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경기장과 해태 타이거즈, 그리고 우리의 청춘
광주 하면 무등경기장,
무등경기장 하면 당연히 해태 타이거즈 아니겠어요?
여고 시절, 무등경기장은 우리의 놀이터였습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야간 자율학습은 살포시 접어두고,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달려갔죠.
그땐 지금처럼 화려한 치어리더 언니들은 없었지만,
우리끼리 목청껏 외치던 응원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짜릿했습니다.
"무등경기장, 그리고 우리의 해태 타이거즈!"
광주일고 야구부 출신들 '해태 아저씨',
'해태 이줌마'들의 정겨운 얼굴들.
생각만 해도 가슴 한쪽이 다시 뜨거워집니다.
감독님은 물론 '종범이도 가고 동렬이도 간'
우리의 김응룡 감독님이셨고,
투수는 바로 그분, '국보급' 선동렬 투수님!
심지어 저희 동네에 사셨다니까요.
이순철 선수가 1루에 나가면
2루는 이미 따놓은 당상.
곧이어 등장하는 종범이 오빠.
이순철선수 2루,이종범선수 1루.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순철이 뛰면 이종범도 뛴다
그 시절, 도루는 예술이었습니다.
응원가요? 없어도 괜찮았어요.
"아야! 뛴다 뛰어
그 한마디면 충분했죠.
상대 투수의 기를 꺾는 건 우리의 몫이었으니까요.
세이프 순간의 짜릿함,
아직도 생생합니다.
캬— 그 짜릿함!
4번 타자 한대화 선수,
그분은 제 첫사랑이었어요.
잘생긴 홍현우 선수,
친구는 그 오빠 따라 버스 정류장까지 쫓아다녔답니다.
푸근한 '오리궁둥이' 김성한 감독님,
카리스마 넘치셨던 이강철 감독님,
든든한 장채근 포수님과
‘화신’ 선동렬 투수님의 배터리.
그 조합은 말 그대로 전설이었죠.
치어리더 언니들 없던 시절.
음악만 나오면 자동 반사!
우리 어깨는 들썩들썩,
어디선가 빵이 슝~ 날아오고,
과자가 휙~ 던져졌습니다.
얼굴도 안 보였지만, 그건 **정(情)**이었어요.
어르신들은 농담처럼 물으셨죠.
"아그들아, 내일도 올 거냐?"
"용돈 떨어져서 못 가요..." 하면
"정문에서 만나자, 표 끊어줄게!"
진짜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여고생 팬이 아니었죠.
우리는 '무등경기장 치어리더',
아니, **'무등경기장 죽순이'**였습니다.
지금 제 옆에 있는 남편은 한화 팬.
저는 KT를 응원합니다.
왜냐고요?
당연히!
우리들의 영원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 코치님이
지금 그 팀 1루 코치로 멋지게 서 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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