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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내 인생 2막은 정신분석-5화

by 홍종민

과제가 영어다, 그리고 우리가 반복하는 전이의 비밀


폭탄선언: 언어적 거세와 상징계의 이중 진입


나는 영어 울렁증이 있다. 잘 고쳐지지 않는다. 25년간 직장에서 영어 이메일 하나 쓸 때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렸고, 외국인 바이어를 만날 때는 항상 통역을 대동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콜린 퍼스가 포르투갈어를 못해서 사랑 고백을 못하는 장면에 깊이 공감했다. 언어의 장벽은 넘기 힘들다고 믿었으니까.

라캉은 언어를 '상징계로의 진입'이라고 봤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주체가 되지만, 동시에 언어에 의해 소외된다. 영어는 나에게 이중의 소외였다. 모국어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무의식을, 타국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불가능성.

학기 5주차 목요일, '정신분석 이론' 수업이었다. 최 교수가 교탁에 서며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중간 과제를 발표하겠습니다."

학생들이 노트를 펼쳤다. 나도 펜을 들었다.

"프로이트 원서를 읽고 에세이를 쓰는 겁니다. 'Mourning and Melancholia', 영어 원문으로 읽으세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불안(Angst)'의 순간이었다. 자아가 위협을 감지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는 순간.


번역의 불가능성: 프로이트의 언어와 개념


"교수님, 번역본은 안 되나요?"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안 됩니다. 정신분석 용어는 번역 과정에서 많은 뉘앙스가 손실됩니다. 원문을 읽어야 프로이트의 진짜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요."

이것은 중요한 지점이다. 프로이트는 독일어로 썼고, 그의 많은 개념들이 영어로 번역되면서 변형됐다. 예를 들어:

Trieb → Drive (충동) : 본능(Instinct)과는 다른 개념


Besetzung → Cathexis (리비도 투여) : 에너지의 집중


Ich → Ego (자아) : 단순한 '나'가 아닌 정신 구조


Es → Id (이드) : '그것'이라는 비인격적 힘


최 교수가 칠판에 썼다.

**과제:

'Mourning and Melancholia' 정독


'Fragment of an Analysis of a Case of Hysteria' (도라 케이스)


조안 시밍턴 & 네빌 시밍턴의 『윌프레드 비온 입문』 중 전이 사례


3000단어 에세이 (영어 인용 필수)**


삼중 폭탄이었다.

"그리고..." 최 교수가 덧붙였다. "이번 주부터 전이(Transference) 개념을 집중적으로 다룰 겁니다. 여러분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전이 현상을 관찰해오세요."

전이의 정신분석학: 프로이트에서 라캉까지

전이(Übertragung)는 프로이트가 발견한 정신분석의 핵심 현상이다. 처음에는 치료의 방해물로 여겨졌지만, 나중에는 치료의 핵심 도구가 됐다.

프로이트는 『전이의 역동(The Dynamics of Transference)』(1912)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환자는 과거의 중요한 인물들과의 관계 패턴을 분석가에게 반복한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의 재연(acting out)이다."

라캉은 전이를 더 넓게 해석한다. 그에게 전이는 '알고 있다고 가정된 주체(sujet supposé savoir)'에 대한 관계다. 우리는 타자가 우리의 무의식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에게 의미를 부여한다.


카페에서의 긴급 회의: 집단 역동


수업이 끝나고 동기들과 학교 앞 카페로 향했다. 긴급 대책 회의가 필요했다.

이것은 비온(Bion)이 말한 '기본 가정 집단(basic assumption group)'의 형성이었다. 위기 상황에서 집단은 의존(dependency), 투쟁-도피(fight-flight), 짝짓기(pairing)의 기본 가정 중 하나를 택한다. 우리는 의존 모드였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불안을 달래려 했다.

그때 32살 지영이 합류했다. 마케팅 회사를 다니다가 번아웃으로 퇴사하고 대학원에 온 그녀는 최근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늦어서 미안. 병원 갔다 오느라."

"무슨 병원?" 수진이 물었다.

"정신과. 또 차였거든."

서른두 살 지영의 세 번째 이별: 반복강박의 임상

지영은 카푸치노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눈가가 부어 있었다.

"세 번째야. 정확히 같은 이유로."

"무슨 이유?" 내가 물었다.

