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나는 지금도 ‘우리의 기괴한 동거’를 설명할 수 없다. 혹시 우리 집에서 같이 살래요? 하고 물은 적도, 그녀가 그 집에 가서 살아도 돼요?라고 물어온 것도 아니었다.
그날 카페의 문을 닫고 그냥 걸으며 옆을 돌아보니 그녀가 있었다고 이렇게 설명하면 사람들은 이해할까? 그렇게 이성과 논리를 잠시 내려놓자, 우리는 어느새 거실 한가운데 어색하게 서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녀가 왜 내 집에 있는 거지! 어색하고 불편한 공기를 느끼며 그냥 멍하니 있다가 문득 저녁을 안 먹었다는 생각이 나서 “저녁 먹어야겠죠?”라고 물었다. 그녀는 “저야 뭐.”라고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을 했다. 그녀의 말은 잠긴 피아노 건반처럼 누르면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히 울리는 소리였다. 잔잔하고 안정된 말투였다.
나는 관객 앞에서 어설픈 연기라도 하듯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분명 우리 집인데 내가 왜 긴장을 하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를 썼다. 냉장고에서 신김치와 스팸 한 통을 꺼냈다.
“김치볶음밥 어때요?”라고 묻자 그녀는 엷은 미소를 띠며 “김치볶음밥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행지 펜션에서 내려다보는 강물 위로 피어나는 물안개 같았다.
그녀가 가져온 유일한 짐이라면 에코백과 그 안에 든 노트북이었다. 사실, 그녀는 내가 운영하는 동네 작은 카페에 가끔 오던 손님이었다. 별말은 없었지만 창가 쪽에 앉아 많은 시간 노트북에 무언가를 작성하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액자에 담긴 이쁜 그림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하다가도 문득 창가 쪽을 쳐다보곤 했다. 그녀는 사람의 시선을 끌 만한 외모도 아니었다. 그러나 하얀 피부 아래 감춰진 깊이를 알 수 없는 흡인력은 끊임없이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커피 한 잔을 시키고 앉아서 그녀는 하루 종일 도대체 무슨 글을 쓰는 걸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집 근처에 작은 카페를 냈다. 출입구와 창문이 연달아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나는 커피를 내리며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한 번 들른 이들이 조용한 분위기에 이끌려 다시 찾아오곤 했다. 아마 맛보다는 마음이 놓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카페는 내 삶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침이면 카페로 출근하여 커피 머신을 점검하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가끔은 커피콩을 볶는 일을 하기도 했다.
앤틱 콘솔 위에 놓인 해외여행지에서 사 온 장식품들은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나는 가만히 앉아 커피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커피의 쓴맛에 끌려 바리스타 공부를 시작했다. 커피가 생두일 때에는 향도 맛도 별로 없는 지극히 평범한 열매에 불과하다.
그런데 고열로 볶고, 볶어진 열매를 짓이기고, 뜨거운 물로 그 안의 맛을 추출해 내면 커피콩은 자신의 진액을 다해 쓴맛을 만들어낸다. 그 작은 열매가 혼신을 다해 그렇게 쓴맛을 낸다는 사실과 그 쓴맛 너머에 온갖 여운과 향과 부드러움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커피의 세계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가끔 오던 그녀가 시간이 지나자 거의 매일 오는 단골이 되었다. 창가 자리는 그녀의 지정석이 되었고 매일 마시는 커피는 그녀에게 멈춤과 사유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우리는 조금씩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커피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매상을 위해 손님을 홀릴만한 말재주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무심해 보여도 지낼수록 편안해지는 그런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네, 근데 커피보다 사장님이 더 좋아서요.”
의외의 대답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그런 내 모습에 당황스러웠는지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사실, 커피는 매개니까요. 그저 저는 이곳과 연결된 게 좋아요. 연결은 관계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다소 추상적이었지만 커피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통찰이라는 생각에 놀라웠다.
그때부터 우리는 손님이 없어 지루해질 때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오네요. 오랜만에 오는 비라 나무들이 좋아하겠어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꺼내도 그녀는 대답을 잘해주었다.
“그러게요. 나무한테 미안했는데.”
