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언제나 조용히 무너지고, 그 자리를 소문이 채운다.”(괴물의 조건 2부)
문 선생은 깊은숨을 쉬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지 고민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렇게 조심스레 균형을 잡으려 애쓰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학교의 계절은 자연보다 일찍 찾아온다. 쌀쌀한 기운이 여전한 3월 말이나 4월 초, 아이들은 벌써 반팔 차림으로 운동장을 누빈다.
5월이 되면 아직 여름은 아니지만, 학교 안은 만개한 꽃처럼 생기로 가득하다. 운동회, 체험학습, 현장학습으로 초반의 긴장감은 풀리고, 학생들 사이엔 느슨한 여유가 돌아온다.
그리고 그즈음이면 문제도 더 자주 터진다. 어설픈 장난이 갈등으로 번지고 때로는 극단적인 대치로까지 치닫는다.
“선생님, 빨리요. 현수가 피를…”
태호의 얼굴이 창백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두려움과 긴장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순간, 문 선생의 가슴이 널을 뛰듯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머릿속에는 온갖 가능성이 뒤섞이며 최악이 아니기를 바랐다.
계단을 뛰어올라 복도 끝 2-1반 교실에 들어섰을 때 바닥에는 핏자국이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뚝뚝 떨어져 있었다.
복도에서 가져온 휴지로 부반장이 바닥을 닦고 있었지만 현수의 코에서 흐르는 피는 닦는 속도를 앞질렀다. 닦는 족족, 또옥, 또옥 핏방울이 새로 찍혔다.
아이들은 놀라 현수를 중심으로 둥글게 물러서 있었다.
그제야 문 선생의 눈에 또 한 명의 아이가 들어왔다. 2-4반 김지우였다. 그는 작지만 어딘가 강단 있어 보이던 아이였다.
지우의 눈은 커다란 충격에 흔들리고 있었고 입술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달달 떨리고 있었다. 문 선생의 심장도 덩달아 쿵, 하고 내려앉았다.
눈앞의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몰랐다.
“현수야, 빨리 보건실로 가자.”
현수는 코를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이며 문 선생을 따라 교실을 나섰다. 보건실로 가는 복도에서 문 선생은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너희들 싸운 거야?”
현수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웅얼거렸다.
“아니요… 장난을, 장난을… 아, 너무 아파요. 아파요…”
“응, 그래. 알았어. 일단 치료부터 하자.”
보건실에서 간단한 처치를 받는 동안 문 선생은 교무실로 돌아와 현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 어머니, 학교에서 사고가 좀 있었어요.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가 생긴 일 같긴 한데… 정확한 경위는 조금 더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많이 다쳤나요?”
“보건 선생님 말씀으론... 아무래도 콧뼈가 부러진 것 같다고 하시네요.”
“네? 코뼈요?”
놀란 기색이 전화기 너머로 그대로 전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자리를 비우기가 좀 어려워서요. 애 아빠가 갈 거예요.”
그리고 얼마 뒤 현수의 아버지가 학교에 도착했다. 문 선생 앞에 나타난 현수의 아버지를 보는 순간 막연하지만 어떤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무언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아니 그건 직감이었다.
“현수 아버님, 많이 놀라셨죠. 아이들끼리 장난을 좀...”
“장난이요?”
목소리는 단단히 벼려 있었다.
“선생님, 아이가 피를 흘리는데 장난이라고요? 이건 명백한 학교폭력입니다.”
“아니, 현수가 보건실에서도...” 문 선생이 말을 잇기도 전에 현수 아버지는 조용히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그 표정에는 냉정한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교육청 감사담당관실 감사팀장 – 이재훈’
명함에 새겨진 직함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 순간부터 문 선생의 시야가 흔들렸다. 문 선생은 알고 있었다. 그 명함이 어떤 의미인지, 그가 그것을 ‘왜’ 건넸는지도.
‘이제 내가 뭘 할 수 있지?’
이렇게 되면 문 선생은 더 이상 교사가 아니다.
교사의 직관, 판단, 지도력, 그 모든 것에 앞서 거대한 시스템에 막혀버린 일개의 기능인이 되어 버린 무력감이 느껴졌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오늘따라 입고 있던 블라우스마저 낡고 초라해 보였다. 문 선생은 교실 바닥의 핏자국을 떠올렸다. 불규칙하게 찍힌 그 붉은 동그라미들. 닦아도 닦이지 않을 것 같은 그 얼룩들이 자꾸만 자신을 향한 경고처럼 마음에서 또렷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아무리 되뇌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교사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문제가 생기면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날부터 문 선생의 어깨는 ‘가르침’이라는 이름보다, ‘책임’이라는 무게로 조금씩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현수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어왔다.