지영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첫 번째 남자친구: '너무 집착한다, 숨이 막힌다.' 두 번째: '좀 거리를 두고 싶다, 부담스럽다.' 세 번째: '네가 날 너무 필요로 해, 독립적이었으면 좋겠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설명한 '반복강박(Wiederholungszwang)'의 전형적 사례다. 우리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한다. 왜? 그것을 통제하고 극복하려는 시도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웃긴 건, 처음 만날 때는 다 달랐어. 첫 번째는 다정해 보였고, 두 번째는 자상했고, 세 번째는 배려심이 깊었어. 근데 시간이 지나면 다 똑같아져."

이것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의 메커니즘이다. 클라인(Klein)이 발전시킨 개념으로, 우리는 내면의 대상 관계를 외부에 투사하고, 상대방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무의식적으로 유도한다.

민수가 위로했다. "그냥 운이 나빴나 보죠."

"아니야." 지영이 고개를 저었다. "이쯤 되면 문제는 그들이 아니라 나한테 있는 거야. 왜 나는 늘 감정 표현에 인색한 남자들한테만 끌릴까?"

도서관, 영어와의 첫 대면: 언어적 외상

다음 날 아침 9시, 도서관 4층 정신분석 자료실.

프로이트 전집이 있는 서가 앞에 섰다.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제임스 스트레이치(James Strachey)가 번역한 24권. 검은색 양장본이 위압적으로 늘어서 있었다.

스트레이치의 번역은 논란이 많다. 그는 프로이트의 일상적인 독일어를 의학적 영어로 바꿨다. 'Seele'(영혼)을 'mind'(정신)로, 'Ich'(나)를 'ego'(자아)로. 이 과정에서 프로이트의 인문학적 깊이가 과학적 차가움으로 변했다.

Volume XIV를 뽑았다. 243페이지. 'Mourning and Melancholia'는 1917년 작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상실과 죽음이 유럽을 뒤덮던 시기.

첫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Mourning is regularly the reaction to the loss of a loved person, or to the loss of some abstraction which has taken the place of one, such as one's country, liberty, an ideal, and so on."


애도와 멜랑콜리아: 상실의 정신병리학


프로이트는 애도(Trauer)와 멜랑콜리아(Melancholie)를 구분한다:

애도는 정상적 과정이다:

대상 상실을 의식적으로 안다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이 작동한다


시간이 지나면 리비도를 철회한다


새로운 대상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멜랑콜리아는 병리적이다:

무엇을 잃었는지 의식적으로 모른다


자아가 대상과 동일시된다


자기비난과 자기처벌이 나타난다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 위에 드리운다"


100년 전 빈의 이야기 - 도라를 만나다: 전이의 발견


저녁이 되어서야 도라 케이스를 펼쳤다. 이번엔 번역본을 먼저 읽기로 했다. 영어로 바로 읽기엔 너무 벅찼다.

1900년, 오스트리아 빈. 베르크가세 19번지.

프로이트의 진료실. 붉은 벨벳 소파, 은은한 가스등, 고대 유물들이 가득한 공간. 18세 소녀 '도라'(본명: 이다 바우어)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왔다.

도라 케이스는 정신분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패 사례다. 프로이트는 이 실패를 통해 전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도라의 증상:

신경성 기침 (tussis nervosa)


실성증 (aphonia)


편두통


우울증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더 복잡했다.

관계의 사각형:

도라의 아버지 ↔ K부인 (불륜)


K씨 → 도라 (성적 접근)


도라 → K부인 (동일시와 욕망)


프로이트는 도라가 K씨를 거부하면서도 끊임없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주목했다. 더 깊이 분석하자, 복잡한 전이가 드러났다:

아버지에 대한 전이: K씨는 아버지의 대체물


K부인에 대한 동일시: 여성성의 모델


프로이트에 대한 전이: 또 다른 아버지 형상


도라는 11주 만에 치료를 중단했다. 프로이트는 나중에 깨달았다. 그가 전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것을.


지영의 깨달음: 아버지 콤플렉스의 재발견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

다음 날 스터디 모임에서 지영이 도라 케이스를 읽고 소리쳤다.

"도라가 K씨한테 아버지를 투사한 것처럼, 나도 남자친구들한테 누군가를 투사하고 있는 거야!"

