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조건(완결본)

by 권임정

교사도, 아이도, 제도도 무너졌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심리적 진실을 끝까지 파고드는 리얼리즘 심리소설

※ 본 작품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에 기반한 창작물이며, 실존 인물·기관·사건과는 일체의 관계가 없습니다.


1부 - 그림자를 가진 아이

"세상에는,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화면이 켜졌다. 익숙한 배경음이 짧게 흘렀다가 멈췄다. ‘로그인 중...’이라는 문구 대신, 현수의 얼굴이 거울을 뚫고 어렴풋이 떠올랐다. 현수의 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코를 중심으로 묵직한 감각이 들러붙더니, 욱신거리는 통증이 심장 박동과 엉켜 이상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코를 틀어막고 있던 솜을 조심스럽게 빼내자, 뜨겁고 끈적한 피가 물컹하고 터지듯 쏟아졌다. 피는 손바닥에 고였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거울 속 얼굴은 발효된 빵처럼 부풀어 있었고, 콧등을 중심으로 붉게 부은 살이 성난 듯 솟아올라 있었다.

내려앉은 코뼈, 눈가까지 번진 붓기로 짙던 쌍꺼풀은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실밥 풀린 봉제 인형처럼 눈꺼풀이 흐느적거렸다.

얼굴 전체가 뜨겁게 그리고 조용히 맥박치고 있었다.

현수는 부풀어 오른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보았다.

손끝으로 따뜻한 고통이 번졌다. 입술 위로 흘러내린 피를 손바닥으로 쓸어내자 입가에 가느다란 붉은 선이 그려졌다.

달큼하지만 비릿한 피의 맛이 비위에 거슬렸다.

얼얼하게 굳은 감각 위로, 앞으로 벌어질 일의 무게가 어렴풋이 밀려왔다. 현수는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게임은 시작되었다.


3월이라고는 해도, 바람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을 움켜쥔 듯 매서웠다. 새 학기를 맞은 교무실은 어수선한 분주함과 설렘이 뒤섞인, 어딘가 낯선 공간이었다. 문 선생은 새로 배정받은 교무실 자리에서 막 핸드백을 내려놓고 목에 감았던 머플러를 풀던 참이었다.

“문 선생님, 잠깐 이쪽으로 와 보세요.”

키는 작지만 단단한 체격에 똑 부러지는 말투로 늘 학생들에게 ‘탱크선생님’이라 불리는 학년 부장이 중앙 테이블 쪽에서 손짓을 했다.

“네, 잠깐만요.”

문 선생은 책상 위에 있던 핸드백과 머플러를 책상 밑으로 대충 밀어 넣고 중앙 테이블로 향했다. 잠시였지만, 이내 부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소년은 방금 찬 바람을 뚫고 들어온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전학생인가?’ 직감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새로 맞춘 듯 어깨가 조금 큰 교복, 빳빳한 하얀 셔츠 그리고 아직 이 공간이 낯선 듯 굳은 표정은 소년의 긴장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보통 전학생은 시간이 좀 지나 봐야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다. 첫인상에 속지 말라는 말은 교사 경력 중 얻은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섣불리 단정 지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문 선생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어쩐지, 이 소년은 느낌이 달랐다. 소년에게서는 사람을 향한 예의와 조심스러운 공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소년의 불그스레한 볼 아래로 드러난 맑고 하얀 피부, 그 안에 정돈된 이목구비는 아이가 어떤 보호 속에 자라왔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귀하게 자란 아이구나. 예의도 바르고, 괜찮은 아이같아.’

문 선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년 옆에는 그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몸에 잘 맞는 정장을 입은 채 조용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세련된 태도와 절제된 말투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규율 잡힌 자세와 여유 있는 고운 표정 꼭 특정 직업군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문직 종사자에게서 풍기는 질서감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전학 오셨다고요?” 문 선생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네, 이번에 이 근처로 이사 오게 돼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외모와 어울렸다. 상대를 배려하는 말씨였지만, 동시에 쉽게 얕잡아볼 수 없는 단단한 결이 묻어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얇은 벽 하나를 은근하게 세운 듯한 인상이었다.

“아, 네. 그러시군요. 요즘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낯선 학교에 아이를 전학시킨 학부모라면 걱정이 많을 터였다. 문 선생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말을 붙였다. 대화를 잇기 위한 말이었지만 어딘가 진심이 묻어 나왔다.

“음, 이름이 뭐니?”

문 선생은 소년의 짙은 쌍꺼풀을 보며 ‘엄마를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현수예요.”

현수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가 채가듯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서둘러 정리하고 싶다는 듯 보였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현수를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다행히 현수는 금세 아이들 속에 섞였다. 첫날의 어색함은 점심 무렵이 되자 어느새 사라졌고 그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잘 적응하고 있네. 다행이다.’



문 선생은 오랜 교직 생활에서 길러진 감각으로 현수를 ‘괜찮은 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그 모든 감각과 직관마저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로부터 2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날은 현수가 처음으로 교무실 문턱을 넘은 날이었다.

하얀 피부 위로 붉은 입술이 선명했고 입술 위에 솜털처럼 희미하게 자라난 수염은 그가 사춘기 한가운데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응, 현수야. 무슨 일이야?”

