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도, 아이도, 제도도 무너졌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심리적 진실을 끝까지 파고드는 리얼리즘 심리소설
※ 본 작품은 전적으로 작가의 상상에 기반한 창작물이며, 실존 인물·기관·사건과는 일체의 관계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괴물의 조건 1부)
화면이 켜졌다. 익숙한 배경음이 짧게 흘렀다가 멈췄다. ‘로그인 중...’이라는 문구 대신, 현수의 얼굴이 거울을 뚫고 어렴풋이 떠올랐다. 현수의 코는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코를 중심으로 묵직한 감각이 들러붙더니, 욱신거리는 통증이 심장 박동과 엉켜 이상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코를 틀어막고 있던 솜을 조심스럽게 빼내자, 뜨겁고 끈적한 피가 물컹하고 터지듯 쏟아졌다. 피는 손바닥에 고였다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거울 속 얼굴은 발효된 빵처럼 부풀어 있었고, 콧등을 중심으로 붉게 부은 살이 성난 듯 솟아올라 있었다.
내려앉은 코뼈, 눈가까지 번진 붓기로 짙던 쌍꺼풀은 느슨하게 흘러내렸고, 실밥 풀린 봉제 인형처럼 눈꺼풀이 흐느적거렸다.
얼굴 전체가 뜨겁게 그리고 조용히 맥박치고 있었다.
현수는 부풀어 오른 자신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보았다.
손끝으로 따뜻한 고통이 번졌다. 입술 위로 흘러내린 피를 손바닥으로 쓸어내자 입가에 가느다란 붉은 선이 그려졌다.
달큼하지만 비릿한 피의 맛이 비위에 거슬렸다.
얼얼하게 굳은 감각 위로, 앞으로 벌어질 일의 무게가 어렴풋이 밀려왔다. 현수는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게임은 시작되었다.
3월이라고는 해도, 바람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을 움켜쥔 듯 매서웠다. 새 학기를 맞은 교무실은 어수선한 분주함과 설렘이 뒤섞인, 어딘가 낯선 공간이었다. 문 선생은 새로 배정받은 교무실 자리에서 막 핸드백을 내려놓고 목에 감았던 머플러를 풀던 참이었다.
“문 선생님, 잠깐 이쪽으로 와 보세요.”
키는 작지만 단단한 체격에 똑 부러지는 말투로 늘 학생들에게 ‘탱크선생님’이라 불리는 학년 부장이 중앙 테이블 쪽에서 손짓을 했다.
“네, 잠깐만요.”
문 선생은 책상 위에 있던 핸드백과 머플러를 책상 밑으로 대충 밀어 넣고 중앙 테이블로 향했다. 잠시였지만, 이내 부장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소년은 방금 찬 바람을 뚫고 들어온 듯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전학생인가?’ 직감적으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새로 맞춘 듯 어깨가 조금 큰 교복, 빳빳한 하얀 셔츠 그리고 아직 이 공간이 낯선 듯 굳은 표정은 소년의 긴장감을 말해주고 있었다.
보통 전학생은 시간이 좀 지나 봐야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다. 첫인상에 속지 말라는 말은 교사 경력 중 얻은 중요한 교훈이기도 하다. 섣불리 단정 지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문 선생은 조심스러웠다.
그런데도 어쩐지, 이 소년은 느낌이 달랐다. 소년에게서는 사람을 향한 예의와 조심스러운 공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소년의 불그스레한 볼 아래로 드러난 맑고 하얀 피부, 그 안에 정돈된 이목구비는 아이가 어떤 보호 속에 자라왔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귀하게 자란 아이구나. 예의도 바르고, 괜찮은 아이같아.’
문 선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년 옆에는 그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 자연스러운 웨이브 머리를 뒤로 단정히 묶고 몸에 잘 맞는 정장을 입은 채 조용히 시선을 두고 있었다. 세련된 태도와 절제된 말투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단정하게 규율 잡힌 자세와 여유 있는 고운 표정 꼭 특정 직업군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문직 종사자에게서 풍기는 질서감과 거리감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전학 오셨다고요?” 문 선생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네, 이번에 이 근처로 이사 오게 돼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외모와 어울렸다. 상대를 배려하는 말씨였지만, 동시에 쉽게 얕잡아볼 수 없는 단단한 결이 묻어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얇은 벽 하나를 은근하게 세운 듯한 인상이었다.
“아, 네. 그러시군요. 요즘 근처에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낯선 학교에 아이를 전학시킨 학부모라면 걱정이 많을 터였다. 문 선생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말을 붙였다. 대화를 잇기 위한 말이었지만 어딘가 진심이 묻어 나왔다.
“음, 이름이 뭐니?”
문 선생은 소년의 짙은 쌍꺼풀을 보며 ‘엄마를 닮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현수예요.”
현수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가 채가듯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무언가를 서둘러 정리하고 싶다는 듯 보였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현수를 아이들에게 소개했다.
다행히 현수는 금세 아이들 속에 섞였다. 첫날의 어색함은 점심 무렵이 되자 어느새 사라졌고 그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잘 적응하고 있네. 다행이다.’