"누구를?" 수진이 물었다.

지영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빠..."

이것은 프로이트의 '아버지 콤플렉스(Vaterkomplex)'다. 융이 발전시킨 개념이지만, 근원은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우리 아빠는 의사였어. 늘 바쁘셨고, 감정 표현을 안 하셨어. 칭찬도, 혼내는 것도 거의 없었지. 그냥... 없는 사람 같았어."

이것은 위니컷(Winnicott)이 말한 '정서적으로 부재한 부모(emotionally absent parent)'다. 물리적으로는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없는 부모. 아이는 이런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평생 노력한다.

지영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초등학교 때 학예회가 있었는데, 아빠가 오신다고 했어. 난 주인공이었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어. 근데..."

"안 오셨구나." 내가 말했다.

"응급환자가 있었대. 그 후로도 계속 그랬어. 졸업식, 생일, 중요한 날마다 아빠는 없었어."

이제 모든 게 이해됐다. 지영이 감정 표현 없는 남자들에게 끌리는 이유. 그들에게서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려고 계속 시도하는 이유.

팀장님이 무서운 민수의 이야기: 전이 신경증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조용히 듣고 있던 28살 민수가 입을 열었다. 대기업 다니다가 정신분석을 공부하러 온 그였다.

"회사 팀장님이 정말 무서웠어요. 객관적으로는 좋은 상사였는데, 저만 그 분 앞에서 목소리가 떨렸어요."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전이 신경증(Übertragungsneurose)'이다. 과거의 신경증적 패턴이 현재 관계에서 재현되는 것.

민수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했다.

"'민수 씨, 잠깐 볼까요?'라고 부르시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회의 시간이 다가오면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발표하는 날이면 전날 밤에 잠을 못 잤죠."

이것은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이다. 실제 위험이 아니라, 상상된 위험에 대한 불안.

민수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교감이었다. 엄격하고 완벽주의적이었다. 집에서도 학교처럼 행동했다.

"팀장님의 나이, 체격, 목소리, 심지어 실수를 지적할 때의 표정까지 아버지와 똑같았어요. 전 팀장님을 보는 게 아니라, 팀장님을 통해 아버지를 보고 있었던 거예요."


런던의 벤치 이야기: 이행 대상과 전이


최 교수가 다음 수업에서 소개한 사례는 더욱 흥미로웠다.

"조안 시밍턴과 네빌 시밍턴의 『윌프레드 비온 입문』에 나오는 사례입니다."

비온(Bion)은 클라인의 제자로, 컨테이닝(containing)과 피컨테인드(contained) 개념을 발전시켰다.

최 교수가 책을 펼쳤다.

"35세 런던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정신분석 상담이 끝나면 늘 특이한 행동을 했습니다."

이것은 '행동화(acting out)'의 사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

"상담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분석가의 집 근처 공원으로 갔습니다. 그곳의 낡은 나무 벤치에 앉아서 테스코에서 산 샌드위치를 먹었죠."

"한겨울에도, 비가 와도, 심지어 눈이 와도 그랬습니다."

이것은 위니컷의 '이행 대상(transitional object)' 개념과 연결된다. 아이가 엄마와 분리될 때 사용하는 담요나 인형처럼, 성인도 분리 불안을 달래는 대상을 만든다.

"더 주목할 만한 건 상담이 끝날 때의 행동이었습니다. 50분 상담이 끝나갈 때면 안절부절못했죠. 가방을 정리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고, 일어서다가 다시 앉고, 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이것은 '분리 불안(separation anxiety)'의 표현이다.

최 교수가 안경을 벗고 학생들을 둘러봤다.

"분석가는 이런 패턴을 관찰하고 중요한 해석을 했습니다. 그 벤치가 무엇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의 무릎이었습니다."


벤치가 들려준 진실: 원초적 장면의 재연


최 교수가 설명을 이어갔다.

"이 여성은 워킹맘의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늘 바빴고, 충분한 스킨십을 주지 못했죠. 다섯 살 꼬마는 매일 현관 앞에서 엄마를 기다렸지만, 엄마는 피곤하다며 금세 그녀를 내려놓았습니다."

이것은 보울비(Bowlby)의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으로 설명된다. 초기 애착 경험이 평생의 관계 패턴을 결정한다.

