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선생님이라는 공통의 시제로 연결된 우정
선생님의 마지막 졸업생
한 명씩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선생님께서는 이름을 불러주시고
악수를 건네며 얼굴을 바라보십니다.
기억을 더듬고 계신 걸까요.
문득 생각해봅니다.
학교라는 곳은 어쩌면
한 교실에서 1 대 47의 눈싸움을 하는 공간이었겠구나.
선생님의 두 눈동자 vs 학생들의 백 개가 넘는 눈동자.
그 시절 여고생들 앞에 두고
눈길 둘 곳 찾기 어려우셨겠다는 걸
지금에서야 조금 알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1 대 6의 작은 만남 속
선생님의 두 눈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어릴 적 인사와는 전혀 다른 느낌.
우리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러시겠죠.
우리가 자란 걸까요?
선생님이 작아지신 걸까요?
아마도 늦게 찾아뵌 죄송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처럼,
조심스러워야 하는 마음은 자꾸만 선생님께 다가가게 하고,
손을 잡고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친구들이 따라드리는 술잔을 바라보며 선생님의 눈시울이 촉촉해지고,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에겐 설렘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지금껏 몰랐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지막 졸업생이었단다."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졸업시키던 그날,
선생님도 함께 교단을 떠나셨다는 이야기.
속 없던 우리는
사진을 찍고, “꼭 찾아뵙겠습니다!”라며
교문을 뛰쳐나갔지만,
선생님은 말없이 짐을 정리하고 계셨겠지요.
그날 처음, 선생님은 우리를
'마지막 제자'이자 '막내 제자들'이라 불러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시집을 받아 들고
표지에 적힌 이름을 바라보며
벅찬 감정이 차오릅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조용히 시 한 편을 낭독해 주셨습니다.
> 교직을 떠나는 날
빈 책상 위 덩그러니 꽃 편지 한 장
세상에 눈 감는 자는 되지 않겠습니다
종례 후 칠판에 '진수무향' 써놓고
반쯤 눈 감고 살아도 볼 일이나
악에는 급이 없으니 따르지 말거라
— 박현우 선생님 시 「꽃편지」 중에서
우리가 졸업한 그날,
선생님도 함께 교직을 떠나셨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우리는
그 쓸쓸함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다시 돌아온 17살
“저는 사이다로 받겠습니다!”
나의 말에 현영이가 눈짓으로 말합니다
옆자리에 민주가 귓속말로
"집사님 한잔 해 "하고 해서 웃습니다
선생님은 “오늘은 주님과 함께하시게”라며 맥주를 따라주십니다.
분위기는 어느새 웃음으로 가득 찹니다.
“니들 원래 이렇게 까불었냐~”
“세월이 이렇게 만든 거냐~”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말에
우린 더 활짝 웃고, 더 진심으로 떠듭니다.
이자리가 좋은 인연이길 바라며 인연 노래를 부르니
선생님께선 이노래 좋아하신다 하십니다
친구들은 “거부할 수 없지~” 하며 장난을 치고,
나는 영화 왕의 남자처럼 외줄 타기 곡예를 흉내 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졸업생으로서의 작은 재롱이었습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가 스피커에서 흐르자
일어나 춤을 추고,
선생님과 하이파이브도 나눕니다.
글을 쓴다 하니, 선생님은 또 칭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민주가 일어나 술 한 잔을 올리자
선생님은 반가워하며 말씀하십니다.
> “기립하시오! 민주가 일어났습니다!”
민주는 선생님이 늘 좋아하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광주라는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정신이자 사명이
바로 그 '민주'였음을 다시금 느낍니다.
이 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건
35년을 한결같이 선생님을 찾아뵙고
연락을 이어온 친구, 유영 원장님 덕분입니다.
지금도 묵묵히 뒤에 앉아
선생님과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챙겨주는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친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 명씩 돌아가며 회고를 남기고
눈물로 스승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 “선생님, 건강하세요.
마지막 제자들, 내년 스승의 날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