4주 진단이었다.
학교는 해당 사건을 학교폭력으로 공식 접수했다.
현수는 전학 가기 싫었다. 지금 다니던 학교에 계속 남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신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통학이 편하다는 이유로 근처 학교로의 전학을 당연한 수순처럼 말했다.
그런데 현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왜 전학을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부모님께 맡기기만 하면 결국 해결된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현수야, 다 아빠한테 맡겨. 아빠가 알아서 할게. 너는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해.”
현수는 자라면서 깨달았다.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들이 사라지는 건 자신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모두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힘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안다. 못 이기는 척 맡기면 인생은 훨씬 쉬워진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현수가 기억을 더듬어 보건대 어머니가 처음부터 아버지와 생각이 같았던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다툼은 늘 비슷한 패턴을 반복했다.
“내가 수사관이었어. 이런 일은 내가 더 잘 알아.” 라거나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그럼 당신이 해결할 수 있어?” 는 아버지의 말버릇이었다.
아버지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범인을 잡는 범죄수사관이었고 그건 곧 아버지가 늘 옳다는 뜻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나와 엄마는 언제나 범인 같은 존재였다.
그의 말에 반박하거나 거절이라도 하면 반드시 무언가가 부서져 나갔다. 식탁 의자가 부러졌고 내 컴퓨터가 박살 났다. 한 번은 엄마의 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는 점점 현수의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맡겨두고 신경 끄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만족스러운 반응만 보이면 집안은 조용했다.
전학 오기 전 학교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쭉 함께했던 친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학교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친구들과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수는 어떤 순간이 되면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그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였다. 친구들과 놀다 보면, 꼭 ‘선’을 넘고 싶다는 유혹이 몰려왔다. 그 선은 말하자면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 같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살짝만 넘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런 식으로 친구를 건드렸다. 그런데 점점 알게 되었다. 이 ‘괜찮음’이라는 감각은 어른들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한 번 허용되기만 하면 다음에도 그 선을 넘어갈 수 있었다. 그 허용이 반복될수록 현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그때부터였다. 현수는 ‘위태로운 선 위에 머무는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른과 친구들 사이에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는 나름의 쾌감을 느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은 나이 많은 여선생님이었다. 현수는 속으로 ‘할머니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열정이 남달랐다. 어떤 날은 아이들과 게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격 이야기가 나오자 놀란 듯 말했다.
“너희, 그런 걸 돈 주고 샀다고?” 그 순간, 현수는 촉이 왔다.
‘이 선생, 귀찮게 굴겠구나. 오래 못 가겠어.’
현수는 이미 안다. 자신은 ‘선을 지키지 않는 아이’고 어른들은 그 선을 넘는 걸 ‘허용해 주는 사람’과 ‘통제하려 드는 사람’ 둘로 나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현수는 그 경계를 자유롭게 조종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어이없어하는 얼굴을 보면 속으로 욕을 했다.
‘병신 새끼들.’
선생님이 기가 막혀하는 얼굴을 보면 ‘루저들’이라고 놀렸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짜릿했다.
물론 조심은 늘 필요했다. 특히, ‘사명감 있는 교사’들은 위험했다.
그들에게 한 번 눈에 띄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집요하게 아이를 파고들고 반복적으로 간섭하며 끝내는 무릎을 꿇게 만든다.
6학년 담임이 바로 그랬다. 인내심 있게 꾸짖고 끝끝내 “잘못했어요”를 받아냈다.
현수는 그런 교사가 제일 싫었다.
전학 오기 전, 현수는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템 거래’로 일종의 권력을 쥐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얻은 아이템을 웃돈을 붙여 팔았다. 처음엔 망설였다.
‘이게 진짜 괜찮은 걸까?’
나는 순진하게 웃는 친구에게 아이템을 건넸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그 손에서 돈을 받았다.
그 순간, 아주 작게 무언가가 가슴 언저리를 건드렸다.
하지만 곧 사라졌다.
‘괜찮아, 아무도 모르니까. 어차피 다들 이렇게 살아.’
