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여름 : 치앙마이에서 친구와 보낸 30일
치앙마이를 평일에만 다녀오면, 절반만 즐기고 온 것이라는 말이 있다.
치앙마이에는 주말에만 열리는 마켓들이 있는데, 그 마켓들은 치앙마이의 아기자기한 매력을 가득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말에만 열리는 그 특별한 마켓들을 정말 좋아했다.
이번 한 달 살기 중에도 우리는 역시 주말을 기다렸다. 주말이 오면 우리는 누가 깨울 필요도 없이 일어나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늘 코코넛마켓이었다.
나는 코코넛마켓에 갈 때마다 단순히 시장이 아닌 마치 치앙마이의 작은 축제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곳곳에 늘어선 야자수 나무들은 초록빛 싱그러움을 뿜어냈다. 귀여운 소품들과 맛있는 간식들도 많아서 우리는 코코넛마켓에 갈 때마다 시간을 잠시 잊고 구경을 하고는 했다.
코코넛마켓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카놈크록이라는 이름의 코코넛팬케이크와 코코넛아이스크림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코코넛마켓을 한 바퀴 돌며 귀여운 엽서와 마그넷을 구경하고 카놈크록을 한 그릇 샀다. 코코넛마켓의 한 구석에 서서 방금 구워져서 나온 따끈하고 부드러운 코코넛 팬케이크를 이제 막 입에 넣으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그거 알아? 여기 이 늪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대.”
등 뒤에서 들려온 어느 여성분의 목소리에 우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분은 자신의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이 늪에? 와, 어떡하냐.”
돌아오는 친구분의 맞장구소리에 우리는 카놈크록을 입에 가져가지 못하고 손을 내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친구가 입모양으로 물었다.
“... 어떻게 알았지?”
그것은 그날로부터 약 1년 전의 일이다.
그 일은 우리가 처음 코코넛마켓에 방문한 날에 일어났다. 날씨가 아주 좋았던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와 내 친구에게는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단짝인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솔이였다.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솔이. 우리는 늘 셋이 함께 여행을 다녔는데, 이번에는 치앙마이 여행이었다. 우리는 이국적이지만 따뜻한 치앙마이에서의 하루하루를 설레며 보내고 있었다.
코코넛 마켓에 처음 도착한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열린 그 작은 축제에 감탄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신기해했다. 생소한 간식이 신기했고, 봐왔던 것과 조금 다른 모양새의 과일이 신기했다. 늘어선 야자수가 신기했고, 초록색 늪과 그곳에 떠 있는 코코넛마저 신기했다.
코코넛마켓은 야자수가 줄지어선 늪을 가운데에 두고 둥그렇게 펼쳐져있었고, 야자수 아래에선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와 내 친구들도 야자수 아래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삼각대가 없었던 우리는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우리와 함께 사진을 상부상조할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 우리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 두 분이 보였다. 우리는 그분들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 동안 눈치를 보다가 적당한 때에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두 분 같이 사진 찍으시지 않으시겠어요? 저희가 사진 찍어드리면 혹시 저희도 찍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다행히도 흔쾌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우리는 우리가 먼저 찍어주겠다며 그분들의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몇 장의 사진을 가로로 세로로 다양하게 찍었고, 그다음은 우리 차례였다. 우리 셋은 야자나무 아래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다. 서로 끌어안기도 하고, 만세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충분하다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나는 방금 찍은 사진을 솔이와 함께 보고 있었고, 친구는 나와 솔이가 서있는 곳에서 한 네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핸드폰으로 무언가 확인했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우리 쪽으로 오려던 순간이었다. 가방 입구에 걸쳐져 있던 친구의 핸드폰이 친구가 걸음을 떼자마자 가방에서 튀어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친구는 곧바로 ‘헉’ 하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문제는 늪에 가까이 있던 땅은 미끄러웠고, 핸드폰이 땅의 가장자리에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핸드폰은 우리의 눈앞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늪으로 빠져버렸다. 놀란 나와 솔이는 친구에게 뛰어갔고, 친구는 늪으로 손을 집어넣었지만 핸드폰은 잡히지 않았다. 늪은 짙은 초록색이었고, 안이 보이지 않았다.
“어떡해. 이 쪽으로 미끄러졌어?”
나는 친구의 옆에서 같이 늪에 손을 넣고 휘저었고, 솔이는 누군가를 불러오겠다며 뛰어갔다.
