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 맛있다

by 권임정

아픈데 맛있다.

생각하면 아픈데, 왜 맛있을까?

새벽녘, 낯선 그림자.

도망치듯 숨은 곳은 그 옛날 작은 하꼬방집.

이런 젠장, 또 그 집이네.


어릴 적, 내가 살던 집.

무허가 판자촌 사이, 옴팡 주저앉은 집.

그 집에서의 삶이 나의 바탕색이 되었는지, 아무리 덧칠을 해도 색이 살지 않는다.

그냥, 벗겨버릴까. 색을 벗기니 바탕색이 더욱 도드라진다.

이런.


유난히 폭우가 잦았던 어느 해, 여름.

연탄 광에 쟁여둔 연탄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놀란 엄마가 바닥에 걸쭉하게 곤죽이 되어버린 석탄더미를 온몸으로 박박 긁어모은다.

엄마의 옷이 온통 숯검댕이로 물들고 손가락 사이로 석탄죽이 뻘겋게 흘러내린다.


아프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유년의 초상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아픈데 맛있다.

그 집은 이제 없지만, 내 안의 그 맛은 여전히 까맣다.


하룻밤 사이에 연탄이 사라지는 동네.

누가 가져갔는지 알아도 모르는 척한다.

그곳에 살 때는 벗어나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꿈을 꾸면 다시 그 동네, 그 집.

꿈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집.

무허가 판자촌 사이, 옴팡 주저앉은 나의 집.


하굣길 친구가 따라온다.

이제 저 앞, 우리 집이 보이는데 친구가 따라온다.

두근두근

나는 친구와 그대로 우리 집을 지나친다.

무허가 판자촌 사이, 옴팡 주저앉은 나의 집이

지나치는 나를 그렇게 놓아준다.


아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아픈 것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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