그날 밤, 게임 캐릭터의 능력치가 올라가자 기분도 따라 올라갔다. 양심은 놀랍도록 빨리 무뎌졌다.
선은, 밟아보면 쉽게 지워졌다.
그리고 돈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나중에 죽여줄게” 같은 말을 던지며 장난처럼 위협했다. 그로 인해 친구들 사이에서 점점 ‘거리 둬야 할 애’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결국, 담임교사가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챘고 몇몇 아이들을 불러 상담하다가 모든 게 탄로 났다. 현수는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방에 틀어박혀 며칠을 굶었다.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부모님은 다급해졌고, 묻기 시작했다.
“무슨 고민 있어? 말해봐.”
현수는 알았다. 부모가 두려워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 현수 아빠가 움직일 차례였다.
새로 전학 온 학교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이전 학교보다 아이들이 훨씬 순했다. 현수는 이 순진한 아이들을 상대로 다시 한번 위태로운 곡예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은근히 들떠 있었다.
게다가 담임도 만만해 보였다. 학교 선생들 대부분이 겉으론 까다롭게 보였지만, 담임이 아이들과 말하는 태도를 보니 강하게 밀어붙이는 타입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이곳 생활도 만만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새 학교는 어떠니?”
저녁 식탁에서 아버지가 물었다.
현수는 불고기 쌈을 입에 문 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괜찮을 것 같아요. 조금은 걱정도 되지만요.”
아버지는 고기를 집어 쌈에 올리며 말했다.
“현수야, 너는 너무 곱게 자라서 세상을 몰라. 그래도 무슨 일 있으면 아빠한테 바로 말해. 아빠가 다 해결해 줄게.”
엄마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조용히 일어나 냉장고에서 물을 꺼냈다. 이 집의 식탁은 언제나 그랬다. 1%쯤 부족한 대화, 메워지지 않는 공기가 저녁 식탁의 주연이었다.
현수의 새 학교생활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전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와 이것저것 물었다.
“야, 너 어디서 왔어?”
덩치가 있지만 아직 젖살이 남아 귀여움이 느껴지는 태호가 말을 걸었다.
“응, 나? 준곡중에서 전학 왔어.”
현수가 대답하자 몇 명이 더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와, 거기 부잣집 애들 많은 데 아니야?”
“응, 좀 그래.” 현수는 으쓱이며 대답했다.
“근데 왜 전학 왔어?”
이번엔 마른 키에 눈이 깊은 아이가 물었다.
“학교 앞에 새로 아파트 생겼거든. 거기로 이사해서.”
“와, 대박. 거기 되게 좋다던데.”
순진한 놈들, 현수는 속으로 웃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두 가지뿐이다. ‘있던가, 세던가.’ 오늘은 ‘있는 척’을 했으니 이제 서서히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흘려볼까. 그 생각에 괜히 웃음이 나왔지만 간신히 삼켰다. 새로운 학교, 새로운 판, 신분이 세탁된 기분이었다.
‘여기서 좀 잘 지내볼까. 어른들 눈엔 순진하고 예의 바르지만, 실제로는 조용히 수를 놓는 그런 아이 코스프레 좋았어.’
피식, 현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조금씩 친해진 친구들과 게임 이야기를 나누고 공통 관심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중해야 했다. 현수는 게임을 워낙 잘했고, 아이템도 잘 다뤘다. 너무 노련하게 보이면 친구들이 질려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친구들을 잘 관리해야 장사도 잘 된다. 현수는 그걸 잘 안다.
그날도 게임 이야기 중이었다. 태호와 티격태격하던 중, 분위기가 묘하게 틀어졌다.
“야, 태호. 어제 왜 게임방에 안 들어왔어? 일찍 잤냐?”
“아, 우리 누나랑 뭐 좀 하느라고…”
“야, 너네 누나 이쁘냐?”
“좀, 이쁘지. 왜?”
현수가 살짝 비틀어 말했다.
“그럼 C컵이냐?”
순간, 태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야, 이 변태 새끼야. 뭔 소리야!”
“뭐 변태? 그럼 니 어미는 뭐냐?”
현수는 ‘슬슬 약발 먹히겠군’ 싶었다.
“야, 뭐라고? 니 어미는 A컵이냐?”
태호는 금방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듯 달려들었다.
