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막내의 발견: 상징적 질서의 전복
학기 6주차 금요일 저녁, 라캉 스터디 정기 모임이 있었다. 장소는 학교 근처 카페. 늦가을 오후의 카페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창밖으로 떨어지는 은행잎들이 노란 비처럼 흩날리고, 실내에는 커피 향과 함께 나른한 재즈가 흐른다.
이 풍경은 프로이트가 말한 '일상의 시적 순간(poetic moment of everyday life)'이다. 평범한 순간 속에서 무의식이 스며드는 때. 떨어지는 낙엽은 시간의 흐름을, 재즈는 욕망의 리듬을 상징한다.
20대 3명, 30대 2명, 그리고 50대 필자. 우리 스터디 모임에서 필자는 영락없는 '막내'였다. 50대 막내라니.
이것은 라캉이 말하는 '상징적 질서의 전복'이었다. 나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이 아니라, 지식이라는 상징적 자본이 위계를 결정한다. 대학 담론(discourse of the university)에서는 S2(지식)가 주인 자리를 차지한다.
"오늘은 '투사' 개념 집중적으로 다룰 거예요. 홍 선배님, 준비하셨어요?"
스터디 리더인 28세 수진이가 물었다. 필자보다 20년 이상 어리지만, 여기서는 그녀가 선생님이었다.
"준비했지. 근데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모르겠어."
"괜찮아요. 틀려도 돼요. 여기서는."
수진이의 말에 필자는 안도했다. 25년간 회의실에서는 틀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는데, 여기서는 틀려도 되는 '막내'였다.
이것은 위니컷(Winnicott)이 말한 '안전한 공간(safe space)'이다. 실패가 허용되는 공간에서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
커피와 투사의 상관관계: 일상의 정신분석
"막내가 주문 받아요~"
30대 동기가 농담처럼 말했다. 모두가 필자를 봤다.
"아, 맞다. 내가 막내지."
필자는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작년 봄 퇴사 후 처음 느끼는 자유로움이었다. 이게 자연스러워진 자신이 신기했다.
이것은 에릭슨(Erikson)이 말한 '역할 정체성(role identity)'의 재구성이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부장'에서 '막내'로의 전환은 단순한 호칭 변경이 아니라, 정체성의 재구성이다.
카운터에서 주문하며 생각했다. 25년간 부하직원들 커피 취향도 몰랐는데, 이제 20대들 커피 취향을 외우고 있다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막내 역할'이 편했다. 아무도 필자에게 나이에 맞는 권위를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커피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렸다.
"진짜 그 팀장 때문에 미치겠어. 나만 보면 무시하는 표정이야."
베이지 코트의 여성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나는 괜찮던데?"
"너는 몰라. 분명히 나를 싫어해. 오늘도 회의 때 내 의견만 무시했다니까."
이것은 클라인(Klein)이 말한 '편집적 자리(paranoid position)'의 전형적 예시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고, 자신이 박해받는다고 느끼는 상태.
십여 년 전 김 대리의 기억: 투사의 원형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30대 중반, 대기업 마케팅팀 과장이었다. 우리 팀에는 김 대리가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선배. 늘 단정한 옷차림에 깔끔하게 묶은 머리, 그리고 뿔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
프로이트는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 우리가 특정 인물에게 과도하게 반응할 때, 그것은 무의식적 갈등의 신호라고 했다.
김 대리는 정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했고, 주말에도 종종 회사에 나왔다. 기획안을 작성할 때는 몇 번이고 수정을 거듭했고,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는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점점 불편해졌다. 특히 그녀가 내 기획안을 검토할 때마다.
"홍 과장님, 여기 좀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디가 문제인가요?"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적 분노(defensive anger)'다. 자아가 위협받을 때 나타나는 원초적 방어 기제.
"전체적인 흐름은 괜찮은데, 디테일이 좀 부족해요. 특히 이 부분..."
객관적으로 보면 정당한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 하나하나에서 비난과 조롱을 읽었다.
'또 시작이군. 내가 그렇게 무능해 보이나? 왜 나한테만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거야?'