“저기, 있잖아요. 태호가 저를 괴롭혀요. 제가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 패드립 쳐요.”

이맘때 아이들은 말과 행동의 수위를 가늠하는 데 서툴다.

한참을 놀다 보면 누가 먼저 말했는지도 헷갈리고 장난이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태호가?” 문 선생은 의아했다.

태호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아이로 통했다. 행동에 귀여운 구석이 있어 정이 갔고 선이 굵어 어지간한 말에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태호 좀 불러줄래?”

현수와 태호, 그리고 문 선생은 상담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하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문 선생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너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잖아. 하나씩 얘기해 보자.”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말을 조심스레 엮어가며 흐름을 정리하고 누가 어느 시점에서 선을 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문 선생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받아 적었다.

전형적인 중학생다운 말실수가 시작점이었다. 서로 장난을 주고받다가 감정이 격해지고 결국 일이 커진 것이다.

문 선생은 정리한 종이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학생은 자신이 어느 순간 잘못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나란히 고개를 떨구었다. 덩치가 큰 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 태호야, 그럼 어떻게 하고 싶니?”

“제가 현수한테 사과하고 싶어요.”

“현수야, 태호가 사과하고 싶대.”

현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저는 싫어요.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당황스러웠다. 보통 아이들은 서로 잘못을 확인하고 나면 금세 풀고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는 달랐다. 그 단호한 거절 속에는 어딘가 모를 결기와 확신이 스며 있었다. 문 선생은 잠시 말이 막혔다가 이내 태호를 다독였다.

“태호야, 현수가 지금은 사과를 받고 싶지 않대. 아마 시간이 좀 필요한가 봐.”

“네, 선생님. 저는 기다릴게요.”

두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내며 문 선생은 조심스레 당부했다. 서로 불필요하게 부딪치지 말고 각자 조금 거리를 두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현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교무실을 찾았다.

“선생님, 서준이가 저를 괴롭혀요.”

“선생님, 지호가 저한테 이걸 던졌어요.”

“선생님, 경태가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문 선생의 피로는 서서히 쌓여갔다. 현수는 늘 담담했고 정확했으며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제된 말들 속에 점점 이상한 것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문 선생은 점점 지쳐갔다. 현수는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집요하게 문 선생을 찾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을 중재하고 어긋난 관계를 다시 잇는 일은 매번 적잖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했다.

그래도 문 선생은 믿고 있었다. 이런 일들 역시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는 하나의 성장통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 책상 위에 누군가가 쪽지를 올려놓았다.

‘선생님, 현수가 자꾸 약한 친구들을 괴롭혀요.’

손바닥만 쪽지에 쓰인 이 한 줄짜리 문장은 무채색 교무실에 갑자기 울려 퍼진 빨간 경고등처럼 이질적이고 선명했다. 문 선생은 그 쪽지를 천천히 접어 서랍 안에 넣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 아이만은… 제발, 아니기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쪽을 택했다.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보다 덮는 일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교사의 직감은 경고하고 있었지만, 사람으로서의 나는 그 경고를 애써 외면했다.

‘현수가 괴롭힌다’는 말은 문 선생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 말은 그동안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의 또 다른 면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문 선생은 ‘내가 하는 이 의심이 맞는 건가.’ 스스로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점차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부터 ‘의심’이라는 이름의 실금이 조용히 생겨나더니 ‘불신’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문 선생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성급한 개입은 오히려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능한 한 자주 교실을 오가며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찰을 이어가다 보니 점점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생겨났다. 정신없이 웃고 떠드는 쉬는 시간 속에서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현수의 표정에는 어딘가 계산된 기색이 있었다.

그의 웃음 너머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의식하는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에는 자기 연출 같은 의도가 배어 있었다.

그의 웃음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정확히 학습한 아이에게서 나오는 계획된 반응처럼 느껴졌다. 부모의 기대를 등에 지고 자라온 아이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이기도 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부모와 솔직하게 상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경험상 많은 학부모들, 특히 자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온 부모일수록 아이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교사가 자신의 자녀를 칭찬할 때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연신 반복했지만, 조금이라도 우려나 지적이 섞이면 “죄송한데요, 우리 아이는 우리가 더 잘 알아요”라는 말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2부 - 무너지는 교실

“진실은 언제나 조용히 무너지고, 그 자리를 소문이 채운다.”


문 선생은 깊은숨을 쉬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 고민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렇게 조심스레 균형을 잡으려 애쓰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의 계절은 자연보다 일찍 찾아온다. 쌀쌀한 기운이 여전한 3월 말이나 4월 초, 아이들은 벌써 반팔 차림으로 운동장을 누빈다.

5월이 되면 아직 여름은 아니지만, 학교 안은 만개한 꽃처럼 생기로 가득하다. 운동회, 체험학습, 현장학습으로 초반의 긴장감은 풀리고, 학생들 사이엔 느슨한 여유가 돌아온다.

그리고 그즈음이면 문제도 더 자주 터진다. 어설픈 장난이 갈등으로 번지고 때로는 극단적인 대치로까지 치닫는다.