주변 친구들이 몰려들어 둘을 뜯어말렸다. 현수는 숨을 헐떡이며 교실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걸음은 빠르면서도 침착했고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날 일은 수습되긴 했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이 녀석들이 아직 내 진가를 모르는 게 분명해.’
그날 이후, 그는 친구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현수의 레이더에 들어온 건 1반에서 가장 체격이 작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질문을 해도 목소리가 목구멍 너머로 기어들어 가듯 작아서 바로 옆 친구조차 듣기 어려웠다. 저 아이라면 자신이 가지고 놀아도 별문제 없겠다 싶었다. 자리도 가까워서 무언가를 던지거나 괴롭히기에 적당했다. 현수는 지우개를 잘라 그 아이에게 톡톡 던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뒤를 돌아다보며 누가 던졌는지 찾는 눈치였지만, 곧 체념한 듯 그대로 맞고만 있었다.
'한심하긴.'
현수는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기술가정 시간에 실습하고 남은 전선 조각이나 톱밥 따위를 주워 그 아이 옷 속에 슬그머니 집어넣었다. 아이는 움찔하며 돌아봤지만, 현수가 씩 웃는 걸 보곤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 병신이야.’
현수의 괴롭힘은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이어졌다. 주변 친구들 역시 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말릴 수는 없었다. 현수에게는 감히 넘보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빠 경찰이었어. 지금은 어려운 시험 합격해서 교육청 감사실에서 일해. 선생님들도 아빠한텐 꼼짝 못 해.”
아이들은 ‘교육청’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괜히 얽히면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교무실을 오가며 교실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담임에게 고자질했다.
친구들은 ‘괜히 엮였다가 무슨 일 생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담임이 있어도 현수처럼 은밀하고 교묘하게 일을 꾸미는 아이는 담임조차 어쩌지 못한다는 걸.
현수는 점심 급식을 마치고 교실로 향하고 있었다. 교실 안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막 교실에 들어서자 여러 명의 친구들이 요즘 유행하는 게임 캐릭터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들 한가운데, 김지우가 있었다.
‘어? 저 새끼, 4반이잖아. 4반이 우리 반에 감히!’
현수는 그 무리에 끼고 싶다는 마음과 동시에 혼쭐을 내주고 싶다는 충동을 함께 느꼈다. 지우는 익살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캐릭터 흉내를 내고 있었고 친구들은 빙 둘러서서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지우가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명백했다.
순간, 부러움이 밀려왔다. 지우는 중심에 서는 법을 알고 있었다.
현수도 그들 틈에 섞였다. 옆에 서서 같은 캐릭터를 흉내 내고 목소리를 변조해 유행어를 따라 했다. 친구들이 웃으며 현수를 돌아봤다.
그러자 현수가 중심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자 지우가 다시 앞에 나서 더욱 과장된 몸짓을 선보였다. 현수가 한껏 시선을 끌었다고 생각했지만, 지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현수는 더 크게 더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며 분위기를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친구들이 하나둘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하품을 했고 누군가는 시계를 흘끔거렸다. 파장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얘들아, 조금만, 조금만 더 놀자.” 현수는 다급해졌다.
지우가 돌아서며 말했다. “야, 그만해. 이제 가야 돼.”
현수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얘들아, 이제 곧 종 칠 때가 됐어!”
누군가 외쳤다. 피곤함과 조급함이 섞인 목소리였다.
현수는 지우의 팔을 더 세게 붙잡았다.
‘누가 더 잘하는지 한번 붙어보자.’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지우는 툭툭 털며 돌아섰다.
그 순간, 오기가 뇌를 치고 올라왔다. 어디서 비롯된 감정인지도 모른 채, 현수는 지우를 다시 붙잡아 세웠다.
“조금만 더 하자, 응? 조금만 더.”
몸이 뒤틀리며 균형이 깨졌고 두 사람은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 현수는 지우 위에 올라타 그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지우는 웃으면서도 괴로워했다.
‘이건 웃겨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웃는 걸지도 몰라.’
그 생각이 현수를 더 짜릿하게 했다.
주변에서는 낄낄거리는 소리와 “그만!”이라는 외침이 섞여 들렸다.
“야, 그만해! 제발. 그만하자고!”
지우는 밑에서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현수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간지럼은 점점 더 격해졌다. 그의 한 손은 지우의 갈비뼈를 다른 손은 목을 향해갔다.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짧은 순간, 지우의 몸이 버둥거리다 멈칫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틀며 일어섰다.