나는 십 년의 결혼을 접기 위해 남편과 별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잘못 꿰진 단추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고 나보다 여러 면에서 월등히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었다. 남편이 대기업에 입사한 지 삼 년 되었을 때 거래처에 근무하고 있던 나를 만났다.
처음에는 남편이 가진 조건이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만남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남편의 소탈함과 따뜻한 배려가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그러나 위축된 만남을 극복하고 시작된 결혼 생활은 나 자신을 빠져나올 수 없는 덫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남편의 가족은 애당초 나를 가족으로 맞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들과 있으면 긴장해야 했고 그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보여줘야 했다. 늘 의식적으로 나를 포장하고 실수라도 할라 조심해야 하는 일은 피곤하고 힘에 부쳤다.
그런데도 가족 안에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없다면 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민하다고만 했다. 제발 편해지라고도 했다.
우리는 김치볶음밥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주방에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부산히 움직였던 흔적들이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주방이 좀 지저분하네요. 미안해요.”
“자연스러운데요. 뭐.”
그녀는 김치볶음밥을 한 입 떠먹더니 친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안에는 ‘나는 당신을 이해해요.’라는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거실에는 숟가락이 식기에 닿을 때 만들어지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날 뿐, 낯선 이의 방문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으며 오늘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그녀는 말없이 식사를 마친 뒤, 일어나 설거지를 하겠다며 수전 쪽으로 걸어갔다. 나도 급히 따라 일어나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며 ‘괜찮아요. 오늘은 제가 할게요. 손님이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며 방긋 웃더니
‘그럼,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을 하고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등에 느끼며 그릇을 하나하나 닦았다. 나는 그녀가 작은 방을 사용하도록 작은 방에 있던 남편의 짐들을 구석으로 치웠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카페로 향했다. 그녀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우리 사이엔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자는 약속도 동거에 대한 어떤 계약도 없었다. 처음부터 그랬듯 각자의 호흡대로 흘러가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생두를 꺼내 로스팅 기계에 넣었다. 아직 아무것도 되지 못한 생두는 마치 지금의 내 처지처럼 말 한마디 없이 무심했다. 온도를 서서히 올리자, 공간은 착 가라앉은 공기를 가르며 거역할 수 없는 커피 향으로 천천히 채워졌다.
퍼스트 크랙이 지나고, 로스팅 종료 시점이 다가오자 나는 조용히 마음의 시계를 되감았다. 어디서 멈춰야 할까. 로스터는 매번 인생의 종착역을 고민하는 철도기사 같다. ‘이쯤이면 괜찮다’고 내 안의 감각이 속삭이는 그 순간에 나는 기계의 스위치를 껐다.
창문을 열자 개운한 공기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본격적인 봄이었다. 회백색 나무들 사이로 여린 초록빛이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지난겨울, 나는 힘든 시기를 지났다. 남편과 별거에 합의했다. 그리고 우두커니 매일 그의 짐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과거의 나를 하나씩 부정해 가는 과정처럼 쓰라렸다. 그러나 고통스러워도 해야 할 일이었다.
늘 아메리카노를 사가던 대학생 청년이 오늘은 얇은 옷차림으로 들어섰다. ‘마음이 급한 게다.’ 그는 날씨보다 앞선 계절을 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렸네요.”
내 인사에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네, 이젠 봄이에요. 완연한.”
그는 카디건 단추를 여미며 수줍게 인사를 남기고 돌아섰다.
오전 내내 여러 사람이 커피를 받아 들고는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급히 걸음을 옮겼다.
점심 무렵이 되자 그녀가 에코백에 노트북을 넣어서 카페로 나왔다.
어제 입었던 옷이 아닌 내가 건넨 옷을 입고 있었다. 청바지, 베이지색 경량패딩, 흰색 스니커즈. 묻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우리는 커피라는 음료를 통해 서로를 만나고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커피를 마시며 사색과 논쟁을 즐기기도 하고 문학과 예술의 한 차원 높은 경지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게 커피는 말없이 우리의 삶을 지켜보며 함께 있어 준다. 사실, 그렇게 함께 있어 주는 일 그것이 참된 위로의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점점 알아 간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다가 턱을 괸 채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또 한 모금. 커피는 누군가에겐 사교를 위한 음료지만, 누군가에겐 각성을 위한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그녀에게는 어느 쪽일까? 그녀의 손가락 끝이 다시 빠르게 노트북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다시 식탁에 마주 앉았다. 저녁은 간단히 포장 음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물컵을 꺼내려 거실장을 열자 그것이 보였다.