“선생님, 빨리요. 현수가 피를…”

태호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두려움과 긴장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순간, 문 선생의 가슴이 널을 뛰듯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머릿속에는 온갖 가능성이 뒤섞이며 최악이 아니기를 바랐다.

계단을 뛰어올라 복도 끝 2-1반 교실에 들어섰을 때 바닥에는 핏자국이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뚝뚝 떨어져 있었다.

복도에서 가져온 휴지로 부반장이 바닥을 닦고 있었지만 현수의 코에서 흐르는 피는 닦는 속도를 앞질렀다. 닦는 족족, 또옥, 또옥 핏방울이 새로 찍혔다.

아이들은 놀라 현수를 중심으로 둥글게 물러서 있었다.

그제야 문 선생의 눈에 또 한 명의 아이가 들어왔다. 2-4반 김지우였다. 그는 작지만 어딘가 강단 있어 보이던 아이였다.

지우의 눈은 커다란 충격에 흔들리고 있었고 입술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달달 떨리고 있었다. 문 선생의 심장도 덩달아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눈앞의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몰랐다.

“현수야, 빨리 보건실로 가자.”

현수는 코를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이며 문 선생을 따라 교실을 나섰다. 보건실로 가는 복도에서 문 선생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너희들 싸운 거야?”

현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웅얼거렸다.

“아니요… 장난을, 장난을… 아, 너무 아파요. 아파요…”

“응, 그래. 알았어. 일단 치료부터 하자.”

보건실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는 동안 문 선생은 교무실로 돌아와 현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 어머니, 학교에서 사고가 좀 있었어요.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생긴 일 같긴 한데… 정확한 경위는 조금 더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많이 다쳤나요?”

“보건 선생님 말씀으론... 아무래도 콧뼈가 부러진 것 같다고 하시네요.”

“네? 코뼈요?”

놀란 기색이 전화기 너머로 그대로 전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자리를 비우기가 좀 어려워서요. 애 아빠가 갈 거예요.”



그리고 얼마 뒤 현수의 아버지가 학교에 도착했다. 문 선생 앞에 나타난 현수의 아버지를 보는 순간 막연하지만 어떤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무언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아니 그건 직감이었다.

“현수 아버님, 많이 놀라셨죠. 아이들끼리 장난을 좀...”

“장난이요?”

목소리는 단단히 벼려 있었다.

“선생님, 아이가 피를 흘리는데 장난이라고요? 이건 명백한 학교폭력입니다.”

“아니, 현수가 보건실에서도...” 문 선생이 말을 잇기도 전에 현수 아버지는 조용히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그 표정에는 냉정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교육청 감사담당관실 감사팀장 – 이재훈’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 순간부터 문 선생의 시야가 흔들렸다. 문 선생은 알고 있었다. 그 명함이 어떤 의미인지, 그가 그것을 ‘왜’ 건넸는지도.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렇게 되면 문 선생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교사의 직관, 판단, 지도력, 그 모든 것에 앞서 거대한 시스템에 막혀버린 일개의 기능인이 되어 버린 무력감이 느껴졌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오늘따라 입고 있던 블라우스마저 낡고 초라해 보였다. 문 선생은 교실 바닥의 핏자국을 떠올렸다. 불규칙하게 찍힌 그 붉은 동그라미들. 닦아도 닦이지 않을 것 같은 그 얼룩들이 자꾸만 자신을 향한 경고처럼 마음에서 또렷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아무리 되뇌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교사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문제가 생기면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문 선생의 어깨는 ‘가르침’이라는 이름보다, ‘책임’이라는 무게로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현수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어왔다.

4주 진단이었다.

학교는 해당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공식 접수했다.

현수는 전학 가기 싫었다. 지금 다니던 학교에 계속 남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통학이 편하다는 이유로 근처 학교로의 전학을 당연한 수순처럼 말했다.

그런데 현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전학을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부모님께 맡기기만 하면 결국 해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현수야, 다 아빠한테 맡겨. 아빠가 알아서 할게. 너는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현수는 자라면서 깨달았다.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들이 사라지는 건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모두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안다. 못 이기는 척 맡기면 인생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현수가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어머니가 처음부터 아버지와 생각이 같았던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다툼은 늘 비슷한 패턴을 반복했다.

“내가 수사관이었어. 이런 일은 내가 더 잘 알아.” 라거나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그럼 당신이 해결할 수 있어?” 는 아버지의 말버릇이었다.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범인을 잡는 범죄수사관이었고 그건 곧 아버지가 늘 옳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나와 엄마는 언제나 범인 같은 존재였다.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거절이라도 하면 반드시 무언가가 부서져 나갔다. 식탁 의자가 부러졌고 내 컴퓨터가 박살 났다. 한 번은 엄마의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는 점점 현수의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맡겨두고 신경 끄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스러운 반응만 보이면 집안은 조용했다.