"그게 바로 전이의 힘입니다. 의식적으로는 모르지만, 무의식은 여전히 그 결핍을 채우려고 합니다."

최 교수가 칠판에 그림을 그렸다.

전이의 구조: 과거의 관계 → 현재의 대상 엄마 → 분석가 엄마의 무릎 → 벤치 분리 불안 → 상담 종료 시 행동

"상담실을 떠나기 싫어하는 것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었고, 벤치에서 먹는 것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환상을 느끼는 것이었죠."

영어 공포증의 근원: 언어적 외상

"선배님은 왜 영어를 그렇게 무서워하세요?"

스터디가 끝나고 카페에서 수진이 물었다.

"모르겠어. 그냥 어릴 때부터..."

"정확히 언제부터요? 기억나는 첫 순간이 있을 거예요."

이것은 프로이트의 '스크린 기억(screen memory)' 탐색이다. 표면적 기억 뒤에 숨은 진짜 기억을 찾는 것.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갑자기 선명하게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영어 시간.

김 선생님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교과서를 읽으라고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The weather was... ex-cep-tion-ally..."

"박수!" 선생님이 갑자기 외쳤다.

반 전체가 박수를 쳤다. 하지만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비웃음이었다.

이것은 '외상적 굴욕(traumatic humiliation)'이다. 자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의 경험.

"여러분, 홍 군처럼 읽으면 안 됩니다. 발음이 완전히 틀렸어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40명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누군가 킥킥거렸다.

이것은 사르트르(Sartre)가 말한 '시선의 지옥'이다. 타자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는 경험.

그 후로 나는 영어 시간마다 고개를 숙였다.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선생님이 지목할까 봐 두려웠다.

"그게 트라우마가 된 거네요." 수진이 말했다.

"그것도 전이예요. 영어 자체가 아니라, 영어를 통해 그때의 굴욕을 계속 재경험하는 거죠."


번역기의 배신과 깨달음: 구강기적 은유


2주가 지났다. 에세이 초안을 최 교수에게 보여줬다.

최 교수가 읽더니 한숨을 쉬었다.

"홍 선생님, 이거 번역기 썼죠?"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보세요. 'object-cathexis'를 '대상 카텍시스'라고 썼네요."

카텍시스(cathexis)는 스트레이치가 만든 신조어다. 프로이트의 'Besetzung'(점령, 투자)을 그리스어로 바꾼 것. 한국에서는 '리비도 투여' 또는 '대상 집중'으로 번역한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장입니다." 최 교수가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The shadow of the object fell upon the ego'를 '대상의 그림자가 자아 위에 떨어졌다'고 번역했는데..."

"틀렸나요?"

"fell upon은 단순히 '떨어지다'가 아니라 '드리우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이것은 프로이트의 시적 언어다. 그는 과학자이면서 문학가였다. 1930년 괴테 문학상을 받았을 정도로.

최 교수가 다른 문장을 가리켰다.

"'The ego wishes to incorporate this object into itself.' 이걸 '자아는 이 대상을 자신 안으로 통합하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incorporate는 여기서 '섭취하다', '먹어치우다'는 의미예요."

순간 전율이 흘렀다.

"먹어치운다고요?"

"네. 프로이트는 구강기적 은유를 사용한 겁니다. 상실한 대상을 먹어치워서 자기 일부로 만든다는 거죠."

이것은 '내사(introjection)'의 메커니즘이다. 아브라함(Abraham)이 발전시킨 개념으로,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을 심리적으로 '먹어치워' 내면화한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홍 부장'이라는 정체성을 먹어치워서, 아직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집단 전이 분석: 우리 모두의 벤치


스터디 모임이 점점 집단 상담처럼 변해갔다.

이것은 얄롬(Yalom)이 말한 '집단 정신치료의 치료 요인들'이 작동하는 것이었다:

보편성(universality):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이타주의(altruism): 서로 돕는 기쁨


대인관계 학습(interpersonal learning): 관계 패턴 인식


카타르시스(catharsis): 감정의 방출


"우리 각자의 '벤치'가 뭔지 찾아보자." 지영이 제안했다.

민수가 먼저 말했다.

"제 벤치는... 성과 평가서예요. A+를 받아도 불안해요. 아버지가 '겨우 이 정도?'라고 하실 것 같아서."