“어머나, 아가. 집에서 쓰는 물컵이라도 브랜드 제품으로 통일해 놔야지. 막 쓰는 컵처럼 식사 자리에 내놓으면 안 되는 거야.”
‘세상에 신기한 걸 다 보네.’라는 표정의 어머니가 너무나 낯설어 나는 얼어붙듯 머리를 숙였다. 그녀는 명문대 출신답게 오래 숙련된 교양과 세련됨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며칠 뒤, 백화점에서 영국제 머그 세트가 도착해 있었다.
점점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배우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그들의 세계에선 존중받을 자격조차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 갔다.
나는 어머니가 사준 물컵을 눈에 띄지 않게 구석으로 치워두고 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받았던 컵을 꺼내 물을 따랐다.
“어젯밤, 불편하진 않으셨어요?” 이제야 묻고 있다는 사실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네, 내 집처럼 편했어요. 이상할 정도로요.”
그녀는 아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어제보다는 편해졌다는 걸 표정에서 알 수 있었다.
“카페 일은 오래 하셨어요?” 그녀가 물었다.
“결혼하고 시작했으니까… 한 십 년쯤 됐네요.”
대답과 동시에 어색한 정적이 우리 사이를 가로질렀다.
“제가 말씀 안 드렸죠? 사실… 지금 별거 중이에요.”
“네, 어제 작은방에 남자 물건들이 보여서… 혹시나 싶었어요.”
결혼 이후, 나는 그들의 가족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늘 추측해야 했다. 사소한 것부터 대놓고 묻기에는 벽이 너무 높아 그들이 알려 주지 않는 것들을 눈치로 짐작하다 보니 점점 말수가 줄었다.
시부모님은 교양 있고 차분한 분들이었다. 나는 주로 시어머니와 대화했지만, 그녀는 겸손하고 부드러웠다. 때로는 지나치게 저자세로 보일 만큼 남을 배려했다.
그런데,
“아니, 내가 맞춰주니까 지네들하고 수준이 같은 줄 알아! 급도 안 되는 것들 상대해 줬더니!”
나는 점점 그녀의 진심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나에게 먼저 묻는 일이 없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늘 내가 시작했고 끝냈다. 그녀는 내 얘기를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네.” 정도로만 가끔 응해 주었다.
“아픈 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까요?” 답을 듣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어떨 때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많이요.” 그녀의 눈에는 상대에 대한 깊은 공감의 여운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나야 할까요? 가끔 아프다 보면 미워져요. 나 자신도. 남들도.”
내가 ‘별말을 다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런 말까지 해버렸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때는 내 의지도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언제부터인가 버티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와 지내는 날들이 늘어나며 우리는 조금씩 더 편해졌다.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급한 일이 생기거나 알아두어야 할 일은 서로에게 미리 말해두곤 했다. 그녀는 매일같이 카페에 나와 노트북에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나는 그녀가 블로그 작가쯤 될 거라 짐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일 그렇게 글을 쓰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슨 글 쓰세요? 블로그 하세요?”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 네. 블로그는 아니고요. 그냥... 저에 대해 정리를 좀 하고 있어요.”
아직 젊은 그녀에게 ‘정리할 삶’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 순간, 그녀에게서 은은한 커피 향이 풍겨왔다.
그녀는 한참 가만히 있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커피콩 로스팅하잖아요. 자신을 태워서 진액을 얻어내는. 쓴맛이 진하지만, 그 뒤에 여러 가지 맛이 숨어 있잖아요. 저도 가끔 제 삶이… 로스팅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의외였다. 로스팅은 고열로 생두를 볶아내는 과정이지만 그 안엔 온도와 시간, 감각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야 비로소 ‘맛’이 완성된다.
