

by 땅콩


그날이 되었다. 내 친구와 내 친구가 만나는 날.


영은이는 나의 대학교 친구인데, 함께 여행 온 나의 친구와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나를 사이에 두고 종종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궁금해했고, 언젠가 꼭 만나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영은이가 친구와 함께 치앙마이로 여행을 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 두 사람을 이어 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럼 우리 다 같이 저녁 먹을래? 내가 팟타이 사줄게!”


영은이와 영은이의 친구, 나와 내 친구. 그렇게 우리 넷은 치앙마이에서 함께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했고, 그날은 빠르게 다가왔다.


그날 아침부터 내 친구는 기대를 하고 있는 티가 났다. 어떤 것을 입을지 골라달라고 하질 않나,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질 않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오늘 소개팅에 나가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친구는 아침부터 기대에 차 있었지만, 저녁 약속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카페를 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공동현관을 나서자, 경비실 앞 의자 위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녀석이 보였다.



아무래도 파티가 열린 모양이었다. 친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오늘은 친구 분들도 같이 계시는 구나~ ”


우리의 농담에는 눈을 감고 못 들은 척하던 녀석은 친구가 간식을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리는 소리를 내자 눈을 반짝 뜨고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을 내밀며 재촉하던 녀석은 간식을 만족할 만큼 먹자 다시 미련 없이 의자 위로 폴짝 올라가서는 눈을 감았다. 고양이가 간식을 먹었으니 우리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다시 카페로 향했다.



우리는 라떼 아트 챔피언이 있다는 카페로 왔다. 카페는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라떼 두 잔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곧 ‘이것은 작품인가, 커피인가.’ 싶은 무언가가 앞에 놓였다. 아침에 산책을 나와서 마시는 커피로는 제법 화려했다. 우리는 우아한 유니콘을 해치지 않기 위해 입을 새부리 모양으로 만들며 조심스레 커피를 마셨다.


치앙마이에는 정말 예쁜 카페들이 많지만, 이곳의 커피는 대부분 산미가 있는 듯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말로는 산미가 있는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 하던데, 내 입에 좋은 커피는 고소한 커피이다.



우리는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에도 여러 번 카페에 들렀다. 특히 치앙마이에는 예쁜 카페들이 많아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연스레 한 잔씩 더 즐기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


친구도 나와 커피취향이 비슷해서 커피를 주문할 때면 우리는 늘 자동완성처럼 질문을 했다. “이즈잇사우어?” 커피가 산미가 있는지 묻는 말이었다. 하지만 금세 알 수 있게 되었다. 치앙마이 사람들의 ‘산미’의 기준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준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묻는 대신 그냥 라떼를 주문했다. 라떼는 산미가 강한 원두로 만들어도 맛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해 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는 스타벅스에 가거나, 마트에서 익숙한 브랜드의 인스턴트커피를 사 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곤 했다. 친구는 아주 간단하게 만들어진 그 커피를 마시면서 감탄을 했다.


“야, 이래서 경력직 경력직 하나 봐.”


친구는 치앙마이에서 마셔 본 아이스 아메리카노 중 내가 타준 게 제일 맛있다고 했다.


라떼아트로는 하트밖에 못 그리던 내가 라떼아트 챔피언이 있는 곳에서 아메리카노로 ‘챔피언’이 될 줄이야. 아주 공정하지 않은 방식의 치사한 승리였고, 나는 기뻤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영은이, 그리고 영은이의 친구와 함께 갈 식당을 고민했다. 두 사람은 우리가 좋아하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지만, 그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치앙마이에서 좋아하는 식당은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곧 고민을 끝내고 식당을 정했다. 바로 헝태우인이었다. 우리가 치앙마이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찾아갔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태국 가정식 식당이었다. 나는 영은이에게 헝태우인의 주소를 보내며 말했다. 곧 만나!


커피를 마신 우리는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우리가 올드타운을 찾은 이유는 블루누들의 고기국수를 먹기 위해서였다.


가게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그 줄에 합류해서 순서를 기다리며 오늘은 얇은 면을 먹을 건지, 두꺼운 면을 먹을 건지 고민하면 된다. 언제나 북적이는 만큼 여행의 진부한 추천장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만큼 무난하게 맛있기에 우리는 종종 블루누들을 찾곤 했다. 고기국수와 밀크티를 먹기 위해서. 나는 특히 두꺼운 면을 좋아했다.


고기국수를 다 먹고 난 후, 우리는 사원을 구경하기 위해 걸어갔다. 택시를 타고 스쳐 지나가며 한번쯤 들러보고 싶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오늘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그 사원을 향해 가던 중 한 카페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어딘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구글맵에 저장해 놓은 카페였다. 반가운 마음에 간판을 가리키며 친구에게 저길 보라고 했다.


“나 여기 가 보고 싶어서 저장했던 카펜데! 이게 여기 있었구나.”


“그래? 그럼 들어가자.”


“그래!”



우리는 그렇게 또 예쁜 카페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내려오는 곳이었다. 꼭 누군가의 정원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잠시 앉아서 메뉴판을 사이에 두고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했다.


각자 마실 음료를 하나씩 정하고, 디저트를 시킬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포크를 들어 올리자마자 어디선가 비둘기들이 나타나서 디저트 접시 위로 몸을 날리더니 각자 입에 한가득 디저트를 물고 달아났다. 적막한 허공에는 푸드덕거리는 날갯짓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약탈이었다. 나와 내 친구는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쳐다봤고, 그분들은 그저 포크만 든 채 빈 접시를 내려다봤다. 허망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디저트는 먹지 않기로 하고 그냥 음료만 주문했다.