“안 되겠어. 여기서 손으로 못 잡을 거 같아.”
그리고 내 친구는 결국 바지를 걷어 올리고 늪으로 들어갔다. 늪으로 들어간 친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치 금속탐지기가 된 것처럼.
“조심해! 진짜 조심해야 돼!”
내 외침에 고개를 끄덕거리던 친구는 헉하는 외마디 숨소리와 함께 다리를 들어 올렸다.
“잡았다!”
친구의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휴대폰이 걸려있었다. 내 친구가 발가락으로 늪에 빠진 핸드폰을 건진 것이다. 하지만 친구가 휴대폰으로 손을 뻗자, 발가락에서 미끄러진 휴대폰이 다시 늪으로 퐁당 소리를 내며 빠졌고, 다시 잽싸게 발가락으로 건져 올렸지만 또다시 손까지 가지 못 하고 미끄러져서 빠졌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간다, 친구야.”
마치 오래된 인형 뽑기 기계처럼 마지막에 미끄러져서 빠트리는 친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바지를 걷고 늪 안으로 들어갔다. 내 친구의 옆으로.
늪 안은 굉장히 미끄러웠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물기를 잔뜩 머금은 진흙이 파고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다시 발가락으로 들어 올리면 내가 손으로 잡을게!”
늪 속에서 다시 다리를 휘젓던 친구는 잠시 후 휴대폰을 건져 올렸고, 나는 친구의 발가락 사이에 아슬하게 걸려있는 그 휴대폰을 얼른 잡았다.
“됐다!”
안도한 표정으로 친구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이었다.
“와!”
환호성이 들렸다. 친구의 것도, 나의 것도 아닌 환호성 소리였다.
우리는 환호성이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늪에 빠져있는 우리를 다리 위에 모여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촬영을 하며 환호성을 하고 있었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전을 하고 있었다니. 이렇게 많은 카메라들이 내 쪽을 향해 있는 것은 유치원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당황한 우리는 일단 늪에서 빠져나왔다.
늪에서 나오자, 곧 우리 쪽을 향해 솔이가 달려왔다.
“여기로 달려오는데 웬 환호성소리가 들려서 혹시 너희가 핸드폰을 찾은 건가 했는데, 정말이었구나.”
솔이의 옆에는 관리자로 보이는 태국 남성분도 함께였다. 관리자분은 늪에서 이제 막 나온 우리의 모습을 보고 샤워를 할 것인지 물어보셨다. 우리는 샤워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물로 씻어내야 할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고, 곧 우리는 바디워시가 든 바구니를 건네받고 관리자분의 뒤를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화장실 옆에 딸린 작은 샤워실이었다. 우리는 각자 칸에 들어갔다. 나는 일단 진흙이 잔뜩 묻은 다리에 물을 뿌렸다. 그리고 몸 곳곳에 남은 늪의 흔적을 물을 뿌리며 없애고 있는데, 갑자기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아서 웃음이 났다. 결국 참지 못하고 찬 물을 몸에 뿌리며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러자 옆 칸에서 친구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둘이 웃는 소리가 화장실에 울리는데, 밖에서도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를 데려다준 태국분들도 웃는 소리였다. 그렇게 우리 모두 한참을 웃었다. 후에 친구가 물에 빠진 자신의 핸드폰을 걱정하긴 했지만, 일단 그때는 한참을 웃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웃고 있는 태국분들이 계셨다. 우리는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앞으로 모으고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꾸벅꾸벅 몇 번의 인사를 하며 우리는 서서히 샤워실에서 멀어졌다.
그 이후, 여행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온 친구는 핸드폰 수리를 맡겨야 했다. 나는 수리를 맡기러 가는 친구와 함께 갔다. 친구의 핸드폰을 점검하시던 분께서 물으셨다.
“그냥 물에 빠뜨리신 게 아니신가 보네요? 혹시 어떤 곳에 빠뜨리셨나요?”
“... 늪 이요.”
내 친구는 핸드폰을 결국 바꿔야 했다.
그리고 그 일로 약 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어쩐지 예전에는 없었던 것 같은 경고판이 코코넛 나무에 틈틈이 붙어있고, 우리 뒤에 서 계시던 분들은 우연히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치앙마이의 주말이 반갑다. 코코넛마켓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작은 축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