이것이 바로 투사(projection)의 메커니즘이다. 프로이트는 1895년 「편집증 사례 분석」에서 처음으로 투사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면의 충동을 외부로 돌린다.
스터디에서의 깨달음: 투사의 정신분석학
"자, 그럼 투사 개념부터 정리해볼까요?"
수진이가 칠판에 도식을 그리기 시작했다.
"투사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보는 거예요. 마치 거울처럼, 타인은 우리 내면을 비추는 스크린이 되는 거죠."
프로이트의 투사 개념:
원초적 방어기제 중 하나
용납할 수 없는 충동을 외부로 돌림
"내가 그를 미워한다" → "그가 나를 미워한다"
편집증의 핵심 메커니즘
20대 철학과 동기가 덧붙였다.
"라캉은 이걸 '상상계적 동일시'라고 했어요.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상상과 환상을 통해 봐요."
라캉의 투사 재해석:
거울 단계의 연장
자아는 타자의 이미지로 구성됨
공격성은 나르시시즘적 동일시의 결과
"나는 타자다(Je est un autre)"
필자가 손을 들었다.
"그럼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건..."
"선배님이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모습을 그 사람에게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순간, 김 대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직장에서의 투사 경험: 그림자의 심리학
"선배님, 직장에서 특별히 불편했던 사람 있었어요?"
지민이가 물었다.
"있었지. 김 대리라는 사람이..."
필자는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스터디 멤버들은 진지하게 들었다.
"그 사람이 뭘 해도 거슬렸어. 특히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왜 그랬을까요?"
수진이가 물었다. 상담사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어.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부모님 때문에 경영학과를 갔고,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내 꿈은 아니었거든."
이것은 융(Jung)이 말한 '그림자(Shadow)'의 투사다. 그림자는 의식이 거부한 성격의 측면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그래서?"
"김 대리는 진심으로 마케팅을 사랑했어. 새로운 캠페인을 기획할 때면 아이처럼 들떴고,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면 진심으로 기뻐했지."
30대 동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니까 선배님이 포기한 '일에 대한 열정'을 김 대리가 가지고 있었던 거네요."
"맞아. 그게 부러웠고, 동시에 자기혐오를 느꼈던 것 같아."
이것은 클라인이 말한 '선망(envy)'의 메커니즘이다. 좋은 대상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퇴근 후 호프집에서: 집단 투사
그날 저녁, 스터디 회식이 있었다. 학교 근처 허름한 호프집.
"선배님이 막내니까 건배사 해주세요~"
막내에게 건배사를 시키는 전통(?)이었다. 필자는 일어섰다.
"Carpe diem! 오늘을 즐기자!"
"...그게 끝이에요?"
"응. 25년간 장황한 건배사에 지쳤거든."
모두가 웃었다. 술이 몇 순배 돌자 대화가 깊어졌다.
"사실 나도 교수님한테 투사하는 것 같아."
수진이가 고백했다.
"어떤?"
"지도교수님이 나한테만 엄격한 것 같거든. 다른 학생들한테는 친절한데."
"정말 그런가?"
"아니... 사실 모르겠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건지, 진짜 그런 건지."
이것은 전이(transference)와 투사가 결합된 현상이다. 교수라는 권위 형상에 부모 이미지를 전이하고, 자신의 불안을 투사한다.
새벽의 자각: 투사의 진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는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26년을 함께 산 아내. 그녀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의 상태다. 의식의 검열이 느슨해지고, 무의식의 내용이 떠오른다.
김 대리를 다시 떠올렸다. 그녀가 정말로 나를 무시했을까?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나를 아꼈다. 내 기획안에 가장 많은 피드백을 준 것도, 가장 신경 써준 것도 그녀였다. 다만 나는 그것을 공격으로 받아들였을 뿐.
문득 웃음이 나왔다. 그 시절, 나는 김 대리를 미워했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내가 미워한 것은 김 대리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안주한 나 자신이었다.
프로이트는 『문명 속의 불만』에서 "우리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의 투영"이라고 했다.