그녀가 ‘로스팅’이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나는 그녀 역시 어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하며 자기만의 맛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지쳐갔다. 어머니를 뵙고 돌아오는 길이면 어김없이 다툼이 시작됐다. 남편은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정이 많고 약한 사람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분이야. 많은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분이라고. 그런 어머니 말 한마디 못 받아들이는 건, 자기 좀 철없는 거 아냐?”
어머니는 절대 직선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듣다 보면 알 수 있었다.
‘내 얘기를 하시는구나.’
이상했다. 남편도, 시누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전파라도 보내는 것 같았다. 시누도 마찬가지였다.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로 임용된 그녀 역시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막말을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교묘했다. 은근히 나를 내려다보았고 오로지 나만 그것을 감지했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 했다. 나에게는 보이는 그것이 남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들의 세계에서 늘 주제는 ‘사람의 격’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워놓은 격에는 나 같은 사람은 결코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었다. 가끔은, 나를 제물로 삼아 ‘우리는 다르다’는 만족감에 취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상하게 겉도는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졌다.
“자기야, 어머니께서 오늘 나한테...”
“잠깐. 그 얘기 이제 그만. 나중에 말하자. 나 오늘 좀 쉬고 싶어.”
남편에게서 벽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해소되지 못한 내 감정은 나 자신을 할퀴다가 결국 남편에게로 향하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글쓰기는 꾸준했지만, 가끔은 갑자기 일어나 짐을 챙겨 들고는 나가버리곤 했다. 무슨 약속이라도 있는 듯 급하게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그녀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까. 신뢰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의 관계가 그리 깊지 않아서일까.’ 알 수 없었다.
8시가 다 되어 카페를 정리하고 나왔다. 카페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였다. 늦은 귀가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혼자 집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봄이라고는 해도 해가 지고 나면 아직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었다.
내 뺨에 스치는 차가운 공기를 맞으며 나는 그날 느꼈던 매서울 정도로 따갑고 시린 통증을 떠올렸다. 가족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평소에는 바깥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날은 어머니가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분답게 그녀의 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정갈하고 맛이 있었다. 식재료 하나하나에는 어머니의 성품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고 늘 깔끔하고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그런 어머니는 자신의 음식에 자부심이 많았고 그만큼 관련 지식도 풍부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는 시누가 대학에 합격한 이야기며 장학금을 받던 일, 유학 시절 쓴 논문이 어떤 상을 받았다는 얘기까지 들려주셨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레퍼토리였다. 한참을 이야기하시던 어머니는 시누의 동창, 그러니까 남편의 결혼상대자로 고려했던 그녀에 대해 언급하려다 이내 말을 돌렸다.
“동현이, 쟤는 원체 인기가 많았어. 어릴 적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봤다니까.”
누구에게 향한 말인지는 모호했지만, 통제력을 잃은 어머니의 말은 허공을 맴돌며 결국 누군가를 겨냥하려는 듯했다. 어머니는 식탁 위에 남아 있던 물컵을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을 싱크대 안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돌아서며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둑년.”
오직 나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그러나 결코 작지 않은 소리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그릇을 그만 놓칠 뻔했다. 평소 교양 있는 말투와 태도로 상대를 제압하던 분이었기에 그토록 노골적인 단어를 입에 올릴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말에 나는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채 나는 눈물을 흘렸다. 사람의 눈 속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끝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설거지통의 그릇들이 번지며 알록달록한 수채화처럼 일렁였다.
‘눈물을 멈춰야 한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펑, 하고 확실하게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격을 중요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고무장갑을 벗은 채 집을 나왔다.
“아니, 저, 저것 좀 봐. 세상에 이게 무슨 일...”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1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의 감각은 여전히 생생했다. 가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릴 것만 같아 고개를 떨구며 걷기도 했다. 그 말이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기억이 지워지기만 한다면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그날 시부모님 댁을 나오자 찬 공기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식혀주었다. 너무 급히 나왔던 탓에 신발을 꺾어 신은 채였다는 걸, 아파트 화단에 걸터앉아 엉엉 울며 신발을 고쳐 신으면서야 깨달았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해서 대신 울어줄 누군가가 간절히 필요했다.
그런데 놀라서 따라온 남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말 없이 내 뺨을 세차게 때렸다.
“아앗!”
