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말하는 존재의 철학: 『빵집 재습격』과 나의 햄버거 기억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떠올리고 다시 쓰다”
이 에세이 시리즈는 하루키의 소설을 삶과 철학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봅니다.
공복은 단순한 배고픔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와의 단절을 알리는 몸의 신호입니다.
『빵집 재습격』 속 허기, 그리고 나의 햄버거 기억을 통해
우리는 존재와 결핍, 그리고 몸의 철학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아직 낯선, 메를로-퐁티 관점의 『빵집 재습격』 읽기입니다.
어렸을 때, 며칠 동안 심하게 앓았던 적이 있다.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에다 팔다리가 축 쳐진 내게,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입김처럼 새어 나온 한마디.
“햄버거?”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햄버거 가게. 요즘 같은 브랜드 햄버거가 아닌 지금 기준으론 촌스럽지만, 그땐 세상 제일 맛있던, 인스턴트 패티에 케첩과 마요네즈, 양배추가 전부였던 그것이 떠올랐다.
위로 언니들이 있었지만, 엄마는 오직 나만을 위해 햄버거를 사 오셨고 나는 앉은자리에서 햄버거 서너 개 정도를 먹었다. 그러고는 신기하게도 씻은 듯 나았다.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단지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아팠던 것이었다. 떠올려보면 그날 나는 햄버거만 먹은 게 아니었다. 햄버거는 단지 매개였고, 나는 그것을 통해 엄마의 사랑과 관심에 몸으로 닿는 경험을 한 셈이다.
이제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 병이 났던 나의 경험과 『빵집 재습격』의 주인공이 말하는 ‘저주 같은 공복감’과 닮아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빵집 재습격』 줄거리
『빵집 재습격』의 주인공 ‘나’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밤, 이유 없이 극심한 허기를 느낀다. 그는 아내에게 과거에도 비슷한 공복을 느껴, 친구와 함께 빵집을 털려했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당시 그들은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조건으로 빵을 얻고 돌아왔지만, 그 미완의 습격은 무의식 속 결핍으로 남는다. 이를 들은 아내는 “그때 진짜 빵집을 털었어야 했다”라고 말하며, 지금이라도 다시 습격하자고 제안한다. 결국 두 사람은 산탄총과 스키마스크로 무장을 한 채 맥도널드를 ‘습격’해 햄버거를 얻는다. 그리고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이게 무슨 논리?”라고 느꼈다면, 지금부터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차근차근 풀어보겠다.
나의 경험과 하루키 소설 속 ‘나’는 결국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던지는 질문.
나는 이 세계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리고 나의 결핍은 어떻게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가?
하루키의 주인공이 느끼는 공복은, 몸이 세상과 단절되었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그래서 햄버거를 먹는 일은 단순한 섭식이 아니라, 존재를 다시 연결하는 작은 의례였다.
이제 무대 위로 메를로-퐁티를 초대해 보자.
그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말한다.
“인간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세계를 인식한다.”라고.
1. 몸: 세계와 접속하는 감각의 장치
『빵집 재습격』의 주인공은 바로 이 지점에서 몸의 신호, 허기를 따라 세계를 향해 다시 발을 디뎠다. 그것은 단순한 빵집 습격이 아닌, 몸의 기억을 통해 세계와 공명하려는 존재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햄버거 가게에서의 ‘습격’은 몸의 감각을 회복하고, 다시 세계와 조율을 맞추는 행위였다. 즉, 몸을 통해 세계와 다시 ‘공명’하고, 타자와 ‘연결’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2. 습격인가, 강탈인가: 결핍을 말하는 방식
『빵집 재습격』 속 주인공에게 습격은 단순한 범죄 행위가 아니다.
그는 ‘강탈’과는 다른 무언가를 실행하려 한다.
강탈이란 타인의 것을 빼앗아 결핍을 전이시키는 행위다. 누군가의 것을 가져와야만 내 결핍이 채워지는 방식. 반면 습격은, 자신의 결핍을 세상에 ‘말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나는 결핍되었다”라고 몸으로 외치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습격은, 세상에 자신의 허기를 호소하는 신체적 언어이자, 존재를 회복하기 위한 실천이었다.
3. ‘재습격’이라는 몸의 철학
‘재습격’이라는 행위는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다. 세계와의 접속을 회복하기 위한 의지적 신체의 실천이다. 다시 말해, '먹는다'는 행위는 세계 속에 다시 나를 투영하는 행위다.
빵을 먹는다는 것, 재습격을 통해 허기를 채운다는 것은 곧 세계의 의미를 다시 회복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그래서 ‘재습격’이라는 반복은, 과거 실패한 접속의 복기를 뜻한다. 그것은 잊힌 결핍을 다시 몸으로 소환하여, 세계와의 감각을 다시 조율하고 맞추려는 행위다.
4. 기억은 몸에 새겨진다: 공복의 시간성
‘그때의 공복감’이 현재를 재구성한다.
그 공복감은 과거의 실패한 빵집 습격에서 비롯된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신체에 새겨진 기억, 즉 퐁티가 말하는 몸의 시간성이라고 할 수 있다.
퐁티의 관점에서 보자면 기억은 단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각인된 경험의 지층이다. 그 공복감은 과거의 실패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감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퐁티에게 시간은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통해 지속적으로 살아나는 흐름이다.
그렇게 ‘그때의 허기’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흔드는 살아 있는 감각으로 되살아난다.
“자, 이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무엇이 고픈가?
어떤 결핍이 당신을 흔들고 있는가?
만약,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허기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세상에 조용히 손을 내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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