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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중 나타난 빛의 비밀

by 홍종민


사주를 보다 보면 **"이 사람 영적 능력이 있네"**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어떨까 싶어서 명상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엔 단순히 마음을 비우는 것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명상의 단순함 속 무한한 깊이


명상의 세계는 겉보기엔 단순하다. 마음챙김 명상과 집중 명상, 이 두 가지가 전부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담긴 경험은 무한히 깊고도 신비롭다.

명상의 과정에서 종종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이다. 빛은 명상이 깊어졌다는 신호이자,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라캉이 말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이 빛도 어쩌면 무의식이 보내는 또 다른 형태의 언어일지 모른다.


심월(心月): 마음의 달


처음 빛을 보기 시작하면, 그 순간은 마치 다른 차원의 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빛에 집착하지 말라는 조언이 뒤따른다. 빛은 삼매(三昧)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이 빛을 '심월(心月)', 즉 마음의 달이라 부른다.

"심월은 삼매의 증명이며, 심안(心眼)을 통해 보름달 같은 형상이나 빛이 수행 중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각산, 2012: 67).


다섯 가지 색깔의 신호


빛은 단순히 한 가지 색이 아니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다섯 가지 색깔이 나타나고, 이는 명상의 깊이를 알려주는 일종의 신호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빛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보통은 30분 정도 지속될 수 있다고 하지만, 나의 경우 빛은 겨우 몇 분 만에 사라지곤 했다. 처음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정상이더라.

빛 속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는 마치 렌즈를 통해 본 세상처럼 날카롭고 선명했다. 때로는 구름처럼 형태가 흐릿해지다가도, 그 틈새에서 불현듯 이미지가 떠오르곤 했다.

이 경험은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우주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주의 오행론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색과 명상에서 나타나는 빛의 색깔이 일맥상통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심월'**을 본 적은 없다. 다만 몇 가지 색을 통해 그 실체를 엿볼 뿐이었다. 어쩌면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나, 아니면 내 방식이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갓바위에서의 신비로운 체험


6년 전, 나는 대구의 갓바위를 자주 찾았다. 그곳에서 명상을 하며 빛 속에서 이미지를 보기 시작했다. 갓바위에서 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때로는 미래를 보여주는 듯한 빛이었다.

명상을 통해 빛을 이미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었고, 이 경험은 집에서도 이어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미지는 오직 기(氣)가 센 영지에서만 나타났다.


과학과 신비의 경계선


나는 이것이 단순히 바윗발에서 나오는 자기장이 뇌 속의 철분을 자극해 스파크를 일으킨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태장 이론을 공부한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장소에 축적된 집단적 정보나 에너지가 내 무의식과 공명했을 가능성도 있다.

영지에서 명상할 때만 가능한 이 경험은 나 자신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강렬한 깨달음을 주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전이 현상과도 비슷하다. 과거의 기억이나 무의식적 내용이 현재 상황에서 재현되는 것처럼, 그 장소의 에너지가 내 의식에 전이된 것일 수도 있다.


우주의 속삭임: 빛과 이미지의 언어


불교에서는 신통력도 집중 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영지에서의 빛과 이미지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은밀한 증거다.

명상을 통해 만난 빛과 이미지는 나의 과거와 미래를 잠시 엿볼 수 있게 해주었다. 라캉이 말한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생각해보면, 빛은 기표이고 그 속에 담긴 의미나 이미지는 기의인 셈이다.


일상과 영성의 만남


빛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우주와의 연결을 일깨워주는 상징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를 잊고 지내던 본래의 자신으로 이끄는 안내자와도 같다.

명상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빛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빛 너머에서 우주를 만난다. 그것은 단순히 초자연적 경험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간과하던 본질적 존재와의 조우다.

어쩌면 빛은 우리가 속삭이는 우주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융의 동시성 원리로 설명하면, 우리의 내적 상태와 외적 현상이 의미 있는 우연으로 만나는 순간인 것이다.


집중 명상의 실제적 방법


우리가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독경(讀經)**이 중요한 명상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아 왔다.

반야심경, 천수경, 신묘장구대다라니, 광명진언 같은 경전을 소리 내어 읽는 행위 자체가 깊은 집중을 요구하는 명상법이다.


만트라의 힘


또 다른 방법으로는 **'만트라 집중 명상'**이 있다. 짧은 단어나 문구를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방식인데, 대표적인 예로 '관세음보살', '옴 마니 반메 훔', '성모 마리아' 같은 구절이 있다.

중요한 것은 숨을 내쉴 때 이 만트라를 수행하는 것이다. 소리를 내어 반복해도 좋고, 속으로 조용히 되뇌어도 된다. 다만 어느 경우든 내쉬는 숨에 맞춰야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미간에 작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곳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명상을 하면, 놀랍게도 눈앞에 만화경 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화려한 빛들이 춤추고, 마치 개인 전용 영화관에서 신비로운 영화가 상영되는 듯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상의 일종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현상에 너무 깊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명상을 즐기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미간 집중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주의할 점이 있다. 하루에 30분 이상 미간 집중 명상을 지속하면 혹시 상기증에 걸릴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간 집중 명상법은 신비체험으로 가는 핵심 열쇠라는 것은 분명하다.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꾸준히 실천한다면, 일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의식의 확장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호흡과 함께 반복되는 만트라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라캉의 이론으로 보면, 반복적인 만트라는 의식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무의식의 더 깊은 층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기표의 연쇄를 만드는 것이다.


개인적 체험담


내 경우엔 **'옴 마니 반메 훔'**을 자주 사용한다. 처음엔 단순한 주문 정도로 생각했는데, 계속 하다 보니 의식 상태가 확실히 달라진다. 마치 잡념의 소음이 줄어들면서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특히 갓바위에서 이 만트라를 할 때 빛의 경험이 더 자주 일어났다. 어쩌면 만트라 자체가 무의식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 같다.결국 명상이든 사주든,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연결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다. 우리는 단순히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의식의 네트워크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연결을 자각하는 순간이 바로 진정한 깨달음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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