“야, 인마. 그만하라니까!”
지우의 주먹이 현수의 코에 정통으로 날아들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코피가 솟구쳤다. 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동그랗게 번져갔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분명 아픈데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건… 예전에 아빠에게 맞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겁에 질린 지우가 망연히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팔을 잡았다.
“야… 괜찮아? 미... 미안해…”
일이 복잡해지리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현수 아버지는 4주 진단서 얘기를 다시 꺼냈다.
“선생님, 조금 서운하네요. 진단서 4주 나왔는데, 애들끼리 장난이었다고요?”
“네, 현수 아버님… 죄송합니다. 저는 다만, 처음에 현수가 분명히…”
“아니, 애들이 뭘 안다고요? 현수한테 물어봤더니, 선생님이 몰아붙인 데다 너무 아파서 정신이 없었고 자기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네요.”
문 선생은 입을 열어야 했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머릿속에서 문장들이 조합되었다가 흩어지고 다시 조합되다 사라졌다. 그렇게 한참을 맴돌기만 했다.
“여하튼, 이게 작은 일입니까? 그 '김지우'라는 학생, 우리 애한테 사과 한 마디 없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학교에서도 제대로 조치해 주세요. 제가 지켜볼 겁니다.”
아이들의 장난은 종종 어른들의 상상을 넘는다. 매일같이 안전교육을 해도 창문에 매달려 장난치는 아이들, 복도에서 슬라이딩을 하다 넘어지는 아이들, 막대기로 똥침을 하다 병원에 실려가는 아이들. 학교는 그야말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곳이다.
그러나 사고가 터지면 질문은 달라진다. “안전교육은 제대로 했는가?”, “초기 대응은 적절했는가?”, “학교는 무슨 조치를 취했는가?”
그때부터 교사는 교육자가 아닌 기능인처럼 느껴진다. 매뉴얼 중 어떤 조항을 놓쳐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되짚으며 자책하게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높이는 하루하루 조금씩 내려앉는다.
문 선생은 인조잔디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 너머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제 그 소리는 더 이상 활기나 기쁨으로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이들을 바라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현수가 웃고 있을 때 문 선생은 본능적으로 그의 눈을 피했다.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진실을 알아도 말할 수 없고 거짓을 눈치채도 침묵해야 하는 자리. 가슴 한가운데가 휑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도 교사인 척을 해야겠지.’
가르침의 자리는 언제나 험지였다. 사실, 문 선생은 오래전부터 현수에게서 이상한 징후를 느껴왔다. 특히 그가 가끔 보여주는 눈빛.
그 눈빛에는 ‘나는 지금 판을 읽고 있다’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섬뜩함이 스며 있었다.
학교 측은 교육청 보고를 위한 자료를 준비 중이었다. 사고 당시 교실에 있었던 10여 명의 학생들을 각각 따로 불러 진술서를 받았다.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이 본 장면을 적었고 대부분의 진술서에는 ‘싸움’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오히려, 현수가 먼저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어 지우를 괴롭혔다는 내용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많은 아이들은 당시의 상황을 명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정신없이 놀아서…”, “장난인 줄 알았어요.”
아이들은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 선생도 학생들의 진술서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그러나 담임인 그는 개입할 수 없었다. 아니, 개입해서도 안 되며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한 마디라도 던지는 순간, 그는 이미 현수 아버지가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들지 모른다.
문 선생은 조심스레 지우에게 물었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래?”
지우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 손끝으로 책상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는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그러면 몸 어딘가가 뜨끔하고 마음 어귀에서부터 쓰디쓴 무언가가 서서히 번져 나온다. 분명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있었고 그때 현수가 갑자기 끼어들어 자신을 툭툭 건드렸다. 같이 놀자는 신호였을까.
‘그때 웃으며 받아줬다면, 달라졌을까.’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곧 수업이 시작될 듯했고, 어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너, 근데 누구니?”
서로를 알아갈 틈도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선생님 오시기 전에 끝내야 돼”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현수가 갑자기 지우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중심을 잃고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얼른 일어나고 싶었지만, 현수는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웃음은 터져 나왔지만, 몸은 너무 괴롭고 힘들었다.
“그만해.”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하지만 현수는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한 손으로 지우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이제 진짜 그만하라고!’
그 순간, 갈비뼈 옆을 비켜나가는 그의 손을 밀치듯 벗어나며 지우는 벌떡 일어났다.