전학 오기 전 학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쭉 함께했던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학교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수는 어떤 순간이 되면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그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였다. 친구들과 놀다 보면, 꼭 ‘선’을 넘고 싶다는 유혹이 몰려왔다. 그 선은 말하자면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살짝만 넘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 식으로 친구를 건드렸다. 그런데 점점 알게 되었다. 이 ‘괜찮음’이라는 감각은 어른들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한 번 허용되기만 하면 다음에도 그 선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 허용이 반복될수록 현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그때부터였다. 현수는 ‘위태로운 선 위에 머무는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른과 친구들 사이에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는 나름의 쾌감을 느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은 나이 많은 여선생님이었다. 현수는 속으로 ‘할머니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열정이 남달랐다. 어떤 날은 아이들과 게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격 이야기가 나오자 놀란 듯 말했다.

“너희, 그런 걸 돈 주고 샀다고?” 그 순간, 현수는 촉이 왔다.

‘이 선생, 귀찮게 굴겠구나. 오래 못 가겠어.’

현수는 이미 안다. 자신은 ‘선을 지키지 않는 아이’고 어른들은 그 선을 넘는 걸 ‘허용해 주는 사람’과 ‘통제하려 드는 사람’ 둘로 나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현수는 그 경계를 자유롭게 조종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어이없어하는 얼굴을 보면 속으로 욕을 했다.

‘병신 새끼들.’

선생님이 기가 막혀하는 얼굴을 보면 ‘루저들’이라고 놀렸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짜릿했다.

물론 조심은 늘 필요했다. 특히, ‘사명감 있는 교사’들은 위험했다.

그들에게 한 번 눈에 띄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아이를 파고들고 반복적으로 간섭하며 끝내는 무릎을 꿇게 만든다.

6학년 담임이 바로 그랬다. 인내심 있게 꾸짖고 끝끝내 “잘못했어요”를 받아냈다.

현수는 그런 교사가 제일 싫었다.



전학 오기 전, 현수는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템 거래’로 일종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을 웃돈을 붙여 팔았다. 처음엔 망설였다.

‘이게 진짜 괜찮은 걸까?’

나는 순진하게 웃는 친구에게 아이템을 건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그 손에서 돈을 받았다.

그 순간, 아주 작게 무언가가 가슴 언저리를 건드렸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괜찮아, 아무도 모르니까. 어차피 다들 이렇게 살아.’

그날 밤,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가 올라가자 기분도 따라 올라갔다. 양심은 놀랍도록 빨리 무뎌졌다.

선은, 밟아보면 쉽게 지워졌다.

그리고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죽여줄게” 같은 말을 던지며 장난처럼 위협했다. 그로 인해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거리 둬야 할 애’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결국, 담임교사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고 몇몇 아이들을 불러 상담하다가 모든 게 탄로 났다. 현수는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굶었다.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부모님은 다급해졌고, 묻기 시작했다.

“무슨 고민 있어? 말해봐.”

현수는 알았다. 부모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 현수 아빠가 움직일 차례였다.



새로 전학 온 학교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전 학교보다 아이들이 훨씬 순했다. 현수는 이 순진한 아이들을 상대로 다시 한번 위태로운 곡예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은근히 들떠 있었다.

게다가 담임도 만만해 보였다. 학교 선생들 대부분이 겉으론 까다롭게 보였지만, 담임이 아이들과 말하는 태도를 보니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이곳 생활도 만만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 학교는 어떠니?”

저녁 식탁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현수는 불고기 쌈을 입에 문 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괜찮을 것 같아요.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요.”

아버지는 고기를 집어 쌈에 올리며 말했다.

“현수야, 너는 너무 곱게 자라서 세상을 몰라.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아빠한테 바로 말해. 아빠가 다 해결해 줄게.”

엄마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조용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이 집의 식탁은 언제나 그랬다. 1%쯤 부족한 대화, 메워지지 않는 공기가 저녁 식탁의 주연이었다.



현수의 새 학교생활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와 이것저것 물었다.

“야, 너 어디서 왔어?”

덩치가 있지만 아직 젖살이 남아 귀여움이 느껴지는 태호가 말을 걸었다.

“응, 나? 준곡중에서 전학 왔어.”

현수가 대답하자 몇 명이 더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와, 거기 부잣집 애들 많은 데 아니야?”

“응, 좀 그래.” 현수는 으쓱이며 대답했다.

“근데 왜 전학 왔어?”

이번엔 마른 키에 눈이 깊은 아이가 물었다.

“학교 앞에 새로 아파트 생겼거든. 거기로 이사해서.”

“와, 대박. 거기 되게 좋다던데.”

순진한 놈들, 현수는 속으로 웃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두 가지뿐이다. ‘있던가, 세던가.’ 오늘은 ‘있는 척’을 했으니 이제 서서히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흘려볼까. 그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나왔지만 간신히 삼켰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판, 신분이 세탁된 기분이었다.

‘여기서 좀 잘 지내볼까. 어른들 눈엔 순진하고 예의 바르지만, 실제로는 조용히 수를 놓는 그런 아이 코스프레 좋았어.’

피식, 현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조금씩 친해진 친구들과 게임 이야기를 나누고 공통 관심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했다. 현수는 게임을 워낙 잘했고, 아이템도 잘 다뤘다. 너무 노련하게 보이면 친구들이 질려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친구들을 잘 관리해야 장사도 잘 된다. 현수는 그걸 잘 안다.

