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는 연습

by 패미로얄

10년 만에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타러 갔다. 숲길 사이사이로 잘 다져놓은 눈길을 스키를 신고 미끄러지듯 산책하는 알버타 대표 겨울 스포츠다. '스키'라는 이름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지만, 잘 걷기만 하면 어려울 것 없어 보이는 쉬운 스포츠 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린 아기들도 쉽게 시작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는 사실 쉬운 동작인 듯 보이지만 균형을 잘 잡지 못하거나 겁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코너를 돌 때마다 또 내리막길을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앞으로 뒤로 볼상 사납게 넘어지기 쉬운 스포츠이다.


크로스컨트리 스키가 모든 연령대를 어우러 어려움 없이 쉽게 접근가능한 이유가 있다. 편편하게 잘 다져진 눈 위에 이미 앞서간 사람들이 스키 트랙을 만들어 놓았기에 그 트랙 위로 내 스키를 살포시 얹어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름에 숲길을 산책하듯 겨울에는 스키를 신고 미끄러지듯 숲길을 산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쉬운걸 이날 난 500미터도 똑바로 가지 못하고 트랙을 이탈해서 엉덩방아를 찢거나 얼굴을 눈덩이에 처박고 훌러덩 하늘 위로 스키를 들어 올리며 내동댕이 쳐졌다.


앞서가던 신랑이 계속 나에게 조언을 한다.


"무릎 구부리고, 어깨에 힘을 빼라고! 힘이 들어가면 스키가 앞으로 들려서 자꾸 트랙 밖으로 나가게 돼. 그럼 넘어지는 거야! 힘을 빼고 그냥 미끄러져 가는 대로 몸을 맡겨!"


시키는 대로 몸에 힘을 뺀 듯한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힘을 단단히 주고 있었나 보다. 다음날 아침 넘어져서 퉁퉁 부어오른 무릎과 발목 외에도 어깨와 팔뚝, 심지어 폴대를 잡고 있었던 손바닥까지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스키나 스케이트, 수영을 가르칠 때, 힘을 빼고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몸을 온전히 맞기는 연습을 시킨다. 이렇게 연습된 아이들은 놀랍게 모든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함과 동시에 넘어지더라도 다치는 일이 드물다. 그리고는 쉽게 물과 하나가 되고 눈, 얼음과도 하나가 된다. 아직까지 수많은 레슨을 받고도 스키는커녕 스케이트, 수영도 못하는 나는 그 쉬운 '힘 빼는 방법'을 아주 어려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5k 트랙을 반밖에 돌지 않았는데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눈으로 뒤범벅인 된 날 보며 신랑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겁내지 마. 겁을 내서 그렇잖아. 겁을 내면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이렇게 쉬운 길에서도 자꾸 넘어지는 거야."


그렇다. 스키 트랙에 몸을 얹고 미끄러져 내려가는 모든 상황들에 겁을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덜컥 겁이 나서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한눈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와 부딪힐 것만 같아서 온몸이 브레이크가 되어 속도를 늦춰보려고 안감힘을 썼다.


인생을 살아가는 원리도 이런 걸까?

건강하고 안전하게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두 가지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첫째,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째, 힘을 뺀다.

겁을 먹게 되면 내 생각과 몸에 힘이 들어가고

결국 넘어질 확률이 높아지고

넘어지고 나면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난 13년 차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는 피아노 선생님이다. 3년 뒤에는 아이들을 따라 이 시골마을을 벗어나 큰 도시로 나가야 할 것 같다. 그럼 시골마을 피아노 선생님 대신 다른 타이틀이 필요하다. 피아노 선생님이 아닌 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Linkdin이라는 구인구직사이트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호기심에 들춰보았던 구직이라는 현실 속에서 난 덜컥 겁을 먹었다.



'전공자, 경력자를 요구하는구나. 그렇다면 내 전공은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캐나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필수 조건이네. 캐나다 고등학교 크레딧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익숙한 직업이 하나도 없네. 난 모든 직업이 다 초보구나.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네. 내 영어로 감히 할 수 있는 일일까?

눈 딱 감고 이력서를 보내볼까?

이력도 필요 없고, 경력도 필요 없는 식당 주방 보조나 호텔 청소일을 해야 할까?

50세나 되는 나의 나이를 보고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결혼 전 써두었던 이력서를 꺼내보았다. 캐나다에서는 소용도 없는 이력서를 영어로 번역하며 어떻게 하면 조미료 팍팍 넣어서 맛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모습으로 만들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본다. 이번 게임은 완벽한 패배다. 이력서를 내기도 전에 상처입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나라니... 강해 보이려고 잔뜩 몸을 부풀렸으나 이미 겁에 질려있는 불쌍한 복어같다 언제쯤 난 용감하게 힘을 빼는데 익숙해 질까?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후유증으로 오늘 하루 종일 절둑거리며 걸어 다니고 있다.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친 모양이다. 평소에 운동 쪽으로는 전혀 알림이 없던 나의 스마트 와치에 알림이 떴다,

'에어로빅?'

지금 나의 몸상태를 스캔하고 에어로빅을 하고 있냐고 확인하는 알림이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겁먹고 움치리고만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스마트 와치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구나! 살아있구나!' 하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넘어지고, 겁먹고, 힘이 잔뜩 들어가도 난 멈추지 않고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난 아직도 무섭다.

두렵지만 스키 트랙위로 살포시 나의 스키를 얹어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