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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미로얄 Apr 22. 2023

슬픔, 노여움, 실망 그 어디쯤

아웃(out)당한 이웃들

초등학교 4학년 토마스는 몇 달 전 새로 등록한 신입생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손에는 역시나 피아노 교재가 들려있지 않았다. 벌써 2주 연속, 아니 그전에도 종종 아이는 교재 없이 수업에 들어왔다. 오늘은 참다못해 좀 엄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토마스! 너 교재 왜 안 가지고 왔니?"

"책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찾아도 없던데요?"

"그럼, 일주일 동안 책이 없어서 연습도 하나도 못했겠네?"

"네!"

너무 당당하게 대답하는 아이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들어올 때부터 기침하는 모습이 신경이 쓰였는데, 피아노 앞에 앉아 연신 재채기와 기침을 번갈아 하며, 콧물까지 훌쩍거리는 것이었다. 아이 셋 엄마의 레이다망에 잡힌 이 기침소리는 영락없는 감기였다. 난 마스크를 꺼내 보이며 토마스에게 이야기했다.

"다음 학생이 5살 동생인데, 너의 감기바이러스를 동생에게 옮기지 않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좋겠지?"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재미있게 30분 레슨을 마치고 차에서 대기하고 있던 엄마에게 아이를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토마스 엄마로 부터 뜻밖의 긴 메시지를 한통 받았다.

'토마스에게 방금 들었는데 네가 우리 아이에게 마스크를 강제로 착용하게 했다며? 나의 허락도 없이 그것도 강압적으로 아이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하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니니? 아이가 기침하는 게 불편했다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데려가라고 이야기했어야지. 만약 토마스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다면 레슨을 보내지도 않았을 거야. 단지 건조해서 기침한 것 가지고 마스크 착용까지 강요하다니 너무 불쾌하네. 앞으로는 조심해 주길 바래.'

메시지를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맞다! 잊고 있었다. 내가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노인들과 환자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줄줄이 죽어나갔던 그 코로나19 전쟁통에서도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에서는 자신들의 인권이 엄청나게 침해를 당한 듯 큰소리치더니 뒤에서는 어찌나 화장실 휴지를 사재기하던지, 한동안 친구들에게 휴지를 빌리러 다녀야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아침에 마신 커피 카페인이 이제야 슬슬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손가락이 바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그 떨리는 손으로 바쁘게 답장을 써내려 갔다

'난 마스크 착용을 강요한 적도 없고, 강요할 생각도 없어. 토마스가 마스크가 싫다고 이야기했다면 당연히 씌우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레슨 내내 토마스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앞으로는 다른 학생들도 배려해 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모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잖아?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두 같은 악기를 가지고 레슨을 받는데 토마스가 감기든 아니든 상관없이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줬으면 좋겠어. 기존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기침을 하면 마스크를 씌워서 보내. 그러면서도 혹시나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나의 의견을 제차 확인하고는 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할게. 다음 주에는 피아노책 꼭 챙겨서 보내주길 바래. 난 30분 동안 토마스를 봐주는 베이비 시터가 아니거든......'

순간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화를 내도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인걸 겪어놓고 말이다. 메시지를 싸악 지우고 다시 써내려 갔다.

'토마스에게 마스크를 강요할 생각도 없고, 강요하지도 않았어. 너에게 먼저 물어봤어야 했는데 미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긴 말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제발 두루두루 소문내라! 진은 기침하면 마스크 씌우더라!'라고.


지난 3년간 코로나가 앗아간 건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이 아니었다. 신념이라는 거창한 이름아래 깨어진 서로 간의 신뢰였다. 10년 넘게 자가면역 억제제를 맞고 있는 나였기에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공포였다.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당연하게 백신을 맞았고, 나 또한 위험군에 포함되어 제일 먼저 백신을 맞았다. 한인이 거의 없는 마을에서 10년 동안 살아오면서 우리 가족은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교회에서, 커뮤니티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우리는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고 배려하고 사랑했다. 그런데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착용한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눈빛에서 난 실망과 노여움, 슬픔 그 어디쯤인가 자리한 감정에 마음이 무너졌다. 존경했던 어르신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겨야지 정부를 섬겨서 되겠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이렇게 난 가족 같은 사람들을 잃었다.

지금생각해 보면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 덕분에 아무도 모른다던 한길 사람 속을 알았으니 말이다. 떨리는 마음과 손을 진정시키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여 보았다.

"아만다(토마스엄마) 넌 내 인생 리스트에서 아웃이야!"


아웃(out)당한 이웃들 

-패미로얄 @canada_famiroy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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