그날도 게임 이야기 중이었다. 태호와 티격태격하던 중, 분위기가 묘하게 틀어졌다.

“야, 태호. 어제 왜 게임방에 안 들어왔어? 일찍 잤냐?”

“아, 우리 누나랑 뭐 좀 하느라고…”

“야, 너네 누나 이쁘냐?”

“좀, 이쁘지. 왜?”

현수가 살짝 비틀어 말했다.

“그럼 C컵이냐?”

순간, 태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야, 이 변태 새끼야. 뭔 소리야!”

“뭐 변태? 그럼 니 어미는 뭐냐?”

현수는 ‘슬슬 약발 먹히겠군’ 싶었다.

“야, 뭐라고? 니 어미는 A컵이냐?”

태호는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듯 달려들었다.

주변 친구들이 몰려들어 둘을 뜯어말렸다. 현수는 숨을 헐떡이며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걸음은 빠르면서도 침착했고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날 일은 수습되긴 했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이 녀석들이 아직 내 진가를 모르는 게 분명해.’

그날 이후, 그는 친구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현수의 레이더에 들어온 건 1반에서 가장 체격이 작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해도 목소리가 목구멍 너머로 기어들어 가듯 작아서 바로 옆 친구조차 듣기 어려웠다. 저 아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놀아도 별문제 없겠다 싶었다. 자리도 가까워서 무언가를 던지거나 괴롭히기에 적당했다. 현수는 지우개를 잘라 그 아이에게 톡톡 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뒤를 돌아다보며 누가 던졌는지 찾는 눈치였지만, 곧 체념한 듯 그대로 맞고만 있었다.

'한심하긴.'

현수는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가정 시간에 실습하고 남은 전선 조각이나 톱밥 따위를 주워 그 아이 옷 속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아이는 움찔하며 돌아봤지만, 현수가 씩 웃는 걸 보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 병신이야.’

현수의 괴롭힘은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이어졌다. 주변 친구들 역시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말릴 수는 없었다. 현수에게는 감히 넘보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 경찰이었어. 지금은 어려운 시험 합격해서 교육청 감사실에서 일해. 선생님들도 아빠한텐 꼼짝 못 해.”

아이들은 ‘교육청’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괜히 얽히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교무실을 오가며 교실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담임에게 고자질했다.

친구들은 ‘괜히 엮였다가 무슨 일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담임이 있어도 현수처럼 은밀하고 교묘하게 일을 꾸미는 아이는 담임조차 어쩌지 못한다는 걸.



현수는 점심 급식을 마치고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막 교실에 들어서자 여러 명의 친구들이 요즘 유행하는 게임 캐릭터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 김지우가 있었다.

‘어? 저 새끼, 4반이잖아. 4반이 우리 반에 감히!’

현수는 그 무리에 끼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혼쭐을 내주고 싶다는 충동을 함께 느꼈다. 지우는 익살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캐릭터 흉내를 내고 있었고 친구들은 빙 둘러서서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지우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명백했다.

순간, 부러움이 밀려왔다. 지우는 중심에 서는 법을 알고 있었다.

현수도 그들 틈에 섞였다. 옆에 서서 같은 캐릭터를 흉내 내고 목소리를 변조해 유행어를 따라 했다. 친구들이 웃으며 현수를 돌아봤다.

그러자 현수가 중심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자 지우가 다시 앞에 나서 더욱 과장된 몸짓을 선보였다. 현수가 한껏 시선을 끌었다고 생각했지만, 지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현수는 더 크게 더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며 분위기를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이 하나둘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하품을 했고 누군가는 시계를 흘끔거렸다. 파장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얘들아, 조금만, 조금만 더 놀자.” 현수는 다급해졌다.

지우가 돌아서며 말했다. “야, 그만해. 이제 가야 돼.”

현수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얘들아, 이제 곧 종 칠 때가 됐어!”

누군가 외쳤다. 피곤함과 조급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현수는 지우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누가 더 잘하는지 한번 붙어보자.’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우는 툭툭 털며 돌아섰다.

그 순간, 오기가 뇌를 치고 올라왔다. 어디서 비롯된 감정인지도 모른 채, 현수는 지우를 다시 붙잡아 세웠다.

“조금만 더 하자, 응? 조금만 더.”

몸이 뒤틀리며 균형이 깨졌고 두 사람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 현수는 지우 위에 올라타 그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지우는 웃으면서도 괴로워했다.

‘이건 웃겨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웃는 걸지도 몰라.’

그 생각이 현수를 더 짜릿하게 했다.

주변에서는 낄낄거리는 소리와 “그만!”이라는 외침이 섞여 들렸다.

“야, 그만해! 제발. 그만하자고!”

지우는 밑에서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현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간지럼은 점점 더 격해졌다. 그의 한 손은 지우의 갈비뼈를 다른 손은 목을 향해갔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짧은 순간, 지우의 몸이 버둥거리다 멈칫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틀며 일어섰다.

“야, 인마. 그만하라니까!”

지우의 주먹이 현수의 코에 정통으로 날아들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코피가 솟구쳤다. 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동그랗게 번져갔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분명 아픈데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건… 예전에 아빠에게 맞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겁에 질린 지우가 망연히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팔을 잡았다.

