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우리를 만나러 갑니다

by 호뚜니의 작은방



"고등학교 은사님 만났다.”
그 톡 하나가 시작이었다.
“우리도, 너무시간이 지나기 전에 약주 한잔 하자.”
그 말에 우린, 35년이 훌쩍 지나
십대의 마지막 지점으로 가는 중이다.

우리가 공통으로 떠올린 국어 선생님.
담임도 아니셨고,
그저 옆반 선생님이셨지만
왜 그리도 보고 싶었던 걸까.

옆반에 눈이 자꾸 돌아가던 그 시절.
우리 담임도 아닌 선생님을
우리 모두 ‘찾아 뵙자’고 마음을 모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박현우 선생님.
학교 입학식 날, 선생님을 소개하던 순간.
1학년 1반 박현우—
그 이름이 불리자 체육관이 떠나갈 듯 선배들이 환호했다.
그게 우리 1학년 2반에게는 첫인상, 첫기억이었다.

그리고 35년이 흘러
나는 고향으로 향한다.
3~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
아버지 사업 실패로
새벽 이삿짐처럼 떠났던 내 어린 시절의 도시.
지금은 친구들이,
그리고 은사님이 계신 곳.

버스 티켓은 예매했지만
남편과 막내딸이 동행했다.
남편의 배려에 고마워
이 글을 ‘감사함’으로 시작해본다.

빛고을 광주.
입맛을 찾듯 도착한 곳은
상추튀김 맛집.
블로그로 찾아간 이름 모를 동네가
“어? 여긴...!”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였다.

변해버려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지명만으로도 내 마음이 먼저 반응한다.
목소리가 커지고,
막내딸은 “엄마 신났네” 웃고,
남편은 “좋아서 그러니까 그냥 둬~” 한다.

그곳에서 상추튀김과 떡볶이를 시켜 먹는다.
작은 분식집의 벽 낙서,
튀김 만들던 이모님들,
소란스럽던 손님들.
그 모든 걸 마음으로 복원하며
나는 설렘을 한 입에 넣는다.

상추 위에 튀김을 올리고
양념간장 살짝 찍어 한 입—
음~
입안에 퍼진 건, 고향의 맛.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무의식 속 타향살이의 향수가
한순간에 가득 밀려온다.

친구들과 약속한 장소로 이동하고,
남편과 막내는 야구장으로 향한다.
기아 vs 한화 경기.
나를 데려다주는 조건은
야구라는 떡밥이었다.
(한화 유니폼까지 챙긴 남편…
난 그저,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

선생님을 만나기 전
조금의 여유가 생겨
우린 모교로 향한다.

스쿨버스를 타던 길,
지나던 다리,
익숙했던 상점들.
하지만 35년이란 세월은
그 흔적들을 견디지 못하게 했는지
거의 다 바뀌어 있었다.

그럼에도 딱 하나—
학교.
그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와, 학교다!”
그리고 한순간에
17살, 18살, 19살로 돌아간다.

졸업할 땐
“뒤도 안 돌아볼 거야”
당당했던 20대의 나.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로 돌아오고 싶었다.

학교는 우리를
기억하고 있었을까?
기다려주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오늘 만날 선생님은
우릴 기억하실까?

너무 늦게 찾아온 것 같아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돌아온 우리.

학교는 그대로인데
우리도 그대로인데
세월만 흘렀고,
우리는 나이만 먹어버렸다.

그 시절 학교를
왜 자랑스러워하지 못했을까.
현실 때문이었을까.
그 질문 뒤에
나의 비겁함을 살짝 숨겨본다.

학교 문은 잠겨 있었지만
누군가 CCTV로 보고 있으리라
믿으며
우리는 얌전하게 학교를 돌아본다.

아지트처럼 드나들던
매점, 음악실, 체육관.
각자 기억 속 상자를 열어
덜컥거리며 쏟아내는 추억들.

참, 대단했다. 우리.
말썽꾸러기들이었고,
우린 우리만의 리그에서 살았다.
다른 친구들은 생각도 못 했지.

이씨 셋, 임씨 둘, 정씨 하나.
가나다 순서로 붙어 있었던 우린
지금까지 친구로 남았다.

그건 ‘총무’ 덕분이다.
지난 글에도 썼듯이,
우릴 돈으로 묶어준 그 사람.

100원의 행복에서 시작된
지금은 5만 원짜리 행복.
우릴 이어주는 모임 통장이
참 기특하다.

학교를 나와
강이 보이는 카페에서 더위를 식히고
다음 장소로 향한다.

우리가 ‘시내’라고 부르던 곳.
학원가가 모여 있던 만남의 장소.
삐삐도없고 해드폰도 없더시절
우체국 앞은 우리에겐 핸드폰이었다.

금남로, 충장로를 지나

전남도청과
5·18 민주항쟁의 장소도

스치듯 지나며
선생님과 약속한 장소로 향한다.

전날 나눈 카톡엔
설렘 반, 걱정 반.
“염색했냐”
“머리가 너무 짧게 잘려 몽실이디
내일 모라고 말할까?”
우스운 걱정들이 쏟아졌지만,

우리는 지금
선생님께 달려가고 있다.

(잠시,
야구가 우천 취소되었다는
남편의 문자 도착.
실망했을 두 사람을 생각하니
맘 한켠이 아려온다.)

쏟아지는 빗방울은
나의 두근거림을 덮어주는 가림막처럼
촉촉하게 떨어진다.

우리가 만나러 가는 사람은
담임도 아니었던
1학년 1반 박현우 선생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분이 계셨다.

35년 전,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가르치고
누군가는 배우던 시절.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

앨범이라도 보고 오셨을까.

나는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포옹까지.

나는 이제
17살이 아니다.
51살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아줌마’가 아닌
‘제자’라는 이름으로 서 있었다.



다음 이야기,

“선생님과의 만남” 입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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