김 대리는 그저 거울이었다. 내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모습을 비추는 거울.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 내가 포기한 그 모습을 그녀는 매일 보여주었다.
그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상담실에서 만난 투사들: 임상 사례
작년 퇴사 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작은 상담실을 열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놀랍게도 많은 경우 그들의 고민 핵심에는 '투사'가 있었다.
최근에 만난 40대 주부 A씨.
"시어머니가 저를 미워해요. 제가 하는 모든 게 마음에 안 드시나 봐요."
몇 차례 상담을 진행하면서 A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매우 엄격한 분이었다.
"어머니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이었어요. 뭘 해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죠."
이것은 대상관계 이론에서 말하는 '내재화된 나쁜 대상(internalized bad object)'이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 관계가 내면화되어 성인기 관계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지금, A씨는 시어머니에게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시어머니에게 투사한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단계:
용납할 수 없는 자기 부분을 분리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
타인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
투사된 내용과 동일시
라캉 세미나에서의 논쟁: 네 가지 담론
10주차 목요일, 교수님의 라캉 세미나 시간.
"오늘은 '네 가지 담론' 중 대학 담론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홍 선생, 발표 준비하셨나요?"
라캉의 네 가지 담론은 사회적 유대의 구조를 설명한다:
주인의 담론: S1 → S2 / $ → a
대학의 담론: S2 → a / S1 → $
히스테리의 담론: $ → S1 / a → S2
분석가의 담론: a → $ / S2 → S1
필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앞에 섰다. 50대에 20대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대학 담론에서는 S2, 즉 지식이 주인 자리에 있습니다. 나이나 경험이 아니라 지식이 권위를 갖는다는..."
발표 중간에 20대 동기가 손을 들었다.
"선배님, 그렇다면 우리 스터디에서 선배님이 막내인 것도 대학 담론의 예가 될 수 있을까요?"
순간 교실이 웅성거렸다. 교수님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좋은 지적이네요. 홍 선생이 50대임에도 '막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상징적 권위의 전복이죠."
일상에서 발견하는 투사: 정치적 투사
어제 저녁, 아내와 함께 뉴스를 보고 있었다. 한 정치인의 비리 의혹에 대한 보도였다.
"저런 인간들이 어떻게 정치를 한다는 거야. 다 자기 배만 불리려고..."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웃었다.
"뭐가 웃겨?"
"아니, 그냥... 우리도 가끔 그러잖아."
"뭐가?"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거 말이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은 융이 말한 '집단 그림자(collective shadow)'의 투사다. 사회가 집단적으로 거부하는 측면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투사한다.
아내는 잠시 멈칫했다가 피식 웃었다.
"그러네. 나도 마트에서 할인 상품 하나 더 집어오려고 새치기한 적 있는데."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그리고 그것이 불편할 때 더 크게 비난한다.
프로이트는 이를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고 불렀다. 용납할 수 없는 충동에 대해 정반대로 행동하는 방어기제.
스터디 발표 준비: 이론과 실제의 통합
12주차, 수진이가 제안했다.
"선배님, 이번 학회 발표 같이 준비할래요?"
"나? 막내가?"
"선배님 사례가 풍부하잖아요. '투사'를 주제로 해서, 이론은 제가 정리하고 선배님은 직장 경험 사례를 넣어주세요."
그렇게 '라캉으로 읽는 직장인의 투사 메커니즘'이라는 발표를 준비하게 됐다.
준비 과정에서 수진이는 철저히 리드했다.
"선배님, 여기는 이렇게 수정해주세요."
"이 부분 논리가 약한데요?"
50대가 28세에게 지적받는 상황. 예전 같으면 자존심 상했을 텐데, 이제는 달랐다.
이것은 비온(Bion)이 말한 'K 연결(K link)'이다. 지식을 향한 욕망이 나르시시즘적 방어를 넘어선다.
학회 발표 날: 공개적 자기분석
학회 발표 날, 청중석에는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가득했다.
"25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수많은 투사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김 대리 사례를 통해..."
필자는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투사였는지 설명했다.