“야… 괜찮아? 미... 미안해…”



일이 복잡해지리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현수 아버지는 4주 진단서 얘기를 다시 꺼냈다.

“선생님, 조금 서운하네요. 진단서 4주 나왔는데, 애들끼리 장난이었다고요?”

“네, 현수 아버님…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처음에 현수가 분명히…”

“아니, 애들이 뭘 안다고요? 현수한테 물어봤더니, 선생님이 몰아붙인 데다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고 자기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네요.”

문 선생은 입을 열어야 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조합되었다가 흩어지고 다시 조합되다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을 맴돌기만 했다.

“여하튼, 이게 작은 일입니까? 그 '김지우'라는 학생, 우리 애한테 사과 한 마디 없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학교에서도 제대로 조치해 주세요. 제가 지켜볼 겁니다.”

아이들의 장난은 종종 어른들의 상상을 넘는다. 매일같이 안전교육을 해도 창문에 매달려 장난치는 아이들, 복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 넘어지는 아이들, 막대기로 똥침을 하다 병원에 실려가는 아이들. 학교는 그야말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사고가 터지면 질문은 달라진다. “안전교육은 제대로 했는가?”, “초기 대응은 적절했는가?”, “학교는 무슨 조치를 취했는가?”

그때부터 교사는 교육자가 아닌 기능인처럼 느껴진다. 매뉴얼 중 어떤 조항을 놓쳐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되짚으며 자책하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높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내려앉는다.



문 선생은 인조잔디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제 그 소리는 더 이상 활기나 기쁨으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이들을 바라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현수가 웃고 있을 때 문 선생은 본능적으로 그의 눈을 피했다.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진실을 알아도 말할 수 없고 거짓을 눈치채도 침묵해야 하는 자리. 가슴 한가운데가 휑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도 교사인 척을 해야겠지.’



가르침의 자리는 언제나 험지였다. 사실, 문 선생은 오래전부터 현수에게서 이상한 징후를 느껴왔다. 특히 그가 가끔 보여주는 눈빛.

그 눈빛에는 ‘나는 지금 판을 읽고 있다’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섬뜩함이 스며 있었다.

학교 측은 교육청 보고를 위한 자료를 준비 중이었다. 사고 당시 교실에 있었던 10여 명의 학생들을 각각 따로 불러 진술서를 받았다.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이 본 장면을 적었고 대부분의 진술서에는 ‘싸움’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오히려, 현수가 먼저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어 지우를 괴롭혔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많은 아이들은 당시의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정신없이 놀아서…”,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아이들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 선생도 학생들의 진술서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그러나 담임인 그는 개입할 수 없었다. 아니, 개입해서도 안 되며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 마디라도 던지는 순간, 그는 이미 현수 아버지가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들지 모른다.



문 선생은 조심스레 지우에게 물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

지우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그러면 몸 어딘가가 뜨끔하고 마음 어귀에서부터 쓰디쓴 무언가가 서서히 번져 나온다. 분명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있었고 그때 현수가 갑자기 끼어들어 자신을 툭툭 건드렸다. 같이 놀자는 신호였을까.

‘그때 웃으며 받아줬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곧 수업이 시작될 듯했고, 어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너, 근데 누구니?”

서로를 알아갈 틈도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선생님 오시기 전에 끝내야 돼”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현수가 갑자기 지우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얼른 일어나고 싶었지만, 현수는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웃음은 터져 나왔지만, 몸은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그만해.”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현수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한 손으로 지우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이제 진짜 그만하라고!’

그 순간, 갈비뼈 옆을 비켜나가는 그의 손을 밀치듯 벗어나며 지우는 벌떡 일어났다.

주먹은 무의식적으로 휘둘러졌다. 어디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허공 어딘가로 손을 뻗었을 뿐이다.

그러나 딱딱한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현수가 코를 감싸 쥔 채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은 자꾸 지우의 뒷목을 붙잡았다.

‘내가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닐까. 너무 늦게 반응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정말로, 너무 힘들었다.



그 후로 지우는 수업 시간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문 선생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이미 ‘학교폭력’이라는 구도로 일이 흘러가기 시작한 뒤였다.

그 순간부터 학교폭력 담당교사 외의 교사는 개입할 수 없었다.

잘못 흘린 말 한마디가 두 가정의 갈등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울 수 있었고 싸움이 격해질수록 그들은 하나같이 학교를 탓하기 시작했다.

“담임은 뭐 했냐?”

그 말은 언제나 가장 먼저 올라오는 화두였다. 문 선생은 지우의 곁에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저 이 일로 인해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닫혀버릴까 두려울 뿐이었다. 문 선생은 지우의 담임인 김 선생에게 물었다.

“지우… 이번 일로 많이 놀랐겠어요. 부모님은 어떠세요?”

김 선생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대답했다.

“지우 어머니가 현수네 가서 사과드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현수네 쪽에서, 아직 사과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 전 현수가 전학 오고 태호와 다툰 뒤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싫어요. 저는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이 기시감처럼 겹쳐졌다.