이것은 '초자아의 가혹함(severity of superego)'이다. 내면화된 부모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비판한다.

수진이 이어받았다.

"저는 학점이요. 4.5 만점에 4.3인데도 부족하다고 느껴요. 엄마가 늘 '넌 똑똑하니까 뭐든 할 수 있어'라고 했는데, 그 기대를 못 채울까 봐 무서워요."

이것은 '이상 자아(ideal ego)'와의 간극이 만드는 불안이다.

지영이 말했다.

"제 벤치는 차가운 남자들이에요. 아빠처럼 감정 표현 안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못 받은 아빠의 사랑을 받으려고 계속 시도하는 거죠."

내 차례였다.

"나는... 회사 건물이야.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뛰어. 25년간의 내가 아직 거기 있는 것 같아서."

프로이트 원서와의 사투: 언어의 정신분석

3주차, 드디어 원서를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In mourning it is the world which has become poor and empty; in melancholia it is the ego itself."

이 문장을 읽는데 10분이 걸렸다. 하지만 이해했을 때의 전율은 잊을 수 없다.

'애도에서는 세계가 가난하고 공허해지지만, 멜랑콜리아에서는 자아 자체가 그렇게 된다.'

이것은 나르시시즘적 동일시의 결과다. 대상을 잃으면서 자아도 함께 잃는다.

퇴직 후 내가 느낀 공허함이 정확히 이거였다. 세계는 그대로인데, 내 안이 텅 빈 것 같았던 그 느낌.

"The complex of melancholia behaves like an open wound."

'멜랑콜리아의 복합체는 열린 상처처럼 행동한다.'

프로이트는 의학적 은유를 자주 사용했다. 신경학자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열린 상처는 계속 에너지를 소모한다. 멜랑콜리아도 마찬가지다. 리비도가 계속 빠져나간다.

그렇다. 내 안의 '홍 부장'은 아직도 열린 상처였다.


전이 해석의 충격: 영어의 이중 의미


4주차 수업, 최 교수가 충격적인 해석을 했다.

"홍 선생님, 영어 공포증도 전이의 일종입니다."

"영어가요?"

"네. 영어는 당신에게 무엇을 상징하나요?"

나는 생각했다.

"권위... 아니, 평가받는 것?"

"맞습니다. 영어는 당신이 평가받고 굴욕당했던 순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영어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거죠."

이것은 '조건화된 정서 반응(conditioned emotional response)'이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듯, 나는 영어에 불안을 느낀다.

최 교수가 칠판에 썼다.

영어의 이중 의미:

의식: 지식, 능력, 글로벌 역량


무의식: 굴욕, 무능, 배제


"하지만 동시에 영어는 지식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영어를 두려워하면서도 정복하고 싶어 하죠."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양가감정(ambivalence)'이다. 사랑과 증오가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

정확했다. 나는 영어를 무서워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에세이 쓰기 - 전이와 애도의 만남: 자기분석


드디어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제목: "Transference in Mourning: A Personal Analysis of Post-Retirement Depression" (애도 속의 전이: 퇴직 후 우울에 대한 개인적 분석)

이것은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시도한 자기분석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었다.

서론을 이렇게 시작했다:

"I lost my job, but what did I really lose? Freud distinguishes between mourning and melancholia. In mourning, we know what we have lost. In melancholia, the loss remains unconscious."

(나는 직장을 잃었다. 하지만 정말로 잃은 것은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아를 구분한다. 애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지 안다. 멜랑콜리아에서 그 상실은 무의식적이다.)

그리고 전이 개념을 연결했다:

"I am not just mourning the loss of my job. I am transferring my identity as 'Manager Hong' onto every situation. When I enter this graduate school, I unconsciously expect to be 'Manager Hong' again."

(나는 단순히 직장을 애도하는 게 아니다. 나는 '홍 부장'이라는 정체성을 모든 상황에 전이하고 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도 무의식적으로 다시 '홍 부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동기들의 사례 분석: 전이의 다양한 형태

에세이에 동기들의 사례도 포함시켰다.

"Case 1: A 32-year-old woman repeatedly chooses emotionally unavailable partners, transferring her relationship with her absent father onto each new relationship."

