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름 : 치앙마이에서 친구와 보낸 30일
친구와 내가 태국에서 한 달을 살며, 하루라도 빼먹으면 허전한 게 있었다. 바로 타이 밀크티였다.
우리는 ‘차트라뮤’라는 브랜드의 밀크티를 자주 마시곤 했는데, 그 브랜드의 밀크티뿐만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타이 밀크티를 함께 주문해서 마시는 것도 좋아했다. 직접 만드는 밀크티의 맛이 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점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마셔보고 알 수 있던 것은, 우리는 모든 타이 밀크티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밀크티이지만, 유난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치앙마이대학교의 앙깨우저수지이다.
노을이 지는 앙깨우저수지는 정말 아름다웠다. 주황빛으로 물든 노을이 호수 위에 펼쳐질 때는 아주 작은 빛으로 부서지듯 흩어졌고, 하늘은 수채화 같았다. 우리는 호수 주변에 앉아 그 반짝거림이 멎을 때까지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마치 그려진 것 같은 그곳을 산책하며 타이 밀크티를 마시면 평소보다도 더 달게 느껴졌다.
우리는 종종 노을이 시작되기 전, 밀크티를 챙겨 들고 앙깨우저수지에 가서 산책을 하다가 노을이 지는 호수를 감상하고, 해가 떨어지면 야시장에 가곤 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저녁의 일정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야몰’이라는 쇼핑센터 앞에서 치앙마이 대학교까지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마야몰은 우리 숙소와 아주 가까웠다. 우리는 그 셔틀버스를 타 보기로 했다.
우리는 님만해민에서 카오소이를 점심으로 먹고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다. 노을이 지기 조금 전에 앙깨우저수지에 가기 위해서였다.
코코넛케이크를 주문하면 고양이가 다가와주는 카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였다.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마야몰 안에 있는 차트라뮤에 가서 밀크티를 주문했다. 이제 거의 준비가 끝난 셈이었다.
우리는 주문한 밀크티를 손에 들고 셔틀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서 대기를 했다. 셔틀은 ‘썽태우’라는 태국의 빨간 자동차인데, 트럭과 비슷한 모양이고 8인승이었다. 조금 일찍 온 덕분인지 우리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우리 뒤에는 학생으로 보이는 태국 친구들 무리, 그리고 아이들과 부부로 구성된 4인 가족이 있었다.
그렇게 줄지어 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셔틀버스에 탑승하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우리가 그쪽으로 움직이던 찰나였다. 줄의 끝에 서 있던 여성이 남편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해? 앞질러. 제치라고.”
그리고 아내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고 당황한 우리는 남자에게 쫓기듯 급하게 셔틀에 올라탔다. 또 당황스러운 건, 우리가 타기 직전에 나와 내 친구의 앞에 끼어들어 탔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관광객의 옷차림을 한 두 사람이 줄을 서지 않은 채 우리를 스치듯 지나가 먼저 탑승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뒤에는 4인 가족이 나와 내 친구를 밀 듯이 들어와 탑승을 했다. 나와 내 친구는 둘 다 표정이 굳어진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셔틀의 인원이 채워지자 기사님은 곧 떠날 준비를 하셨다. 눈으로 바깥을 살피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그 태국 학생들 찾아? 지금 도로로 가서 택시 잡으려는 것 같아. 저기.”
그 학생들을 찾기도 전에 셔틀은 출발했다.
나와 내 친구, 관광객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 그리고 4인 가족. 이렇게 8명이 타고 있는 셔틀이었다.
앙깨우 저수지를 향해 가는 셔틀버스인데, 나의 심정은 마치 양심 없고 뻔뻔한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호송차처럼 느껴졌다. 그 사람들엔 물론 나도 포함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져서 조용히 밖을 보며 앉아있는데, 그 침묵을 깨는 건 우리를 앞지르려 했던 남자였다. 한 시간 전에 셔틀을 타러 왔었는데 사람이 많아 타지 못 했었다는 말을 셔틀 안에 있는 사람들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중얼거렸다. 누굴 위한 건지는 모를 변명 같은 혼잣말이었다. 나는 그 가족이 한 시간 전에 셔틀을 놓친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셔틀을 놓쳤어도 그게 그들의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앞지르고 먼저 탈 수 있는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했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기에는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핑계였다.
호송차는 곧 우리를 치앙마이 대학교에 내려주었다. 우리는 밀크티를 손에 들고 터덜터덜 저수지를 향해 걸어갔다. 우리 뒤에 서 있던 태국 학생들과 비슷한 학생들이 보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부끄러워.”
“나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이 돌아왔다.
“치앙마이 대학교로 가는 셔틀을 태국 학생이 못 탔다니.”
“맞아. 나도 계속 그 생각 중이었어. 원래대로라면 그 학생들이 탔어야 하는 거잖아.”
“죄책감이 들어. 나라도 내려서 양보를 했어야 했는데... 계속 후회가 돼.”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알잖아. 그럴 틈이 없긴 했다는 거...”
잠시 말을 멈춘 친구는 ‘이것도 변명 같긴 하다. 치사하다.’ 하고 덧붙였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걷자 곧 우리가 좋아하는 그 풍경이 나타났다. 우리는 앙깨우저수지를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저수지를 따라 계속해서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의 파란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노을을 구경하기 위해 저수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노을의 색과 비슷한 밀크티를 마셨다. 오늘따라 밀크티의 쌉쌀한 맛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았다. 늘 달콤했는데.
서서히 퍼져가는 노을을 구경하다가, 문득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을을 감상하기 위해 저수지에 동그랗게 모여 앉은 사람들.
그 짧은 오렌지빛의 찰나를 눈에 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그 사람들의 모습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참 이상하다. 어느 순간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은 같은 풍경 앞에 나란히 앉는다. 그 순간들이 쌓여서 모순을 만든다.
참기 힘들 만큼 싫다가도, 귀엽다. 이건 어쩌면 쌉쌀하다가도 달콤한 밀크티 같은 것 아닐까. 나는 여전히 사람이 이상하고 사람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