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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May 03. 2023

그녀들의 속마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

8년째 이웃사촌인 레슬리 가족. 

미스터 레슬리 씨는 주말에는 프로 골퍼로 그리고 주중에는 오일워커로 열심히 일하는 예쁜 두 딸의 아빠이다. 날씨가 좋은 날은 늘 퇴근 후에 뒷마당에 나와 두 딸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슬그머니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도구(그네, 야외게임, 미끄럼틀 등)를 꺼내놓거나 선택받지 못한 장난감들을 정리하곤 했다(지금은 다 성장한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꺼내줄 일이 없으니 그의 일이 하나 줄었다고 해야 할까?). 아내에게도 다정한 그는 늘 아내와 함께 정원관리를 하고 저녁식사 준비를 돕는 가정적인 남편이기도 하다. 조용하고 말이 없는 그의 취미는 의외로 록음악을 듣는 것이다. 매주 금요일 밤이면 지하에서 들려오는 록음악 소리에 우리 집 창문이 들썩거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가끔 우리 부부는 록음악을 들으며 헤드뱅잉을 하는 미스터 레슬리 씨를 상상하며 웃곤 했었다. 생각해 보니 한참 동안이나 록음악이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아마도 그의 취미가 바뀐 것일까?


웃음이 너무나 귀여운 미세스 레슬리 양은 타운에서 꽤나 소문이난 마사지 치료사이다. 홈비즈니스를 운영하며 두 딸아이를 사랑스럽고 예쁘게 키우고 있는 푸근한(?) 몸매에 말투마저 라일락꽃 향기처럼 부드러운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하루종일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 이름을 불러대는 성격 급한 나와는 달리, 미세스 레슬리 양은 아이들을 부를 때조차 코맹맹이 애교 썩인 목소리로 나긋나긋 딸들의 이름을 부른다. 8년이 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화가 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첫째 딸 로렌이 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미세스 레슬리와의 대화가 기억이 난다.


나 : 졸업 축하해! 로렌이 벌써 졸업이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믿어지지가 않아. 너는 더 그렇겠지? 로렌은 무슨 공부를 하고 싶어 해? 진로는 정했어?


미세스 레슬리 : 로렌은 아직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데. 그래서 대학에 가는 것보다 1년 정도 쉬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더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해. 나도 아이를 위해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 : 아! 그렇구나. 네 말이 맞아. 이제 18살인 아이들한테 지금 당장 진로를 결정하라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우리도 그랬잖아. 그 시기 때 얼마나 고민이 많았니. 로렌은 꼭 자기의 꿈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우리는 졸업하는 아이를 축복하며 그 해를 보냈다.

캐나다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두 당연한 듯 대학에 진학하지는 않는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바로 취업을 해서 사회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진로를 더 고민해 보기도 하고, 대학교 등록금을 스스로 모으기도 한다. 오히려 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바로 대학에 가는 것보다 사회생활을 먼저 해 볼 것을 권유하는 분들도 계시다. 오로지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만 고민 없이 대학에 진학해서 학업을 이어간다. 

그 당시에는 1년 쉬고 싶다는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주고 기다려주는 레슬리 부부가 대단해 보였다. 레슬레 부부뿐 아니라 많은 케네디언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넓은 마음과 이해심은 도저히 내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1년이 지나고 따뜻한 봄햇살이 너무나 좋았던 어제, 외출에서 돌아온 레슬리 가족과 마주쳤다.


나 : 오늘 날씨 너무 좋지 않니? 이제 정말 봄이 오려나 봐!


미세스 레슬리 : 날씨 참 좋네. 이렇게 좋은 날 우리 딸이 오늘 이사를 가.


나 : 뭐? 로랜이? 어디로?


미세스 레슬리 : 멀리는 아닌데,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싶다고 해서... 오늘이 이사 나가는 날이야.


나 : (솔직히 살짝 당황스러워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우리 이제 그 시간이 온 거니? 아이들이 우리의 둥지를 떠나야 하는 그런 날?


미세스 레슬리 : 아니야! 아직은... 그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해.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며 미세스 레슬리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단지 우리 딸은 지금 stuck 된 거야.


그리고는 딸아이와 남자친구가 보이자 황급히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stuck' 무슨 의미였을까? 이날 저녁 이 한단어가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자기의 꿈을 찾아 언젠가는 날아가야만 하는 아기새가 길을 잃었다는 의미일까? 지금까지 캐네디언들은 한없이 쿨하고 이해심 많고 아이들에 관해서도 개방적이고 관대하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로랜이 남자친구와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부부는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네 선택을 존중한다. 네 인생이니 그렇게 하고 싶다면 그렇게 해. 엄마 아빠는 널 믿는다."라고 이야기했을까? 속으로는 그 남자아이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말이다. 미세스 레슬리의 눈물은 몇 달 전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흘렸던 눈물과 같은 의미의 같은 색깔의 눈물이 아니었을까?


모델 같은 몸매에 예쁜 얼굴. 노래면 노래, 공부면 공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잡지 속 모델 같은 미쉘의 딸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탐나고 미래가 기대되는 그런 아이였다. 초음파 기사를 꿈꾸었던 딸은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해서 앨버타에서는 알아주는 학교에 초음파 학과에 입학을 하고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참고로 내가 사는 곳은 에드먼튼과 떨어진 시골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려면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을 보내듯이 에드먼튼으로 이사를 내보내야 한다. 1학년을 마치고 남자친구와 함께 타운에 놀러 온 아이를 보면서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난 꼰대 같은 생각을 했었다. "남자친구라니... 공부 제대로 하겠나..." 하지만 나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1학년만 마치고 학교를 그만둔 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예에 매진했고 청혼을 받아 그 해 말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물론 결혼을 인생의 마지막 인양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으로 인해 이 아이의 인생이 이제는 빛을 잃었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꿈을 버리고 남편과 함께 농장에서 일을 하며 가정을 이루기로 한 결정이 20살 딸에게 가장 최선의 결정이었을까 생각해 볼 뿐이다. 친구의 마음이 어떨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딸을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허전할까 염려가 되기도 했지만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늘 밝았고 그런 친구의 모습에 '역시 케네디언들은 우리랑 생각이 많이 다르구나.'라고 또 한 번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었다. 

결혼식 준비로 바쁜 친구와 늘 그렇듯 평소처럼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 나누던 중, 나도 모르게 친구의 손을 잡고 물어봤다. 큰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첫 딸을 결혼시키는 엄마의 마음은 그것도 20살 밖에 안된 어린 딸을 결혼시키는 엄마의 마음은 그저 편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나 : 메건 행복해 보이더라.


친구 : 응...


나 : 너 괜찮아? 


친구:...


나 : 정말 괜찮은 거지?


친구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고, 나도 눈물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한동안 눈물을 훔치기에 바빴다.

아무리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배경이 크게 다르다고 해도 엄마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똑같은 것 같다. 자식들의 결정에 염려스럽고, 화가 나고, 섭섭한 건 마찬가지인 것이다. 단지 표현방법이 다를 뿐. 

속도 모르고 그런 그들의 쿨한 모습이 성숙하고 포용력 있어 보였으나, 차라리 속시원히 아이들에게 소리도 지르고, 등짝 스메싱이라도 날리면서 감정을 표현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아이들의 결정에는 통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친구들의 생각과 행동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캐나다 문화권에서 교육을 받은 나의 아이들이 이런 결정을 했다면 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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