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이후로 다시 한번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어리석은 어른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을 만났다. <모모>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겨버린 마을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모모>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시간과 삶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게 했다. 마을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고민이 생겼을 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아무튼 모모한테 찾아가 봐."
그럼 사람들은 모모 앞으로 나아갔고 금방 이네 밝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모가 그들에게 뾰족한 해결책을 알려준 것이 아니다. 특별한 마법으로 그들의 근심거리를 사라지게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했을 뿐이다. 심지어 모모가 한마디 말조차 할 필요가 없을 때도 있었다. 모모 앞에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은 더 이상 모모를 찾아오지 않았고, 시간의 굴레에 빠져 점점 모모를 찾아올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고 불행한 이유는 찾아 나설 모모가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누구나 모모를 만날 수는 없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모를 만나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존하는 모모가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모모 같은 대상을 만들 수 있다. 마음속 생각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의 하얀 브런치 글쓰기 페이지가 눈앞의 모모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신랑은 결혼 후 20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녹록지 않았던 이민생활이 신랑의 한국행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고, 70세까지 가장으로서 야간근무까지 하셔야 했던 어머님 또한 아버님이 5차례나 캐나다를 다녀가시는 동안 단 한 번도 비행기에 함께 오르지 못하셨다. IMF 이후로 아버님은 사업실패와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고, 대화 상대로 아내보다 술을, 친구보다 잠을 가까이하셨다. 아버님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처럼, 아니 아버님이 세상을 버린 것처럼 집에만 은둔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처음으로 두 분이서 함께 캐나다를 방문 중이시다.
아버님의 5차례 캐나다 방문이 나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다. 단 한 번도 좋은 마음으로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 기간으로 예약해 놓은 비행기표도 페널티까지 물어가며 날짜를 앞당겨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뭐가 그렇게 못마땅하신 지 "다시는 오지 않겠다." 호통을 치시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게이트 문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는 꽤나 오랫동안 연락을 끊으셨다.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는 다 큰 아들의 잔소리도 싫으셨을 테고, 아직 아버님 눈에는 어린 자식들이 어른 흉내 내며 어설프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속상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게다가 음극과 양극처럼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정치적 견해 때문에 우리 집은 아버님이 계시는 동안 국회 못지않게 언성이 높아지곤 했다. 오늘 하루 무슨 반찬을 해서 가족들의 식탁을 채워야 하나 고민하는 내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 관람각이었다. 모든 일상에 적응해야 했던 새댁시절 내가 만났던 아버님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아버님은 어느덧 칠순이 훌쩍 넘으셨고, 나 또한 40대의 끝자락에 서있다.
아무래도 14시간이라는 비행시간 동안 아버님은 강제적으로 <모모>를 만나신 것 같다. 낯선 사람들 틈에서 오직 익숙한 한 명, 어머님과 피부를 맞대며 좁은 비행기 의자에 앉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쏱아내셨을까?
물론 어머님 입장에선 아버님의 지루한 신세타령과 투덜거림이 듣기 싫어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리지 않는 한 피할 길도 없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모모>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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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가장 많은 말씀을 하시며 자신의 정정함과 아직 쓰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집안 곳곳을 손보시고 자신의 솜씨를 가족들에게 자랑하셨다.
"아버지가 어쩌다 마당에 비질 한번 하시게 되는 날이면, 4형제가 아무것도 못하고 마당에 나란히 서서 아버지 시중을 들어야 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며 돌아가신 분을 흉보셨지만 정작 당신도 모든 가족들을 나란히 줄 세워 번갈아 가며 시중들게 하시는 건 모르시는 것 같다. 아버님 마음속 관심받고 사랑받기 원했던 가냘픈 욕구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대상을 만나자 아기곰돌이 푸처럼 귀여운 몸놀림으로 만족스러운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들었다. 모모를 만난 아버님은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고 홀가분해 보였다.
갱년기를 마주하고 있는 우리 부부도 서로에게 <모모>와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있는지 돌아보았다. 50대에는 말보다는 신랑에게 아이들에게 귀를 먼저 내어주는 나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