뺨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그리고 그날의 상처는 이상하게도 아물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분명해졌다. 남편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그 상처가 너무 아파서 오히려 나는 나 자신을 더 심하게 학대했다.
그래야 남편이 남긴 고통이 상대적으로 덜 느껴질 것 같았다. 나는 며칠을 굶었고 화가 나서 머리를 짧게 잘라버렸다. 그러다 미친 사람처럼 밤늦게까지 돌아다녔다. 못 마시던 술을 마시고 아침이면 화장실 변기에 쏟아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 고통을 눈으로 확인하고 짓밟고 싶었다.
삑삑 삑삑.
나는 아파트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실내에 머물던 사람의 온기가 나에게 와서 닿았다. ‘집에 있었구나.’
고개를 빼고 거실 쪽을 바라보는데 남편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기역 자로 놓인 소파 끝자락에는 그녀가 있었다. 순간,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어, 자기 왔어? 아니, 내가 짐 좀 챙기러 왔는데...”
남편은 당황한 듯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오며 상냥하게 말했다.
“어, 왔어? 많이 기다렸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음, 한 시간쯤 됐나?”
남편은 잠시 눈을 위로 치켜뜨고 머릿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는 듯 말했다.
“그랬구나.”
우린 부부였는데 어색했다. 과연 내가 저 남자와 편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낯선 사람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 옆에 앉아있던 그녀도 덩달아 일어나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오늘 좀 일찍 와 있었는데 갑자기 번호키를 누르고 들어오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오늘 그녀가 갑자기 짐을 챙겨 서둘러 나갔던 걸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은? 먹었어?”
나는 왠지 모르게 남편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니, 아직. 혹시 뭐 좀 먹을 게 있을까?”
별거를 시작했을 때, 남편의 이런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스스로를 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음, 진수성찬은 못 줘. 알지? 간단히 먹자.”
남편은 좋다는 듯 미소 지었다. 나는 대충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 있는 간단한 재료들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녀가 다가와 도와주려 했지만, 나는 괜찮다는 눈짓을 보내며 남편과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저녁을 준비하며 나는 남편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은 유능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성실했고 약속을 잘 지켰으며 내 카페 일도 종종 도와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내 등 뒤에서 남편과 그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 사이엔 깊은 공감과 이해가 깃든 편안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공기는 따뜻했다.
그러나 그 따뜻함이 나에게는 결코 편하지 않았다. 나는 애써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 했다. 접시를 내려놓거나 냉장고 문을 여닫으며 작은 소음을 만들었고 그 안에 그들의 목소리가 묻히기를 바랐다. 뒤돌아보진 않았지만,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래전 내가 기억하는 그 웃음이었다.
그때 느꼈다. 상처는 사람을 닮게 만든다는 걸. 내가 버리려 했던 감정들이 누군가와 공감하며 살아 움직인다는 걸. 참 오랜만에 듣는 웃음이었다. 맞다. 남편은 저렇게 웃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를 향한 감정이 내 안 어딘가 낯선 자리에서 가만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질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저릿한 마음 한편의 감각이었다. 기묘한 서운함이 인사처럼 조용히 다가왔다.
남편이 저녁을 먹고 작은방에 남아 있던 자신의 짐을 가지고 갔다. 이렇게 남남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큰 결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감정이 극도로 정제된 우리 둘의 대화는 허공에 치는 메아리처럼 서로에게 닿기를 바라기만 했을 뿐, 더 이상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마지막 방문 이후, 나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한 번은 그녀가 주방에서 컵을 꺼내 물을 따르고 있었다.
‘저 컵은 내가 구석에 밀어두었던 건데.’ 어머니가 사 보내셨던 명품 머그잔이었다. 그 순간, 짜증과 함께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분노가 폭발하듯 치밀어 올랐다.
‘아니, 저 여자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달려가 컵을 낚아채듯 빼앗아 싱크대 설거지통에 던져 넣었다.
“저기요. 이 컵은 안 쓰는 거예요. 제가 일부러 구석에 둔 건데, 어떻게 찾았어요?”