문 선생은 오랜 교직 생활에서 길러진 감각으로 현수를 ‘괜찮은 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세상에는, 아무리 경험을 쌓아도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종류의 아이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그 모든 감각과 직관마저도 무력하게 만드는 존재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로부터 2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날은 현수가 처음으로 교무실 문턱을 넘은 날이었다.
하얀 피부 위로 붉은 입술이 선명했고 입술 위에 솜털처럼 희미하게 자라난 수염은 그가 사춘기 한가운데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응, 현수야. 무슨 일이야?”
“저기, 있잖아요. 태호가 저를 괴롭혀요. 제가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 패드립 쳐요.”
이맘때 아이들은 말과 행동의 수위를 가늠하는 데 서툴다.
한참을 놀다 보면 누가 먼저 말했는지도 헷갈리고 장난이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태호가?” 문 선생은 의아했다.
태호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꽤 괜찮은 아이로 통했다. 행동에 귀여운 구석이 있어 정이 갔고 선이 굵어 어지간한 말에는 쉽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이었다.
“태호 좀 불러줄래?”
현수와 태호, 그리고 문 선생은 상담실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하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문 선생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은 너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잖아. 하나씩 얘기해 보자.”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말을 조심스레 엮어가며 흐름을 정리하고 누가 어느 시점에서 선을 넘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문 선생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받아 적었다.
전형적인 중학생다운 말실수가 시작점이었다. 서로 장난을 주고받다가 감정이 격해지고 결국 일이 커진 것이다.
문 선생은 정리한 종이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두 학생은 자신이 어느 순간 잘못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들은 나란히 고개를 떨구었다. 덩치가 큰 태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 태호야, 그럼 어떻게 하고 싶니?”
“제가 현수한테 사과하고 싶어요.”
“현수야, 태호가 사과하고 싶대.”
현수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저는 싫어요. 용서하고 싶지 않아요.”
당황스러웠다. 보통 아이들은 서로 잘못을 확인하고 나면 금세 풀고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하지만 현수는 달랐다. 그 단호한 거절 속에는 어딘가 모를 결기와 확신이 스며 있었다. 문 선생은 잠시 말이 막혔다가 이내 태호를 다독였다.
“태호야, 현수가 지금은 사과를 받고 싶지 않대. 아마 시간이 좀 필요한가 봐.”
“네, 선생님. 저는 기다릴게요.”
두 아이를 교실로 돌려보내며 문 선생은 조심스레 당부했다. 서로 불필요하게 부딪치지 말고 각자 조금 거리를 두라고 타일렀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현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교무실을 찾았다.
“선생님, 서준이가 저를 괴롭혀요.”
“선생님, 지호가 저한테 이걸 던졌어요.”
“선생님, 경태가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문 선생의 피로는 서서히 쌓여갔다. 현수는 늘 담담했고 정확했으며 상처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제된 말들 속에 점점 이상한 것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문 선생은 점점 지쳐갔다. 현수는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집요하게 문 선생을 찾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을 중재하고 어긋난 관계를 다시 잇는 일은 매번 적잖은 노력과 인내를 요구했다.
그래도 문 선생은 믿고 있었다. 이런 일들 역시 아이들이 자라면서 겪는 하나의 성장통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 책상 위에 누군가가 쪽지를 올려놓았다.
‘선생님, 현수가 자꾸 약한 친구들을 괴롭혀요.’
손바닥만 쪽지에 쓰인 이 한 줄짜리 문장은 무채색 교무실에 갑자기 울려 퍼진 빨간 경고등처럼 이질적이고 선명했다. 문 선생은 그 쪽지를 천천히 접어 서랍 안에 넣으며 잠시 숨을 골랐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 아이만은… 제발, 아니기를.’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쪽을 택했다. 무언가를 드러내는 일보다 덮는 일이 더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교사의 직감은 경고하고 있었지만, 사람으로서의 나는 그 경고를 애써 외면했다.
‘현수가 괴롭힌다’는 말은 문 선생을 혼란스럽게 했다. 이 말은 그동안 피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던 아이의 또 다른 면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문 선생은 ‘내가 하는 이 의심이 맞는 건가.’ 스스로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점차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부터 ‘의심’이라는 이름의 실금이 조용히 생겨나더니 ‘불신’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문 선생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성급한 개입은 오히려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능한 한 자주 교실을 오가며 조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관찰을 이어가다 보니 점점 눈에 밟히는 장면들이 생겨났다. 정신없이 웃고 떠드는 쉬는 시간 속에서도 문득 스쳐 지나가는 현수의 표정에는 어딘가 계산된 기색이 있었다.
그의 웃음 너머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의식하는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에는 자기 연출 같은 의도가 배어 있었다.
그의 웃음은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무언가를 정확히 학습한 아이에게서 나오는 계획된 반응처럼 느껴졌다. 부모의 기대를 등에 지고 자라온 아이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정이기도 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부모와 솔직하게 상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경험상 많은 학부모들, 특히 자녀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해 온 부모일수록 아이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교사가 자신의 자녀를 칭찬할 때는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연신 반복했지만, 조금이라도 우려나 지적이 섞이면 “죄송한데요, 우리 아이는 우리가 더 잘 알아요”라는 말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