현수는 2주 동안 결석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시신경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어 정밀 검사와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며칠 후, 다시 거울 앞에 선 현수는 평소보다 두 배는 무거워진 얼굴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날 복도에서 지우와 장난치며 깔깔 웃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실컷 부풀어라.’

아픈 코를 감싸 쥔 현수는 거울 속 자신의 부은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이것 봐라. 점점 재밌어지는데?”

그의 눈빛에는 흥분과 기대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한편, 문 선생은 며칠에 한 번씩 현수네 집에 전화를 걸어 회복 상태를 물었다.

“에구… 현수가 많이 힘들겠어요. 어머니도 마음이 많이 쓰이시겠죠. 학교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문 선생은 전화를 걸 때마다 고개를 숙여 잘못을 빌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조심스럽게 고르며 한없이 낮은 자세로 사과를 전했다.

그러나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마다 회의가 몰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점점 사라지고, 남은 건 제도적 처리와 책임 떠넘기기뿐이었다.

이쯤 되면 진실은 무력해진다. 힘 있는 자, 권력을 쥔 자가 이기는 게임. 그 안에서 진실은 묻히고, 상처만 남는다.



2주가 지나고 현수가 다시 등교했다. 문 선생은 현수가 오기 전, 교실을 돌며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괜한 소리 말고 그냥 조용히 지켜봐 줘. 알았지?”

교실 문이 열리자, 현수가 들어섰다. 콧등엔 두툼한 붕대가 붙어있었고 두 눈가엔 아직 멍과 붓기가 가시지 않았다.

“현수, 왔구나. 많이 힘들었지?”

문 선생이 말을 건네자, 현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괜찮아?”

이번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래. 나아질 거야.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현수를 보며 문 선생의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혹시나 지우와 부딪치진 않을까. 문 선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교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현수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현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아이들도 그를 조롱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게 맞아주고,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만 본다면 현수는 천진한 개구쟁이 소년 그 자체였다. 놀이에 열중할 때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교실을 누볐다.

그러나 문 선생과 눈이 마주치면, 그 표정은 이내 굳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문 선생은 일부러 말을 걸었다.

“현수야, 오늘도 잘 놀던데. 코는 좀 어때? 괜찮아졌니?”

그러면 현수는 금세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감싸 쥐고 말했다.

“아직… 너무 아파요.”

‘저렇게 소리치며 뛰어다니다 보면 코가 울릴 텐데…’

문 선생은 내심 걱정스러웠다. 현수는 종종 병원 치료를 이유로 조퇴하거나 지각했다.

며칠 뒤, 교육청으로부터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조치 결과가 통보되었다. 지우에게는 ‘2호 조치’가 내려졌다. 2호는 ‘서면 사과 및 특별교육 이수’로, 보통 우발적인 장난이나 비교적 경미한 폭언에 적용되는 조치였다. 지우의 경우, 사건 직후 보건실에서 이뤄진 1차 상담에서 현수가 “장난이었다”라고 말한 점, 그리고 목격자 다수의 진술에 가해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호는 기록으로 남는다. 비록 2년 후 삭제될 수 있다 해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수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전보다도 격앙된 목소리였다.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니, 2호 조치가 말이 돼? 내가 누군데. 가만 안 둬. 그 새끼들, 내가 소송 걸어버릴 거야!”

아빠는 말을 하면 할수록 격분하는 듯 갑자기 탁자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세상에, 창피해서 진짜… 우리 현수가 맞았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겨우 2호 조치라고? 그냥 그 김지우, 걔가 무서워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하자고. 전학 보내자고. 우리 불쌍한 현수!”

현수는 침대에 누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이 모든 상황이 자기에게 어떤 이득을 안겨줄지 그는 이미 계산을 마쳤다.

‘내가 뭐라고 해. 줄타기만 잘하면 돼. 어른들 심리, 잘만 건드리면 뭐든 얻을 수 있어.’

현수는 새로 전학 갈 학교에서는 절대 이번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며칠 뒤, 문 선생은 또다시 학부모 전화를 받았다.

“아니, 저희는 그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참나, 애를 죽일 듯 패 놓고… 그게 2호 조치라니요? 현수 얘기로는 급식실에서 지우를 만났는데, 사과도 안 하더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쪽 부모님들도 그런 식이면 재미없지요.”

문 선생은 입안에서 맴돌다 삼킨 말들을 속으로만 웅얼거리다 삼켰다.

“네… 그러시군요. 교육청 조치에 대해서는 학교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요.”

“아니, 학교에서 대체 어떤 보고서를 올렸길래 겨우 2호 조치입니까?”

그날의 통화는 그렇게 격렬하고 무기력하게 끝이 났다.



그날 밤, 술에 취한 그는 문득 아들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문틈 사이로 스며 나온 형광등 불빛 아래, 현수는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현수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 있는 듯했지만, 그 표정은 고통스럽지도, 억울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듯했다. 낯설고도 익숙한, 바로 자기 자신을 보는 듯했다. 현수는 자신을 쏙 빼닮아 있었다.