그 컵이 가진 의미를 알 리 없는 그녀는 놀란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거, 쓰지 마세요. … 그냥, 안 돼요. 그건… 저한테 좀…”
말을 꺼낸 게 미안해진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 그건, 예전에 어떤 사람한테 받은 건데요. 그 사람이 남긴 게, 그거 하나뿐이라서요.”
내 말이 과연 제대로 전해졌을까. 설명하면서도 알 수 없는 체기 같은 것이 명치끝에서 올라왔다. 서로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는 없었고 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지난 일을 일일이 들춰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몰라서…”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사과했다. 그 모습은 예전에 내가 시어머니께 보였던 반응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그날 우리는 거실에 나란히 앉아 침묵이 전해주는 소외와 서늘함을 온몸으로 견뎠다. TV에서는 자막 뉴스가 소리 없이 흘러갔고 그녀는 컵을 들었던 손끝에 시선을 둔 채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다. 나도 설거지통에 던져진 컵을 떠올렸다. 말없이.
컵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안에 억눌려온 감정의 뿌리, 어떤 것으로도 상쇄되지 않는 분노가 있었고 그날 그녀를 통해 나는 그 분노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점점 엇갈리고 있는 걸까. 그녀와 나는 자잘한 일들로 충돌을 빚기 시작했다. 가끔 그녀는 밤늦게 외출을 하곤 했다.
정적이 깃든 밤, 현관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는 어수선한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는 송곳처럼 예민하게 신경을 자극했다.
“어디 갔었어?”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경어를 거둔 채, 거리도 가까워지고 불편함도 솔직해진 상태였다.
“같이 사는 사이면, 적어도 이런 건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내 물음에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방문을 덜컥 열었다.
“왜! 내가 없어지길 바랐던 거 아니었어? 이제 그만 떠났으면 했잖아?”
계획 없이 시작된 동거라 해도 서로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날이 갈수록 대담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가끔은 그녀의 눈빛이 내 어릴 적 거울 속 그것과 닮아 있었다. 말없이 나를 비난하고 이해하려는 척하면서도 끝내 등을 돌리던 그 표정. 그 눈빛을 마주할 때면,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들킨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안 어딘가에 오래 숨겨두었던 감정이 그녀의 얼굴을 빌려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녀와 갈등이 잦아질 무렵, 새벽이면 작은방 문틈 너머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방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대고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녀의 신음은 마치 고통에 겨워 입을 틀어막은 채 흘리는 파열음 같았다. 나는 몇 차례 문 앞을 맴돌다가 결국 내 방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나는 조심스럽게 간밤의 일에 대해 물었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고개를 가늘게 저었다. 더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단호한 몸짓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같이 사는데.”
그녀는 엷게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낮 동안 카페에 앉아 노트북에 무언가를 조용히 써 내려갔다. 그러다 가끔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그대로 멈춘 채 있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그녀가 풍경과 하나가 되어 얼어붙은 것 같았다. 혹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그림 속 인물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갈수록 오히려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일이 더 잦아졌다. 나는 더 깊이 관여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고 그녀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다는 방어적 본능이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여전히 내가 내려주는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표정에는 오랜만에 진심 어린 휴식을 누리는 사람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고요한 행복감이 어려 있었다.
“오늘 커피, 정말 맛있어.”
그녀의 짧은 한마디는 뜻밖의 위로처럼 내게 와닿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밤만 되면 그녀의 신음소리는 전날보다 더 심해졌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방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그녀의 고통을 함께 겪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저렇게 아픈데 왜 병원에 가지 않는 걸까. 나는 왜 그 문을 박차고 들어가 그녀를 끌어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걸까.
다음 날, 결국 나는 다시 물었다.
“도대체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거야? 말을 해야 알지!”
그녀는 수척해진 얼굴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이가 좀 아파서.”
황당했다. 그렇게 격렬하게 신음한 이유가 고작 치통이었다니. 치통이 심하면 환각 증상까지 보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이가 아파 죽을 것 같다는 건 병원에 가면 해결될 일이 아닌가. 나는 걱정은 됐지만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흘렸다.
