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치앙마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매일 여름 : 치앙마이에서 친구와 보낸 30일

by 땅콩



친구와 나의 치앙마이의 한 달 살기가 약 일주일 남았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지냈던 숙소를 정리하고 다른 숙소로 이동을 해야 했다. 한국에서 우리 둘의 친구인 솔이가 와서 치앙마이 여행에 합류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솔이는 우리의 치앙마이 한달살이가 일주일 남았을 때 이곳으로 오기로 했었다. 우리는 남은 일주일을 솔이와 함께 보내고, 다 같이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처음 솔이가 치앙마이로 오는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는데, 벌써 한달살이가 거의 끝나가고, 솔이가 오는 날이 되다니. 시간이 어떻게 이렇게 빠를 수 있을까. 아쉬웠다.


친구의 상태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았다. 아쉽다, 정들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얼굴에서 섭섭함이 드러났다. 친구와 나는 몇 번씩 고개를 돌려 우리가 지냈던 숙소를 뒤돌아보았다.


그렇게 어렵게 발걸음을 떼고 새로운 숙소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였다.


“야, 엄청 좋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친구가 집안으로 튀어 들어갔다. 좀 전 까지는 분명 발걸음이 무겁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무척 가벼워 보였다. 어느 정도냐면,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속도로 집 안을 돌아다녔다.



“아, 어제 들어와 있을 걸!”


친구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너 떠나기 싫다더니!’ 하며 장난을 쳤지만, 새로운 숙소에 감탄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두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늘어났으니 숙소를 조금 더 큰 곳으로 옮겼는데, 직접 와 본 숙소는 기대보다 훨씬 더 좋았던 것이다.



야, 부엌 좀 봐. 야, 여기 2층 좀 봐. 와, 여기 올라와 봐.


이리 와라, 여기 봐라. 한참을 서로 보여주고 보러 가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우리는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던 이사의 목적이 떠올랐다. 우리는 공항으로 친구를 맞이하러 가야 했다.


오랜만에 온 치앙마이 공항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북적였다. 공항에는 설레는 표정을 한 사람들과, 떠나기 싫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지금 이곳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난 치앙마이에 살고 있는 동안 늘 시간이 멈추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특히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는 더욱 간절하게.



"솔이 짐 찾았대."


"그럼 곧 나올 것 같은데?"


우리는 캐리어를 끌고 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사람들 속에서 솔이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였다. 손에 쥔 종이에서는 바스락 소리가 났다.



'치앙마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공책에 네임펜으로 적은 환영인사였다. 몇 번의 캐리어 무리가 우리를 지나쳐갔을 때,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던 그 얼굴이 보였다. 솔이였다. 캐리어를 돌돌 끌며 우리 앞으로 온 솔이는 우리의 손에 들린 허술한 환영인사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환영해 줘서 고마워."


우리는 솔이가 오면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좋은 치앙마이 가이드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꽤 열정 있는 편이었다.



"오늘 아주 할 게 많아. 너 점심은 뭐 먹고 싶어?"


"나 태국음식 먹고 싶어."


"태국가정식이라면 정해져 있다. 레츠고."


방콕 조교가 다시 돌아왔다. 코끼리인형의 영혼이 다시 내 친구의 몸속에 들어간 듯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솔이의 짐을 두고 식사를 하러 나갔다. 친구말대로 태국 가정식이라면 정해져 있었다. 헝태우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창가자리에 앉았다. 오랜만에 태국음식을 먹은 솔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너무 그리웠다고 말했다. 보고 싶었다, 그리웠다. 솔이는 그 말을 한 달 만에 만난 우리보다 태국음식에게 먼저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다. 태국음식이 그리운 게 어떤 마음인지 잘 알고 있으니까.



우리의 조교는 노을이 시작되기 전에 식당을 나설 것을 지시했다. 다음 일정은 앙깨우저수지에서 산책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앙깨우 저수지로 갔다. 아직 노을은 시작되지 않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저수지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늘 둘이 오던 곳에 오늘은 셋이 함께 왔다. 우리는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싶었을 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는 노을을 기다리며 우리가 좋아하는 음료를 꺼냈다. 마일로와 달콤한 우유였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천천히 우리가 기다리던 그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마치 커튼이 열리고 무대가 시작되듯이. 우리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렇게 짧은 무대를 감상했다.


"멋지다. 여기 너무 좋다."


솔이가 작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가이드 평점 같은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평가에 내심 기뻤다.


솔이가 온다면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친구와 상의하는 건 마치 우리의 치앙마이 한 달 살이를 돌아보는 과정 같았다. 여기 좋았지, 거기 맛있었지. 우리는 좋아했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이 함께 한 그 주는 친구와 내가 치앙마이 한 달 살이 동안 모았던 즐겨찾기들의 일주일 요약본이 되었다.


요약본은 말 그대로 요약본이었다.


한 달 동안 모아 온 즐겨찾기들을 일주일에 압축시켰더니, 일주일은 마치 하루처럼 지나갔다.


그렇게 치앙마이의 생활이 끝이 났다.


일주일 만에 다시 온 치앙마이공항에는 여전히 아쉬운 표정의 사람들과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우리는 아쉬운 쪽이었다. 시간이 멈추는 기적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게이트에 앉아 버거킹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으며 친구가 말했다.


"있잖아."


해쉬브라운에 케첩으로 눈코입을 그리고 있다가 고개를 드니, 친구가 말을 이었다.


"난 이상하게 우리가 다시 치앙마이에 오게 될 거 같은 느낌이 계속 들어. 금방은 아니더라도."


치앙마이를 떠나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나는 치앙마이를 내내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다시 돌아온다면 '치앙마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든 누군가가 없어도 환영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매일 여름인 따뜻한 곳이니까.


늘 로또를 사면 어김없이 빗나가는 친구지만, 이번엔 로또보다는 잘 맞는 예상이기를 바라며 비행기에 올랐다.


안녕, 치앙마이. 다녀오겠습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