"김 대리는 제가 포기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저는 그 불편함을 '그녀가 나를 무시한다'는 환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것은 공개적 자기분석이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자신의 꿈을 분석한 것처럼.
발표가 끝나자 한 교수가 질문했다.
"홍 선생님, 그렇다면 지금 대학원에서는 어떤 투사를 경험하고 계신가요?"
좋은 질문이었다.
"처음에는 20대 동기들이 저를 무시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투사였어요. 사실은 제가 '배움'에 대해 가진 부끄러움을 그들에게 투사한 거였죠."
개인 분석에서의 발견: 반복강박과 투사
대학원 과정 중 개인 분석을 받게 되었다. 분석가는 60대 여성이었다.
"홍 선생님, 최근에 반복되는 꿈이 있나요?"
"네... 이상한 꿈인데, 같은 옷을 두 벌씩 사는 꿈이에요."
"현실에서도 그런 적이 있나요?"
놀랍게도 있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같은 옷을 두 벌씩 사는 것. 그리고 시즌이 끝나면 꼭 하나는 버린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강박'의 한 형태다. 무의식적 갈등이 행동으로 표현된다.
"그것이 무엇을 연상시키나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장례식장. 그때 느낀 복잡한 감정들.
"할머니에 대한 양가감정 같아요.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동시에?"
"원망했던 것 같아요. 저를 바라보던 그 시선이..."
이것은 클라인이 말한 '분열(splitting)'이다. 대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는 원초적 방어.
분석가가 조심스럽게 해석했다.
"같은 옷을 두 벌 사서 하나를 버리는 것. 그것도 일종의 투사일 수 있습니다. 할머니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옷에 투사하는 거죠."
김 대리와의 재회: 상호 투사의 인식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학회 발표 후 일주일쯤 지났을 때, 김 대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홍 과장님? 아니, 이제 홍 상담사님이시죠? 학회 발표 영상을 봤어요."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카페에서 만난 김 대리는 많이 변해 있었다. 날카로웠던 눈빛이 부드러워졌고, 딱딱했던 표정에는 미소가 있었다.
"발표 내용 듣고 놀랐어요. 제가 홍 과장님을 그렇게 힘들게 했는지 몰랐네요."
"아니에요. 제가 혼자 만든 환상이었어요. 투사였죠."
김 대리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도 홍 과장님께 투사했어요."
"네?"
"홍 과장님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일만 아는 사람이었는데... 그게 부러웠어요."
이것은 '상호 투사(mutual projection)'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투사한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었다. 각자가 갖지 못한 것을 상대에게서 보았고, 그것이 불편했다.
나의 증상, 나의 투사: 시간 강박
최근 들어 새로운 증상이 나타났다. 스터디 모임 때마다 10분씩 일찍 도착하는 것이다.
"선배님은 왜 항상 일찍 오세요?"
지민이가 물었다.
"그냥... 늦으면 안 될 것 같아서."
하지만 분석 시간에 이것도 투사임을 깨달았다. 25년간 회의실에서 '권위'로 군림했던 내가, 이제는 '막내'가 되어 불안한 것이다. 그 불안을 '시간 엄수'에 투사한 것이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전치(displacement)'이다. 한 대상에 대한 감정을 다른 대상으로 옮기는 것.
투사를 자각하는 일상의 연습: 마음챙김
이제 나는 투사를 자각하는 것이 일종의 일상 수행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뉴스를 보며 화가 날 때, 잠시 멈추고 묻는다.
"이 분노가 정말 저 정치인 때문일까? 아니면 내 안의 무력감 때문일까?"
이것은 불교의 '마음챙김(mindfulness)'과 정신분석의 '자기관찰(self-observation)'이 만나는 지점이다.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다.
"이 감정이 내담자의 것인가, 아니면 내 것인가?"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다. 분석가가 환자에게 느끼는 감정. 그것을 자각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터디 최종 발표: 투사의 변증법
학기 마지막 스터디 모임. 각자 한 학기 동안의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저는 이번 학기에 '투사'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수진이가 말했다.