“뭐야, 치통이었어? 병원에 가야지. 그렇게 심하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거 아니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시선을 피하듯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그녀는 아침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프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치통 때문이라고 말하고 난 뒤부터였을까. 나는 그녀에게서 치통이 만들어낸 듯한 묘한 냄새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은 뿌리 깊은 통증이 형태를 얻어 코끝으로 퍼지는 듯한 냄새였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 안의 썩은 비밀이 입김을 타고 흘러나와 내 안에 숨어 있던 무언가와 부딪치며 공명했다.
로스팅은 판매량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보통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하곤 했다. 카페 안이 뜨거운 김을 내뿜는 커피콩 냄새로 가득 차는 그 시간쯤이면 단골이 된 커피 마니아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보통은 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판매했지만 드물게 핸드드립을 고집하는 손님도 있었다. 사람의 손을 타고 내려진 커피는 확실히 다른 맛이 났다. 나는 손님들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기호를 읽어내려 애썼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커피가 완성되는 동안 손님 곁에 머무르는 것, 그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거실에 앉아 함께 영화를 봤다. 얼마 전 카페 손님이 추천해 준 영화였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었다. 멍하니 화면을 보다가 문득 화면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영화를 보고 있는 듯했지만 어쩌면 나처럼 단지 시선만 두고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나는 사람이 낼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신음을 들었다. 소름이 돋을 만큼 슬프고 끔찍한 소리였다. 나는 잠에서 튀어나오듯 일어나 작은방 문을 두드렸다. 문은 잠겨 있었다.
“못 참겠어? 어떻게 할까? 진통제라도 맞으러 갈까?”
방 안에서는 무언가를 잉태할 때 내는 듯한, 끊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이웃들이 놀라 뛰쳐나올까 봐 걱정될 만한 소리였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고 고통을 억누르고 있었다. 소리는 무엇에 눌린 듯 묵직하게 바뀌어 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방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마치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간 듯, 바싹 마르고 탁한 소리였다.
“아니, 이제 괜찮아. 가서 자… 미안해.”
나는 한쪽 귀를 문에 댄 채, 방 안의 상황을 상상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방으로 돌아와 겨우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먼저 일어나 있었다. 아침은 견과류가 들어간 요구르트와 과일로 간단히 해결하는 게 일상이었고 먼저 깬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루틴이 되어있었다.
식탁 위에 정갈하게 놓인 아침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어머, 벌써 차린 거야?”
그녀는 씩 웃으며 티슈를 뽑아 식탁에 흘린 요구르트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커피는 주로 카페에서 마시기 때문에 아침엔 보리차를 마셨다. 나는 머그에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오늘 카페 나올 거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요구르트를 떠먹기 시작했다.
“이제 괜찮아? 아니, 어제 말이야.”
나는 괜히 말을 꺼냈나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어떻게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응, 괜찮아. 이제.”
그녀는 요구르트를 한 숟가락 입에 넣다가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보며 씩 웃었다. 분명 그녀의 미소였다. 그런데 그 웃음 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한데…'
분명 현실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감각이 나를 덮쳤다.
'뭔가 이상해, 근데 뭐지?'
어지러웠다. 무언가가 잘못됐다. 그런데 정확히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듯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 사이로 있어야 할 무언가가 안 보였다.
그녀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감추고 있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왜 보이지 않지!
“너! 앞니가…… 어디 갔어?”
“너, 너 이게 뭐야. 너 앞니가 어디로 간 거야!”
커피는 내 삶과 닮아있다. 나는 삶의 쓴맛을 어렴풋이 안다. 그것은 내가 삶을 관조할 만큼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겪어왔기 때문에 그 쓴맛이 지닌 무자비함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을 뿐이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그것과 맞서 싸우거나 이기려 무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고통이 나를 통과하도록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지독하게 쓴 그 맛 사이로 단맛이, 신맛이, 또는 기대하지 않았던 고소한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그날 아침, 그녀의 입에서 사라진 '앞니'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방을 챙겨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내내, 나는 눈물을 흘렸다. 설명할 수 없는 혹독한 상실감이 나를 압도하며 존재 깊숙이 스며들었다.
아침 장사를 준비하며 분주히 움직였지만,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나를 위한 것인지, 그녀를 위한 것인지. 눈물은 말없이 흘러내렸고 내 몸을 조용히 돌며 끊임없이 샘솟았다.
