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퍼 야경

64일 다이어리

by 패미로얄

<Day54> 11월 13일


레슨 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제스퍼로 출발했다. 역시 고속도로 운전에는 팀홀튼의 아이스캡이 빠져서는 안 된다. 누가 정한 규칙도 아닌데 우리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힌튼 팀홀튼에 주차를 하고 아이스캡을 주문했다. 방학기간이지만 시험 때문에 공부할 게 많은 큰딸이 고민 없이 함께 출발해 줘서 참 고맙다. 밤 10시나 되어야 호텔에 체크인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딸이 공부를 하는 동안 아빠와 피라미드레이크 야경을 다녀오는 것이 오늘 저녁 나의 계획이다. 계획대로라면 분위기 있는 화롯가에서 운치 있는 밤이 허락될지도 모르겠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아름다운 밤이었다. 멋진 야경을 보여드리기 위해 피라미드레이크에 올라갔다. 이번 여름 제스퍼의 큰 산불 때문에 피해가 컸다고 들었지만 깜깜한 밤에 만난 제스퍼는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짙은 회색빛의 산과 나무들의 실루엣. 내 기억 속 제스퍼 그대로였다. 레이크에 도착하면 여유롭게 달빛 아래 호숫가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운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호수 주변이 너무나 조용했다. 주차장도 텅텅 비어있다. 산불로 호텔 일부가 전소되면서 호텔 운영을 중단한 것처럼 보였다. 인적 없는 피라미드레이크는 나에게도 무척이나 낯설었다. 따뜻하고 아늑한 모습은 사라지고 가식 없이 웅장하고 거친 로키의 자연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이었다. 달이 얼마나 밝은지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낮의 빛을 머금은 하늘의 구름과 겨울산이 물 위에 그대로 반사되었다. 이런 어둠은 아마 한국에서도 아빠가 쉽게 경험하지 못하셨을 것 같다.


피라미드레이크 야경


야간(조명이 없는 밤시간) 사진을 처음 찍어보신 아빠가 계속 감탄사를 쏱아내셨다. 육안으로는 그냥 깜깜한 밤인데 카메라에 담긴 사진은 마치 낮에 찍은 것처럼 파란 하늘뿐 아니라 산 위의 눈까지도 선명하게 담고 있었다. 야간 사진은 역시 깜깜하게 밤의 느낌이 나야 멋진 사진이라는데 한 표를 던지지만 아빠는 이런 카메라의 기술과 매력에 푹 빠지신 것 같다. 갤럭시의 기술력에 감사를 보낸다.


피라미드 레이크에서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Forest Park 호텔에 짐을 풀었다. 새로 증축된 건물의 유닛들은 디자인도 깔끔하고 화장실과 방도 큼직하다. 게다가 부엌까지 구비되어 있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호텔이다.

포레스트 파크 호텔


아빠는 사진 찍는걸 아주 좋아하신다. 그 많은 사진들을 날짜와 주제별로 정리해 놓으시는 걸 보면 그런 꼼꼼함을 왜 난 타고나지 못했는지 부러울 때가 있다.

딸아이는 새벽까지 공부를 할 계획인가보다. 공부하는 아이 앞에서 잠들기가 미안했지만 침대에 몸을 누위자 마자 스르르 잠이 들 것만 같다.


내일은 old fort point trail에 하이킹을 다녀올 계획이다. 이곳 정상에 올라가면 제스퍼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산불로 그곳이 모두 타버렸다는 뉴스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걱정이 된다. 혹시나 산불 때문에 출입이 안 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산불 후 제스퍼의 모습이 어떨지 이제야 조금씩 궁금함과 함께 걱정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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