"특히 홍 선배님 사례를 들으면서, 나이나 경험과 상관없이 누구나 투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것은 투사의 보편성이다. 프로이트는 투사를 '원초적 방어기제'라고 불렀다. 누구나 사용하는 기본적 메커니즘.
30대 동기도 거들었다.
"맞아요. 그리고 투사를 자각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필자 차례가 왔다.
"나는 50대에 막내가 되면서 많은 걸 배웠어. 특히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타인에게 투사하며 살았는지..."
"예를 들면요?"
"김 대리에게는 내 열정 부족을, 너희들에게는 내 배움의 부끄러움을, 아내에게는 내 휴식 욕구를 투사했지."
라캉이 말하는 투사의 구조: 상상계와 공격성
그날 밤, 집에서 라캉의 책을 다시 펼쳤다.
"무의식은 타자의 담론이다."
이 문장이 이제는 조금 더 이해가 된다. 우리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때로는 투사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라캉은 「공격성에 관하여」에서 투사와 공격성의 관계를 설명한다:
"공격성은 거울 단계에서 형성된 나르시시즘적 구조의 결과다. 자아는 타자의 이미지로 구성되기에, 타자는 항상 잠재적 경쟁자이자 위협이다."
라캉의 상상계 이론도 더 명확해졌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과 환상을 통해 본다.
김 대리를 볼 때, 나는 그녀 자체를 본 것이 아니라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을 본 것이다.
라캉의 투사 메커니즘:
거울 단계에서 형성된 소외된 자아
자아와 타자의 경계 모호함
나르시시즘적 동일시와 공격성
상상계적 경쟁 관계
라캉은 또한 주체의 분열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나'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언어의 세계, 즉 타자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분열된다. 말하는 나와 말해지는 나, 의식적인 나와 무의식적인 나로.
이 분열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일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한다.
투사의 윤리학
학기 마지막 교수님 수업.
"한 학기 동안 투사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홍 선생, 정리 발언 부탁합니다."
필자는 일어섰다.
"투사는 적이 아니라 선생님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의식의 지도를 보여줍니다.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불편하지만 필요한 진실을."
이것은 정신분석의 윤리다. 진실을 직면하는 용기.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통찰입니다. 50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홍 선생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거울이 되어주고 있죠."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여전히 투사합니다. 다만 이제는 자각할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극복이 아니다. 투사는 인간의 기본적 메커니즘이다. 중요한 것은 자각이다.
새로운 시작: 영원한 막내
다음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신입생들이 들어왔지만, 필자는 여전히 '막내'다. 배우는 사람은 영원히 막내니까.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knowing that you don't know)'다. 진정한 앎은 모름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늘도 스터디 모임이 있다. 이번 주제는 '전이'다. 또 다른 거울, 또 다른 발견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카페로 가는 길, 낙엽이 떨어진다. 십여 년 전 김 대리를 미워했던 그 가을처럼.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투사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투사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는 것을.
"나, 혹시 지금 내 감정을 투사하고 있나?"
이 질문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지, 이제는 안다.
문득 김 대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홍 과장님도 투사했지만, 저도 투사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거울이었네요."
그렇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거울이다.
헤겔의 변증법처럼, 우리는 타자를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때로는 투사라는 왜곡된 거울을 통해서라도.
그리고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한다.
때로는 아프지만, 그것이 성장이다.
투사의 선물
작년 봄 퇴사 후 시작된 정신분석 여정. 50대 막내의 모험은 계속된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투사는 내면의 위험을 외부의 위험으로 전환시킨다."
라캉은 덧붙인다: "자아는 타자의 장소에서 구성된다."
융은 완성한다: "그림자를 의식화하지 않으면, 그것은 운명이 된다."
"오늘 스터디에서는 뭘 배울까?"
설렘과 함께 카페 문을 연다.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서 더 자유롭다.
투사를 자각하는 것. 그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우리가 타인에게서 보는 것은 대부분 우리 자신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아는 타자다." - 자크 라캉
"네가 보는 것이 곧 너다." - 칼 구스타브 융
"우리는 모두 서로의 거울이다." - 50대 정신분석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