그러자 마음 어딘가로 차가운 기류가 스쳐 지나갔다. 현수는 감정이 없는 아이였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끔 그 눈빛은, 이해나 공감의 수준을 넘는, 서늘한 계산과 관망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현수는 자신을 능가하고 있었다. 어릴 적, 여리고 순한 아이였던 현수는 이제 상황을 분석하고, 상대를 조율하고, 이기기 위해선 무엇이든 감수하는 존재로 자라나고 있었다. 의도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와 아들은 서로의 거울처럼 더 큰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술 냄새 가득한 입으로 자조하듯 말했다.

“아니야… 나는 열심히 살았어. 나는 좋은 아빠야.”

그 말은 자신을 향한 기도이자, 끝없는 자기 합리화의 주문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문 선생에게 교육청 민원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무슨 일로...?”

“그러니까, 현수 학생 부모가 신고를 했어요. 담임선생님이 평소에 차별을 했다고. 그래서 현수가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어서 학교에 계속 다니기 힘들다는 민원입니다.”

교육청 민원실이라는 낯선 번호를 받은 순간, 문 선생은 수화기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현수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담담한 말은 마치 차가운 칼날처럼 귀를 베었다.

‘나는 그 아이를 차별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렇게 믿어온 신념이 순간 흔들렸다. 책상 위, 교무수첩 옆에 놓인 명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감사담당관실, 이재훈팀장. 문 선생은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틀렸던 걸까? 아니면, 틀려지게 된 걸까?”

문 선생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현수 아버지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권력으로 가공해 누군가에게 되갚아야만 안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문 선생을 제물로 삼아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다. 교육청에서는 담임으로서의 지도가 정당했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3부 - 괴물의 조건

“괴물은 괴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물로 만들어진다.”



문 선생은 교무수첩을 펴 들고 상담 기록을 뒤적였지만, 같은 페이지를 수없이 넘길 뿐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신감이 들었다. 현수가 어떤 아이인지는 읽혔다.

그러나 읽힌 대로 지도할 수 없었다. 현수와 그의 아버지는 ‘교육’이란 말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상대를 옭아매야 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문 선생은 상담 기록과 학생들의 진술을 모아 교육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문 선생 안에서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이들을 바라볼 이유도, 정당성도, 확신도 없었다.

‘나는 못난 선생이다. 공정하지 못한 교사이고, 사리판단도 못 하는 무능한 사람이다.’

그런 채찍이 스스로를 향해 날아왔다. 현수의 문제는 처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문 선생은 생각했다.

‘나는 교사다. 그런데 잘못을 가르치지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용기를 얻는다.’

이제 이 모든 것은 진흙탕이 되었다. 사건의 본질은 희미해졌고, 남은 것은 버티느냐 무너지느냐의 싸움이었다. 현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거짓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으로 현실을 덧칠했다. 그리고 이제 현수는, 더 나아가 이렇게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분명히 담임선생님께 장난이라는 말, 한 적 없습니다.”

문 선생은 그 거짓말에 분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도록 방조한 자신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지옥을 오가는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날, 현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현수요, 지우가 무섭다네요. 이 학교는 힘들대요. 남편이 교육청에 알아봤다는데, 아마 예전에 다니던 학교 근처로 전학 갈 것 같아요.”

문 선생은 그 소식에 내심 안도했지만, 곧 예감했다. 현수가 떠나는 만큼, 그전에 문 선생을 향한 공세는 더 거세질지 모른다. 교육청 내부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재훈 감사팀장은 ‘감사계의 슈레더’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이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사람, 이제 문 선생은 그 이빨에 제대로 물린 셈이었다.



문 선생은 결국 집 근처 신경정신과를 다니게 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수업 중 몇 차례 실신하기도 했다. 이제 교단은 더 이상 소명을 실현하는 희망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문 선생의 숨통을 조여 오는 조용한 사형장이었다.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날들이 흘렀고 그렇게 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3학년이 되었다. 문 선생은 조금씩 회복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면 현수가 전학을 간 후 문 선생에 대한 별다른 법적 소송이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교육청 감사는 흐지부지 마무리됐고, 징계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혐의’가 아닌 ‘무력함’의 결과였다.

누구도 나를 옹호하지 않았고 누구도 확신을 주지 않았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건이 지나간 자리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현수가 코를 감싸 쥐며 팔짝팔짝 뛰던 모습도 냉정하고 무표정하던 이재훈 감사팀장의 얼굴도. 문 선생은 일상에서 그것들을 마음속 어딘가로 밀어 넣으며 애써 덜어내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가 들려왔다. 현수네가 김지우의 부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손해배상으로 수백만 원을 받아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밤, 문 선생은 아무 말 없이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달빛은 조용했고, 바람은 벽을 따라 흘렀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은 지독한 메아리로 가득했다.

“아니요, 장난을… 장난을… 아, 너무 아파요. 아파!”

그날 교실 바닥에 흩뿌려졌던 핏방울들과 불규칙하게 번진 붉은 원들이 여전히 그녀의 뇌리를 물들였다. 그건 지워지지 않는 무늬로 매일 새롭게 새겨졌다.



현수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왔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또 다른 교실로 향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치 다시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그리고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자, 이제 여기선 무슨 게임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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