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나잇의 리듬, 광주의 진실과 함께
〈런던 나잇, 그리고 오월의 광주〉
고등학교 시절, 체육 수행평가로 창작 댄스를 준비했다.
우리가 고른 음악은 London Boys – London Nights.
지금 생각해도,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만나면 그 노래를 틀고,
그 시절의 춤을 자연스럽게 따라 추곤 한다.
한 줄로 서서 맞춰 추던 동작은
누구 하나 잊지 않고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스물셋, 친구의 결혼식 뒤풀이로 간 나이트클럽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순식간에 고1 시절로 소환됐다.
무대처럼 펼쳐진 댄스플로어 위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다시 춤을 췄다.
2022년, 서울에서 다시 만났던 날.
한강에서 라면을 먹으며
누군가 블루투스로 런던 나잇을 틀었다.
우리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고,
몸은 여전히 리듬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절엔 핸드폰도, 블루투스도 없었다.
애진이는 집에서 트렁크만큼 컸던
커다란 카세트 오디오를 직접 들고 나왔다.
그 오디오는 우리의 음악 중심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와 함께
런던 나잇은 늘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1번이었다.
1991년, 우리는 여섯 명이 모여
땀 흘리며 기말고사 체육 수행을 준비했다.
남색 반팔티 뒤엔 서로의 손바닥 도장이 찍혀 있었고,
우린 유명한 걸그룹도 아닌데
늘 아이들에 둘러싸여 우쭐했다.
런던을 배경으로 한 런던 나잇은
1980년대 후반 젊은이들의 열정과 낭만을 담은 곡이다.
하지만 내게 이 노래는
그저 흥겨운 디스코 음악이 아니다.
그 시절의 설렘과 친구들의 웃음,
함께했던 반짝이는 순간들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기억 그 자체다.
그리고 지금,
오월의 광주에 산다는 건
그 시절의 기억을 다시 꺼내 사는 일이다.
1980년 5월 18일. 우리는 안다.
광주 민주화운동, 그날의 진실을.
91년도의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도 알고 있었다.
광주에 살면 다 안다.
그날의 총성과 전남도청 앞의 사람들,
그들의 외침과, 피와, 침묵을.
나는 똑같은 1980년대에 나온
런던 나잇과 5·18을
단지 동시에 존재했던 두 개의 시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한쪽은 자유를 노래했고,
다른 한쪽은 자유를 외쳤다.
한쪽에선 청춘이 유쾌한 댄스로 흘렀고,
다른 한쪽에선 청춘이 목숨을 걸고 불탔다.
그래서 나는 런던 나잇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의 반짝였던 웃음과 함께
광주의 눈물도 떠올린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함께 겪어낸,
지워지지 않는 청춘의 이면이다.
이름도 빛도 없이 싸웠던 이들의 무게를 우리는 안다.
그리고 어떤 시대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아무개’들이 있었다.
지금 이 시대의 ‘아무개’는
나일 수도 있고,
여러분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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