주먹은 무의식적으로 휘둘러졌다. 어디를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허공 어딘가로 손을 뻗었을 뿐이다.
그러나 딱딱한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고 정신을 차렸을 땐 현수가 코를 감싸 쥔 채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 장면은 자꾸 지우의 뒷목을 붙잡았다.
‘내가 뭔가 큰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닐까. 너무 늦게 반응한 건 아닐까…’
하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정말로, 너무 힘들었다.
그 후로 지우는 수업 시간에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문 선생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이미 ‘학교폭력’이라는 구도로 일이 흘러가기 시작한 뒤였다.
그 순간부터 학교폭력 담당교사 외의 교사는 개입할 수 없었다.
잘못 흘린 말 한마디가 두 가정의 갈등을 걷잡을 수 없이 키울 수 있었고 싸움이 격해질수록 그들은 하나같이 학교를 탓하기 시작했다.
“담임은 뭐 했냐?”
그 말은 언제나 가장 먼저 올라오는 화두였다. 문 선생은 지우의 곁에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그저 이 일로 인해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이 세상으로부터 닫혀버릴까 두려울 뿐이었다. 문 선생은 지우의 담임인 김 선생에게 물었다.
“지우… 이번 일로 많이 놀랐겠어요. 부모님은 어떠세요?”
김 선생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대답했다.
“지우 어머니가 현수네 가서 사과드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현수네 쪽에서, 아직 사과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 전 현수가 전학 오고 태호와 다툰 뒤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싫어요. 저는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이 기시감처럼 겹쳐졌다.
현수는 2주 동안 결석했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시신경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어 정밀 검사와 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며칠 후, 다시 거울 앞에 선 현수는 평소보다 두 배는 무거워진 얼굴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날 복도에서 지우와 장난치며 깔깔 웃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실컷 부풀어라.’
아픈 코를 감싸 쥔 현수는 거울 속 자신의 부은 얼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 이것 봐라. 점점 재밌어지는데?”
그의 눈빛에는 흥분과 기대가 묘하게 섞여 있었다.
한편, 문 선생은 며칠에 한 번씩 현수네 집에 전화를 걸어 회복 상태를 물었다.
“에구… 현수가 많이 힘들겠어요. 어머니도 마음이 많이 쓰이시겠죠. 학교에서 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문 선생은 전화를 걸 때마다 고개를 숙여 잘못을 빌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조심스럽게 고르며 한없이 낮은 자세로 사과를 전했다.
그러나 전화기를 내려놓을 때마다 회의가 몰려왔다. 사건의 진상은 점점 사라지고, 남은 건 제도적 처리와 책임 떠넘기기뿐이었다.
이쯤 되면 진실은 무력해진다. 힘 있는 자, 권력을 쥔 자가 이기는 게임. 그 안에서 진실은 묻히고, 상처만 남는다.
2주가 지나고 현수가 다시 등교했다. 문 선생은 현수가 오기 전, 교실을 돌며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괜한 소리 말고 그냥 조용히 지켜봐 줘. 알았지?”
교실 문이 열리자, 현수가 들어섰다. 콧등엔 두툼한 붕대가 붙어있었고 두 눈가엔 아직 멍과 붓기가 가시지 않았다.
“현수, 왔구나. 많이 힘들었지?”
문 선생이 말을 건네자, 현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제, 괜찮아?”
이번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래. 나아질 거야.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현수를 보며 문 선생의 심장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혹시나 지우와 부딪치진 않을까. 문 선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교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현수를 관찰했다.
놀랍게도, 현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 아이들도 그를 조롱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갑게 맞아주고,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만 본다면 현수는 천진한 개구쟁이 소년 그 자체였다. 놀이에 열중할 때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교실을 누볐다.
그러나 문 선생과 눈이 마주치면, 그 표정은 이내 굳었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문 선생은 일부러 말을 걸었다.
“현수야, 오늘도 잘 놀던데. 코는 좀 어때? 괜찮아졌니?”
그러면 현수는 금세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감싸 쥐고 말했다.
“아직… 너무 아파요.”
‘저렇게 소리치며 뛰어다니다 보면 코가 울릴 텐데…’
문 선생은 내심 걱정스러웠다. 현수는 종종 병원 치료를 이유로 조퇴하거나 지각했다.