그날 그녀는 카페에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내가 화난 듯한 기색으로 나왔기 때문에 나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걸까. 나는 평소보다 이르게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조급한 마음에 아파트 번호키를 서둘러 누르고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 간 걸까. 어색함을 피하려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걸까. 나는 텅 빈 거실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
‘분명 돌아올 거야.’
아무리 우연처럼 시작된 동거였지만 그냥 그렇게 사라지진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가 사라졌다는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자정이 지나도록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늦게 들어온 적도 있었지만,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불안이 차오르고 나의 미숙함이 얄밉도록 후회스러워졌다.
어느새 새벽 두 시가 되었다. 나는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그녀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내가 너무 직선적으로 반응했어.’
후회에 잠기며 나는 그녀가 쓰던 작은방 문을 열었다. 조용히 열린 문 너머로 침대와 침대보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우연히 바라본 그녀의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 의자 위에 놓인 그녀의 노트북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노트북이?’
그녀에게 노트북은 분신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책상이 아닌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도 어딘가 석연찮았다. 감춰둔 걸까? 호기심이 불쑥 올라왔다. 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노트북을 조심스레 거실로 가져왔다. 식탁 위에 올려두고 깊게 숨을 고른 뒤, 노트북을 열었다. 전원이 켜지자 윈도가 아무런 제약 없이 열렸다. ‘비밀번호도 안 걸어놨네.’
누군가가 이걸 들여다보기를 바랐던 걸까.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파란 바탕화면 위에 떠 있는 단 하나의 파일, ‘이지수. hwp’
이지수?
내 이름이었다. 그녀가 내 이름으로 왜?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숨을 죽인 채, 파일을 열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혼란스러웠다.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하고 낯선 문장들이 나를 어디론가 몰아세우고 있었다.
‘나는 이지수 안에서 표류하는 증오와 분노이다.’
뭐지? 오타인가? 이건, 그냥 소설? 그런데 왜 하필 내 이름으로?
‘나는 이지수의 인생을 통해 기생하고 성장했다.’
이 문장에 이르자, 나는 이상한 기시감에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어휘, 익숙한 감정. 누군가가 내 마음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어쩐지 내가 전에 했던 말 같았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아마 나 자신에게 던졌던 말들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인 이지수를, 증오와 분노라는 무기로 난도질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나는 그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암호처럼 얽힌 문장을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또 이런 문장도 보였다.
‘오늘 나는 남편의 상처를 보았다. 그 역시 나만큼 아팠다는 걸 알았다. 상처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어렴풋한 가능성이 우리 사이에서 읽히면서 나는 어느새 그와 함께 웃고 있었다.’
나는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정체는 뭐라는 말인가! 정말 그녀는 내 안에서 자라난 무언가였을까. 꺼내 놓을 수 없었던 감정,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분노, 그리고 오래도록 눌러왔던 상처 뭐 그런 것이었을까. 그것이 내 몸 밖으로 밀려 나와, 스스로를 마주하게 만든 것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녀는 처음부터 어딘가 익숙했다. 알 수 없는 끌림으로 시작된 동거, 공기처럼 스며들던 일상들, 그녀의 말투와 분노, 고통까지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던 감정 같았다. 그녀가 곧 나였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웠다. 충돌조차 낯선 일이 아니었다. 마치 오래도록 외면해 온 내 안의 그림자와 마주한 것처럼.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나는 카페 오픈을 위해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생두를 볶는 날이다. 아직 손님이 오지 않은 이 시간, 나는 이 고요한 공간이 좋다.
여기서 나는 나만의 리듬으로 로스팅을 시작한다. 창문 밖엔 익숙한 거리 풍경이 조금씩 움직이며 살아난다. 커피 향은 밤새 눅눅하게 남아 있던 감정을 밀어내고, 고소한 기운으로 카페를 채운다. 그녀는 그날 이후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가 앞니 하나를 잃을 만큼 치열하게 고통과 맞섰던 그 밤의 기억은 손에 잡힐 듯 여전히 생생하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를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나는 천천히 커피 향을 들이마신다.
어쩌면 이 향은,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징후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직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래, 내가 나를 살게 했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