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막내딸이 밤중에 침대 속으로 쏙 들어왔다.
"왜 왔어~ 혼자 자야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혹시나 정말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갈까 불안해 얼른 팔베개를 내어주고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이가 깊이 잠들 때까지 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온몸으로 품었다.
몇 년 전, 그날 밤도 작은 아이의 몸에서 품어 나오는 큰 온기를 느끼며 몇 년 뒤 다가올 지금의 이 순간을 상상했었다.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이 아이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가 닥쳐오겠지. 자기 방 문을 걸어 잠그고, 불러도 대답 없는 그런 시기 말이다. 다시는 내 품으로 들어오지 않을 그 끔찍한 시간이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더 소중하고 간절하게 아이를 끌어 앉았었다. 염치없고 희망 없는 부탁인 줄 알지만 제발 이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아이가 더디게 자라기를 빌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 빨리 찾아올까? 정말?"
맞다. 그런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찾아왔다. 매 순간 성실하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마음으로 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도 나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내 마음의 준비는 아이의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 같다. 품에 끌어 앉은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들고 나도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어느덧 아이는 나보다도 한 뼘이나 키가 더 크고 힘도 센 딸아이로 성장해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내가 부르는 부름에 "네!"라고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고, 나의 출입을 막기 위해 방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팔베개에 아이를 눕히고 온몸으로 꼭 껴앉고 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그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해서 마음으로, 눈으로, 촉감으로, 향기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담아두었기 때문이다.
해가 반도 떠오르지 않은 이른 아침. 딸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늘 그렇듯 분주한 하루를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텅 빈 차속에서 난 또 몇 년 뒤 그때를 생각해 본다.
아이가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등교도 혼자 하겠지?
(참고로 알버타는 16살부터 보호자 없이 혼자 운전이 가능하다.)
등교하는 차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기회도 없어지겠지?
지금 이 시간도 누군가에게 도둑맞은 듯 금방 지나가겠지?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을 덮고 있는 불긋불긋한 여드름.
쌍꺼풀 없는 작은 눈에 아침 내내 정성스럽게 그려낸 귀여운 아이라인.
엉덩이에 닿을 듯이 길게 내려진 찰랑거리는 검은 생머리.
"싫어"라고 말할 때 영어와 불어 그리고 한국어 그 어디쯤에서 꼬여버린 아이만의 특이한 발음.
멀리서도 내 딸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세상근심 하나 없는 느릿하고 여유 있는 걸음걸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흐리멍덩 짙은 외로움과 고독한 안개로 덮여있는 이른 겨울 하늘조차도 감사한 순간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후회 없이 충분히 느끼고 즐기라는 조언대로 최선을 다해 내게 마주한 순간을 사랑하고 감사했다. 그러나 그렇게 품에 안았던 시간조차 가끔은 꿈을 꾸었던 것처럼 아늑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언젠가 이 순간도 천천히 추억 속으로 멀어지고, 미래의 나는 또 오늘을 그리워하며 아이의 빈방을 서성일 것이다. 그때의 내가 후회보다는 충분히 사랑했고, 충분히 행복을 누렸음을 먼저 떠올리길 바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천히 눈앞의 이 순간을 마음 깊이 껴안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