며칠 뒤, 교육청으로부터 학교폭력 사안에 대한 조치 결과가 통보되었다. 지우에게는 ‘2호 조치’가 내려졌다. 2호는 ‘서면 사과 및 특별교육 이수’로, 보통 우발적인 장난이나 비교적 경미한 폭언에 적용되는 조치였다. 지우의 경우, 사건 직후 보건실에서 이뤄진 1차 상담에서 현수가 “장난이었다”라고 말한 점, 그리고 목격자 다수의 진술에 가해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호는 기록으로 남는다. 비록 2년 후 삭제될 수 있다 해도 학부모 입장에서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수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전보다도 격앙된 목소리였다.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아빠와 엄마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니, 2호 조치가 말이 돼? 내가 누군데. 가만 안 둬. 그 새끼들, 내가 소송 걸어버릴 거야!”
아빠는 말을 하면 할수록 격분하는 듯 갑자기 탁자를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세상에, 창피해서 진짜… 우리 현수가 맞았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겨우 2호 조치라고? 그냥 그 김지우, 걔가 무서워서 학교 못 다니겠다고 하자고. 전학 보내자고. 우리 불쌍한 현수!”
현수는 침대에 누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그렇지.’
이 모든 상황이 자기에게 어떤 이득을 안겨줄지 그는 이미 계산을 마쳤다.
‘내가 뭐라고 해. 줄타기만 잘하면 돼. 어른들 심리, 잘만 건드리면 뭐든 얻을 수 있어.’
현수는 새로 전학 갈 학교에서는 절대 이번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며칠 뒤, 문 선생은 또다시 학부모 전화를 받았다.
“아니, 저희는 그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참나, 애를 죽일 듯 패 놓고… 그게 2호 조치라니요? 현수 얘기로는 급식실에서 지우를 만났는데, 사과도 안 하더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쪽 부모님들도 그런 식이면 재미없지요.”
문 선생은 입안에서 맴돌다 삼킨 말들을 속으로만 웅얼거리다 삼켰다.
“네… 그러시군요. 교육청 조치에 대해서는 학교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요.”
“아니, 학교에서 대체 어떤 보고서를 올렸길래 겨우 2호 조치입니까?”
그날의 통화는 그렇게 격렬하고 무기력하게 끝이 났다.
그날 밤, 술에 취한 그는 문득 아들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문틈 사이로 스며 나온 형광등 불빛 아래, 현수는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현수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무엇인가에 깊이 빠져 있는 듯했지만, 그 표정은 고통스럽지도, 억울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듯했다. 낯설고도 익숙한, 바로 자기 자신을 보는 듯했다. 현수는 자신을 쏙 빼닮아 있었다.
그러자 마음 어딘가로 차가운 기류가 스쳐 지나갔다. 현수는 감정이 없는 아이였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끔 그 눈빛은, 이해나 공감의 수준을 넘는, 서늘한 계산과 관망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는 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현수는 자신을 능가하고 있었다. 어릴 적, 여리고 순한 아이였던 현수는 이제 상황을 분석하고, 상대를 조율하고, 이기기 위해선 무엇이든 감수하는 존재로 자라나고 있었다. 의도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와 아들은 서로의 거울처럼 더 큰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술 냄새 가득한 입으로 자조하듯 말했다.
“아니야… 나는 열심히 살았어. 나는 좋은 아빠야.”
그 말은 자신을 향한 기도이자, 끝없는 자기 합리화의 주문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문 선생에게 교육청 민원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네, 무슨 일로...?”
“그러니까, 현수 학생 부모가 신고를 했어요. 담임선생님이 평소에 차별을 했다고. 그래서 현수가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어서 학교에 계속 다니기 힘들다는 민원입니다.”
교육청 민원실이라는 낯선 번호를 받은 순간, 문 선생은 수화기를 쥔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현수가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담담한 말은 마치 차가운 칼날처럼 귀를 베었다.
‘나는 그 아이를 차별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렇게 믿어온 신념이 순간 흔들렸다. 책상 위, 교무수첩 옆에 놓인 명함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감사담당관실, 이재훈팀장. 문 선생은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틀렸던 걸까? 아니면, 틀려지게 된 걸까?”
문 선생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현수 아버지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권력으로 가공해 누군가에게 되갚아야만 안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문 선생을 제물로 삼아 통제할 수 없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했다. 교육청에서는 담임으로서의 지도가 정당했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