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미로얄 Apr 25. 2023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날

친구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캐나다에서 만나 같이 아이를 키우며 마음을 나눴던 딱 동갑내기 내 친구다. 소심하고 착한 게 도를 지나 처서 나중에는 화가 나도록 미련해 보이고, 볼때마다 속이 상하다 못해 속이 터지는 그런 나의 친구다. 나보다 영어를 더 못했고, 나보다 더 영어를 무서워했으며, 무엇보다 나보다 더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친구였다. 하지만 이 친구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바로 남편이었다. 캐나다에 이민 온 이후 친구에게 그 어떤 작은 것도 도전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은행은 가본 적도 없고, 병원도 혼자 가본 적도 없다. 신랑은 늘 "넌 아무것도 못하잖아. 그냥 조용히 영어공부하며 집에서 아이나 키워. 나가서 사고 치지 말고."라고 세뇌를 시켰고, 시간이 지날수록 친구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어가고 있었다.

영어 프로그램에 같이 데려가고 싶어도 신랑의 허락 없이는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했고, 함부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싶어도 매번 신랑의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그런 친구의 얼굴은 늘 불안했고, 늘 우울했으며, 어쩌다 속마음이 나에게 들킬 때면 하염없이 울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렇게 본인의 감정 다스리기도 하루하루 힘든데 어쩌다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심각하게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 주는 맘 깊은 나의 친구다.

이런 친구의 우울증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어느 날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자기 베이킹 잘하잖아! 우리 한국 빵 너무 먹고 싶은데 자기가 만들어서 우리한테 팔아라! 우리는 맛있는 빵 먹어서 좋고, 자기는 비상금 생겨서 좋고~!"


처음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강하게 거절했지만 친구는 조금씩 집에서 빵을 굽기 시작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친구의 빵은 타운 한인들에게 인기 만점이었고, 난 친구의 빵을 케네디언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생전 먹어보지 못한 예쁘고 부드럽고 달콤한 한국 빵의 맛을 본 캐네디언 친구들에게도 극찬이 쏟아졌다. 물론! 이런 상거래(?)는 철저히 신랑에게 비밀로 진행되었다. 친구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피어나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 본인의 비상금으로 간식과 장난감을 사 줄 수 있는 능력이 되었을 때는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러던 친구가 지난달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갔다. 두 시간 남짓 거리지만 맘처럼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도 없고, 통화하고 싶을 때마다 통화도 안된다. 풀타임으로 취업한 친구는 지금 새로운 세상에 적응 중이다. 이곳에서 소소하게 해 왔던 베이킹 간이 참작이 되어 한인마트 제과점에 제빵사로 정식 채용된 것이다. 한인 마트라 당연히 영어도 필요 없다.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빵을 열심히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합격소식을 전해 듣자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과 인내가 결과를 맺은 것 같아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성실하면 잔소리!!! 친구는 분명 까다롭다는 그 자리를 충분히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아침 8시 30분이다. 9시에 일 시작이니까 잠깐 통화가 가능할 것 같아서 전화를 넣었다. 친구의 하이톤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이렇게 당당하고 밝은 친구의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자동차 안 블루투스 스피커로 울리는 친구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못해 귀에서 '위잉~~~' 소리가 날만큼 크게 울렸다.

서로의 근황을 묻고 짧은 통화를 끝내야 할 때쯤 친구가 이렇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내가 전화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 내가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내가 목소리 듣고 힘이 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좋더라"


난 이렇게 표현을 잘 못한다. 아니 앞으로도 절대 못할 것 같다. 표현이 인색한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너무 사량스러워 보이고 고마웠다.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목소리 만으로도 의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과분하리만큼 감동스럽기만 다.

'패미로얄, 너 잘살고 있구나! 그래 이렇게 쭈욱 잘 살면 돼. 너답게.'


"고맙다 친구야. 사실 나 오늘 누군가에게 정말 인정받고 싶은 하루였는데 자기가 그렇게 말해줘서 힘이 났어. 고마워."


패미로얄@canada_famiroyale

작가의 이전글 My one and only lif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