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괴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괴물로 만들어진다.”(괴물의 조건 3부)
문 선생은 교무수첩을 펴 들고 상담 기록을 뒤적였지만, 같은 페이지를 수없이 넘길 뿐 내용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신감이 들었다. 현수가 어떤 아이인지는 읽혔다.
그러나 읽힌 대로 지도할 수 없었다. 현수와 그의 아버지는 ‘교육’이란 말에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상대를 옭아매야 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었다.
문 선생은 상담 기록과 학생들의 진술을 모아 교육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문 선생 안에서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이들을 바라볼 이유도, 정당성도, 확신도 없었다.
‘나는 못난 선생이다. 공정하지 못한 교사이고, 사리판단도 못 하는 무능한 사람이다.’
그런 채찍이 스스로를 향해 날아왔다. 현수의 문제는 처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다.”
문 선생은 생각했다.
‘나는 교사다. 그런데 잘못을 가르치지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한 아이는 결국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용기를 얻는다.’
이제 이 모든 것은 진흙탕이 되었다. 사건의 본질은 희미해졌고, 남은 것은 버티느냐 무너지느냐의 싸움이었다. 현수의 아버지는 아들의 거짓을 덮기 위해 더 큰 거짓으로 현실을 덧칠했다. 그리고 이제 현수는, 더 나아가 이렇게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분명히 담임선생님께 장난이라는 말, 한 적 없습니다.”
문 선생은 그 거짓말에 분노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도록 방조한 자신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지옥을 오가는 시간이 이어지던 어느 날, 현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현수요, 지우가 무섭다네요. 이 학교는 힘들대요. 남편이 교육청에 알아봤다는데, 아마 예전에 다니던 학교 근처로 전학 갈 것 같아요.”
문 선생은 그 소식에 내심 안도했지만, 곧 예감했다. 현수가 떠나는 만큼, 그전에 문 선생을 향한 공세는 더 거세질지 모른다. 교육청 내부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이재훈 감사팀장은 ‘감사계의 슈레더’라는 별명을 지닌 인물이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사람, 이제 문 선생은 그 이빨에 제대로 물린 셈이었다.
문 선생은 결국 집 근처 신경정신과를 다니게 되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 수업 중 몇 차례 실신하기도 했다. 이제 교단은 더 이상 소명을 실현하는 희망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문 선생의 숨통을 조여 오는 조용한 사형장이었다.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날들이 흘렀고 그렇게 2학년이었던 아이들이 3학년이 되었다. 문 선생은 조금씩 회복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면 현수가 전학을 간 후 문 선생에 대한 별다른 법적 소송이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교육청 감사는 흐지부지 마무리됐고, 징계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혐의’가 아닌 ‘무력함’의 결과였다.
누구도 나를 옹호하지 않았고 누구도 확신을 주지 않았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건이 지나간 자리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서서히 잊히고 있었다. 현수가 코를 감싸 쥐며 팔짝팔짝 뛰던 모습도 냉정하고 무표정하던 이재훈 감사팀장의 얼굴도. 문 선생은 일상에서 그것들을 마음속 어딘가로 밀어 넣으며 애써 덜어내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야기가 들려왔다. 현수네가 김지우의 부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루한 법정 다툼 끝에 손해배상으로 수백만 원을 받아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밤, 문 선생은 아무 말 없이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달빛은 조용했고, 바람은 벽을 따라 흘렀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은 지독한 메아리로 가득했다.
“아니요, 장난을… 장난을… 아, 너무 아파요. 아파!”
그날 교실 바닥에 흩뿌려졌던 핏방울들과 불규칙하게 번진 붉은 원들이 여전히 그녀의 뇌리를 물들였다. 그건 지워지지 않는 무늬로 매일 새롭게 새겨졌다.
현수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왔다.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또 다른 교실로 향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치 다시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그리고 조용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자, 이제 여기선 무슨 게임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