우리는 카페에 잠시 앉아서 시간을 보낸 뒤, 곧 일어나 다시 사원을 향해 갔다.



분명 여유 있는 일정이었는데 시간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조금 서둘러야 약속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치앙마이의 길에는 우리의 걸음을 잡아두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바나나 꽃, 예쁜 골목길과 카페. 모든 것이 우리를 걷다가 멈추게 한다. 그래서 거리를 시간으로 예상하는 것이 종종 의미가 없을 때도 있었다.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에 도착하자, 눈앞에 웅장한 사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저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을까. 찬찬히 살펴보고 있자니 경건한 마음까지 일었다.



이 사원은 사랑을 이루어 주는 사원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연인들이 많이 온대! 친구가 옆에서 가이드처럼 속삭였다. 문득 전에 방콕에서 우연히 들렀던 또 다른 사원이 떠올랐다. 그곳은 재물을 불러온다고 했었는데. 사원마다 저마다의 영험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이 정말 흥미로웠다.


'영험한 사원'에 대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방콕에서 있었던 일이다.



친구와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나는 우리가 가려고 하는 사원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한참 흥미로운 정보들을 읽다가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가 오늘 가려는 사원, 영험하대!"


"... 어?"


내 말에 표정이 안 좋아진 친구가 말이 없어졌다. 나는 친구가 멀미를 하는 걸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멀미를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표정이었다. 무언가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었다. 왜 그러냐고 묻는 내게 친구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영어만 된다며. 지금 소원 영어로 어떻게 말해야 하나 생각 중이야. 근데 왜 태국어도 아니고 영어지?"



'영험하대.'라는 나의 말을 '영어만 돼.'로 들은 것이다.


"아니, 영험. 영험하다고..."


택시기사님께서 한국어를 하지 못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었다.




다시 치앙마이 이야기로 돌아와, 우리는 그렇게 걷다가 사원에 도착했다.


사원 앞에는 소원이 적힌 종이들이 달려 있었다. 이 종이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소원이라니. 바람에 흔들리는 그 수많은 종이들을 보며 그 종이를 매달던 사람들의 마음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의 소원을 등에 지고 있는 사원이 처음보다 더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 누군가의 소원 중에는 꽤나 명료한 소원도 있었다. 마침 눈에 띈 그 소원이 공감이 되어서 나도 같이 빌었다. 저도요. 저도 힘센 사람 되게 해 주세요.


사원을 간단하게 둘러보고, 우리는 헝태우인으로 향했다. 영은이와 영은이의 친구는 우리보다 조금 더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헝태우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서 바로 보이는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보였다. 나를 발견한 영은이가 손을 흔들며 불렀다. 치앙마이에서 만나니 더 반갑다는 인사를 나눈 영은이와 나는 곧 각자의 친구를 서로에게 소개했다.


“영은아, 드디어 우리가 만났구나. 보고 싶었어.”


내 친구는 영은이에게 만나서 반갑다며 손에 들고 있던 망고를 건넸다. 아까 올드타운에 들렸을 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망고밥가게에서 산 망고였다. 그건 영은이와 처음 만나는 자리를 기대하던 내 친구가 준비한 선물이었다.


나와 내 친구는 그 가게의 망고와 망고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이야기하며 메뉴판을 펼쳤다. 어떤 걸 먹고 싶냐는 나와 내 친구의 질문에 영은이는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맛있는 거 많지. 나와 내 친구는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들을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나온 음식들을 먹으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조금 늦은 거, 얘가 길 가다가 바나나만 보이면 무조건 사진 찍으려고 해서 그래. 나는 치앙마이 길에 바나나가 그렇게 많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 10분 거리가 20분 정도 걸릴 정도로 많아.”


“신기한 걸 어떡해.”


내가 친구에게 혹시 바나나 처음 보는 거냐고 묻자, 영은이가 그러지 말라며 말렸다.


“신기할 수 있지!”


“그래, 신기할 수 있지. 영은아, 내 바나나 모음집 볼래? 오늘도 모았어.”


결이 비슷한 두 사람이 꽁꽁 뭉쳐 서로를 편들어 주고 보호해 줬다. 영은이는 정말로 바나나 잎과 거꾸로 자라는 바나나들이 신기한지 대체 이런 게 어느 길에 있냐며 자기도 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장소를 물어보기까지 했다.


나의 황당한 표정을 본 영은이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영은이는 표지판 사진을 엄청 찍어. 우리도 이 식당까지 금방 오는 거린데 더 걸렸어.”


영은이의 친구의 말에 나는 속으로 뜨끔했다. 표지판은 나도 신기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의 언어가 적힌 표지판을 보면,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새삼스럽게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다. 특히 태국의 표지판은 그 생소한 글씨가 마치 그림처럼 보여서 나도 길에 멈춰 서서 자주 찍고는 했다.



태국의 표지판 중에는 이렇게 무슨 뜻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표지판도 있었다. 우리는 아주 귀여운 고양이가 나타난다는 표지판일 거라고 우리끼리 정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귀여운 표지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결국 멈춰 서서 사진을 찍게 되는 것이다. 10분 거리를 20분에 걸려서 가는 데에 어쩌면 나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겐 표지판, 누군가에겐 바나나. 취향이라는 것은 이토록 다양했다. 가장 오래된 친구의 취향도, 대학교 생활을 하며 룸메이트도 지냈던 친구의 취향도, 그리고 나의 취향까지도 여행을 와서야 더 잘 알게 되었다. 여행은 정말 신기한 것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나를 보며 웃는 영은이에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다.


“나는 왜 네가 언젠가 치앙마이에서 오래 살 것 같지? 자꾸 그런 예감이 들어.”


그 말이 예언이 될 수 있기를 정말로 바라고 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