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노라마

by 조민재

초등학교 2학년 과학탐구대회, 그림과 글짓기 중 하나의 방식을 택하여 지금보면 광범위한 과학에 관한 어느 것이든 자기 나름대로 설명할 것을 만7~8세 아이들에게 요구했다. 글보다는 그림이 편한 대부분의 정상적인 꼬마들은 그림 그리기를 선택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림을 그릴수록, 글짓기의 경쟁률이 낮아져 글짓기를 택한다면 입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긴 한 어린아이는 대담하게 도화지 대신 원고지를 집어들었다. 반의 모든 친구들이 스케치와 붓질로 분주하게 도화지를 채워나가는 동안, 살면서 써본 글이라고는 개학 전날 급하게 몰아쓴 방학일기밖에 없는 이 아이는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원고지 두 장 분량의 글을 써나간다. 당시 과학은 커녕, 지식이라고 머리에 들었던 것은 역사책에서 본 정체불명의 미라의 매장 방식에 관한 절차뿐. 미라의 매장방식을 통해 본 죽음의 생화학적 과정에 대해 얼기설기 끄적여본다. 결과는 장려상, 고학년이 포함된 전교생들과의 경쟁이었기 때문에 저학년 반이었던 우리반의 유일한 수상자가 되었다. 나는 다소 서툴었던 입상경험을 통해 글쓰기와 잊지 못할 연을 맺게 되었다. 어릴적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을 일찍 들인 데는 이러한 작고 소중한 성공경험이 내재되었음이 분명하다.


일기를 열심히 쓰기 시작한 때도 이때부터이다. 모두가 그렇게 쓰기 싫어했던 일기가, 나한테만큼의 기분 좋은 루틴이 되었다. 아니, 항상 밀리지 않은 것은 아니므로 루틴이 되고 싶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간에, 나는 내 삶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작업들을 굉장히 사랑한다.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무수한 기록과 유물을 통해 후손들은 찬란했던 옛날의 그 시절을 재현하고 반추할 수 있다. 시간의 힘에 짓눌려 저물은 무수한 세월도 기록의 힘으로, 기록된 부분에 한하여 불멸의 자격을 얻는다. 후손들은 갖가지 기록을 접하고, 그 중 인상적인 역사의 흔적을 자신의 마음으로 초청하여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발견한다.


우리의 인생 역시 다를바 없다. 인생의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서 나의 성장과 인식에 영향을 미친 사건을 자기만의 언어로 메모한다. 이후 기억이 심하게 왜곡되기 전, 나만의 언어로 메모된 순간들을 문장으로 풀어 명료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그 순간을 저장한다. 그리고 저장된 순간을 반복재생하기 위해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나의 글이 담긴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내 인생의 중대한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갈 것이다.


과학글짓기로 상을 탔던 어린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공부는 뒷전이고 축구에 빠져 살다가, 교육 치맛바람이 강하기로 유명한 목동에서 급격한 성적 우상향을 이뤄내며 연세대학교 경제학부에 진학하였다. 1년의 코로나와, 1년 반의 군생활을 쇠고 나서 복학 후 연애도 하고, 교지도 만들고, 장학금도 타보고, 해외봉사도 가보고, 투자와 아르바이트로 돈도 많이 벌었다. 2025년 지금, 그는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어릴적 말씀대로 법조인을 꿈꾸기 시작한다. 경제학, 철학, 법학을 공부하고, 공학도인 아버지와 군인이셨던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자아의 조각들을 소중히 여기며 기록하는 습성이 있다. 언젠가 용산에 집을 사서 자신만의 서재에 '기록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꿈이다.


앞으로 이 브런치북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기고하려 합니다: 인생을 바꾼 3년 간의 입시 과정, 연세대학교 경제학부에서 3학기 연속 성적우수장학금을 받으며 얻은 깨달음, 군대/해외봉사/대외활동 등을 통해 경험한 다양한 인간군상에 관한 고찰, 투자로 순수익 500만원을 달성한 방법과 재테크에 관한 현실적인 생각 등 저만 알고 기록하던 다사다난한 파노라마들을 편하게 풀어내려 합니다. 만약 제 의식과 무의식의 교차점이 만들어갔던, 혹은 만들어갈 새로운 장면들을 더 알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그 장면들을 나름대로 정교하게 배열하려 노력했던 파노라마들을 엿보고 싶으시다면, 단지 앞으로 업로드할 저의 글들을 자투리시간에 편하게 읽으시면 되겠노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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