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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Apr 21. 2023

My one and only life

Untied the ropes that bound the boat.

오늘 아침 영어 필사 내용의 한 구절이다.


"20 years from now you will regret what you didn't do than what you did.

So untied the rope that bound the boat.

Sail away from the safe harbour.

Catch the trade wind in your sails.

Explore!

Dream!

Discover!"


- Mark Twain-


흔히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춘기 아이들이나, 사회 초년생들, 아니면 한창 계획 많고 야망 넘치는 젊은 층에게 어른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적어도 내 개념에서는 그렇다. 다른 때 같았으면 정말 별 감흥 없이 "에구! 뻔한 내용, 틀에 박힌 말. 나에게는 상관없는 말이야." 라며 그냥 읽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어머님 때문이다.


결혼 후 신랑에게서 들었던 우리 어머님의 인생은 너무 불운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 한번 가보지도 못하고, 초등학생 어린 나이에 큰오빠네 식모살이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큰오빠는 어머님이 초등학생일 때 이미 가정을 이루고 계셨고, 어린 마음에 열심히 일하면 학교를 보내주실 거라 믿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집안 살림을 도왔다고 했다. 

"언젠가는 공부를 시켜주겠지?, "나에게도 공부할 기회가 오겠지?"라는 기대로 어머님은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 물론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하신 채 말이다. 

결혼 후에도 어머님의 고생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좋아지질 않았다. 재산 많고 가방끈 길었던 시누이들에게 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다고 구박받으며 집안 귀찮은 일과 어려운 일들은 도맡아 하셨다. 궂은일은 다 하시면서 시댁 눈치는 또 얼마나 보셨을까? 그 당시 어린 나이 신랑의 눈에도 그때의 어머님의 모습은 가엽고 측은했다고 한다. 어머님이 감당하셨을 마음의 상처는 말할 수 없이 깊고 한이 되셨을 듯하다. 

결혼 후, 어머님과 가끔 통화할 때면, 어머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신다.


"너 000 드라마 보니? 그 드라마 보니까 정말 배울게 많더라. 드라마를 봐도 배울 것이 많단다. 그냥 보지 말고 배울 것 찾아가며 봐라."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어머님의 공부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어머님의 삶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공부가 되고 배움의 도구가 된다.


어머님은 지금 65세가 되셨고, 이 연세에도 쿠팡 창고에서 청소일을 하고 계신다. 코비드 19, 그 떠들썩한 사건이 있을 때에도 단 하루도 쉬지 않으셨다. 그것도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들다는 밤 교대 업무를 하고 계셔서 오후에 출근하시고 다음날 아침 퇴근을 하신 후 잠을 주무신다. 아버님과 영상통화를 했던 그날도 여전히 어머님은 건넛방에서 피곤한 몸을 누이시며 주무시고 계셨고, 우리는 조용조용 영상통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아버님이 무의식 중에 우리에게 비밀을 누출하셨다.


"침 맞으러 가야 한다는데... 깨워야 하나..."

"네? 왜요? 어디 안 좋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당황해하며 피시 피식 웃으신다), 쪼그리고 앉아서 공부를 오래 하다 보니 무릎이 안 좋아졌단다."


어머님이 그동안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계셨다고 한다. 언제부터 준비하신 건지 말씀은 안 하시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이제 영어, 과학, 수학만 통과하면 그렇게 꿈꿔오던 고등학교 수료증을 받을 실 수 있다.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너무 놀라고 한편으론 감격스러워서 목이 메어왔다.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퇴근 후 수업을 들으려니 몸이 너무 고되어 자꾸 학원에서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라고 몇 달 전부터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워낙 어머님의 체구가 작기도 하지만 65세 어머님의 몸은 아들이 남기고 간 책상에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이 되지 못하신 듯했다. 그래서 아마도 바닥에 앉은뱅이책상을 두고 그동안 공부를 하신 모양이다. 몇 번 의사를 만났으나 매번 같은 이야기를 들으셨던 것 같다.

"앉은 자세는 어머님 연세에 다리에 무리가 많이 가니 피하는 게 좋아요."라고 조언을 하셨지만 이런 의사의 말이 어머님 귀에 들릴 리 만무하다. 


누가 이분 앞에서 인생이 힘들다고, 공부하기 어렵다고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누가 이분 앞에서 내 인생은 끝났다고, 미래가 없다고 좌절할 수 있을까? 

누가 이분 앞에서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포기하겠다고 교만한 입을 열 수 있을까? 

자신의 인생을 진짜 사랑하시는 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용기 내어 도전하시는 분! 

진짜 인생을 아름답게 사시는 분! 

우리 어머님은 그런 분이셨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어떤 멋진 인생을 살고 계신지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혼자서 과학, 수학, 영어 공부가 쉽지 않으실 텐데.... 어머님이 모든 과목을 통과 하시든 못하시든 이젠 그런 건 의미가 없다. 우리는 지금 현제의 어머님을 너무 존경하며 사랑한다.  오늘 밤 고된 어머님의 꿈속에 평안과 따뜻한 쉼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 패미로얄 @canada_famiroy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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