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위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신났었다
은선이가 자전거에서 넘어졌다.
꽈당! 쿵!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더니 그대로 풀썩—
우리 여섯은 놀라 얼른 모여 회의를 했다.
“근처에 친구 집이 있어!”
어떻게 그걸 기억해 냈는진 모르겠지만,
같은 반친구가 근처에 산다는 걸 알고 찾아가
친구네 집에 은선이자전거를 맡기기로 했다.
더는 탈 수 없던 은선이는, 내 자전거 뒤에 붙은 꼬마 의자(!)에 앉기로 했다.
친구가 싸준 밥과 상추, 쌈장, 라면을 짊어진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힘차게 페달을 밟아 내리막길을 달릴 땐 온몸으로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를 땐 숨을 헐떡이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친구가 알려준 목적지는 지금의 ‘광주시민의 숲’쯤이었던 것 같다.
푸른 숲과 맑은 물이 흐르던 그곳.
우리는 페달을 밟고, 두 다리로 걷고, 또 페달을 밟았다.
그러나 결국, 지쳐버린 다리는 멈춰 섰고
우리는 길가에 풀썩 주저앉았다.
“야, 이 무거운 자전거들 그냥 버리고 버스 타자...”
수 학의 정 석 때문에 (자전거대여점에 잡혀있음)
자전거는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진짜 햇볕에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
지친 얼굴을 마주 보며 말없이 한숨을 내쉴 때—
쇠붙이 덩어리 같던 자전거가,
마치 우리가 짊어진 인생의 무게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기적처럼, 낡은 트럭 한 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손을 번쩍 들어 흔들었다.
끼익— 트럭은 멈췄고,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어디까지 가나?” 하고 물으셨다.
우리가 가려던 곳 근처까지 태워주시겠다고!
“우와 아아아아아!!”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정말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쳤다.
아저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자전거 다섯 대를 트럭 짐칸에 실어주셨고,
은선이와 애진이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조수석에,
나머지 넷은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그땐 시골에서 트럭이나 소달구지, 경운기를 타도 별일 없던 시절.
우리는 초록빛 숲길을 따라 오르며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싱그러운 풀 내음과 흙냄새, 이름 모를 꽃 향기가 섞인 숲의 숨결을 깊이 들이마셨다.
까르르, 깔깔, 왁자지껄!
트럭이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비명을 질러댔고,
트럭에서는 트로트가 흘러나왔고,
우리는 아저씨의 플레이리스트에 맞춰 신나게 따라 불렀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앞자석은 박수를 치고, 뒤에선 고개를 까딱이며
여고생 특유의 텐션으로 트럭 짐칸을 무대 삼아 실컷 놀았다.
기름 냄새, 덜컹이는 짐칸,
그리고 아저씨의 유쾌한 선곡까지—
모두 그날의 배경음악이었다.
따스했던 그날의 공기,
해맑던 우리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친절을 베풀어주신 트럭 아저씨.
목적지에 도착하자 아저씨는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내려주셨고,
우리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드렸다.
트럭이 떠나고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손을 흔들었다.
1991년 4월 5일, 용전 근처.
여고생 여섯 명을 트럭에 태워주신 마음 따뜻한 트럭 아저씨를 간절히 찾습니다!
지금도 그날의 감사함을 잊지 않고 건강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신다면 꼭 연락 주세요.
따뜻한 감자라도 푸짐하게 삶아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날 우리는 분명 하이킹을 떠났지만, 돌이켜보면 인생의 히치하이킹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지친 순간, 낯선 이의 친절에 몸을 맡기고,
그 따뜻한 손길 덕분에 다시 웃을 수 있었던 하루.
길 위에서 만난 기적 같은 인연,
그 고마움을 우리는 여전히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다.
30년도 훌쩍 지난 지금,
그날의 햇살, 바람, 웃음, 그리고 아저씨의 트럭은
우리를 웃게 하는 오래된 추억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그때 그 다정한 트럭 아저씨,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의 선한 마음은 여섯 여고생의 삶에
아직도 따뜻한 바람처럼 불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평안하시길, 진심을 담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