지영의 사례는 '반복적 대상 선택(repetitive object choice)'의 예시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초기 대상 관계를 평생 반복한다고 했다.

"Case 2: A 28-year-old man experiences severe anxiety with authority figures, transferring his fear of his critical father onto his supervisor."

민수의 사례는 '권위 전이(authority transference)'다. 초자아의 형성과 관련이 있다.

"Case 3: A 35-year-old woman sits on a cold bench after therapy, using it as a transitional object representing the mother's lap she never had."

런던 여성의 사례는 '모성 전이(maternal transference)'와 이행 현상의 결합이다.


발표 날의 떨림: 전이의 재연과 극복


발표 날이 왔다.

강의실 앞에 섰다. 손에 든 원고가 떨렸다. 고등학교 영어 시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신체화(somatization)'다. 정신적 불안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

심호흡을 했다. '이건 그때가 아니야. 지금은 다르다.'

이것은 '현실 검증(reality testing)'이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자아의 기능.

"Today, I want to talk about transference in our daily lives."

목소리가 떨렸지만 계속했다.

"We all transfer. We project our past onto our present. The question is: are we aware of it?"

발표를 진행하면서 점점 목소리가 안정됐다. 영어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내용은 진심이었다.

"Transference is not a pathology. It is how we relate. But when we are unconscious of it, we become prisoners of our past."


최 교수의 평가: 통찰을 통한 치유


발표가 끝나고 최 교수가 평가했다.

"홍 선생님, 영어는 완벽하지 않지만, 전이에 대한 이해는 매우 깊습니다."

최 교수가 미소 지었다.

"특히 자신의 영어 공포증을 전이로 분석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계속했다.

"발표하는 동안 당신이 과거의 굴욕을 현재에서 극복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신분석적 치유죠."

이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작업을 통한 극복(working through)'이다. 단순한 통찰이 아니라, 반복적 경험을 통한 극복.

A-를 받았다.

영어 때문에 완벽한 A는 아니었지만, 50대에 받는 A-는 20대 때 받았을 어떤 성적보다도 값졌다.


지영의 새로운 시작: 전이 인식을 통한 변화


학기가 끝날 무렵, 지영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저 새로운 사람 만나기 시작했어요."

"또 그런 타입?" 수진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니, 이번엔 달라. 감정 표현을 너무 잘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야."

지영이 웃었다.

"처음엔 정말 어색했어. '사랑해', '보고 싶어' 이런 말을 자주 하니까. 예전 같으면 도망갔을 거야."

"그런데?" 내가 물었다.

"이제는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보려고 노력해. 아빠가 아니라."

이것은 '전이 해결(resolution of transference)'의 시작이다.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능력.

민수의 결정: 거짓 자기에서 진짜 자기로

민수도 큰 결정을 내렸다.

"회사 그만뒀어요."

모두가 놀랐다.

"왜? 대기업인데."

"팀장님이 아버지가 아니란 걸 알게 되니까,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더라고요."

민수가 설명했다.

"전 계속 팀장님한테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팀장님은 팀장님이고, 아버지는 아버지예요. 이제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요."

이것은 위니컷이 말한 '거짓 자기(false self)'에서 '진짜 자기(true self)'로의 전환이다.


런던 여성의 변화: 내재화된 좋은 대상


최 교수가 후일담을 들려줬다.

"그 런던 여성 말입니다. 벤치가 엄마 무릎을 상징한다는 걸 깨달은 후 어떻게 됐을까요?"

학생들이 궁금해했다.

"처음엔 격렬하게 부정했답니다. '35살 성인이 무슨 엄마 무릎이냐'고. 하지만 점차 자신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죠."

이것은 '통찰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insight)'이다. 무의식적 내용이 의식화되는 것에 대한 방어.

최 교수가 책을 펼쳤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제 벤치가 필요 없어요. 제 안에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으니까요.'"

이것은 '내재화된 좋은 대상(internalized good object)'의 형성이다. 외부 대상에 대한 의존에서 내면의 자원으로의 전환.

나의 영어, 나의 전이: 새로운 관계

학기가 끝나갈 무렵, 나는 영어와 조금 다른 관계를 맺게 됐다.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문법도 틀리고 발음도 어색하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굴욕이 아니라는 걸 안다.

"선배님 영어가 좋아요." 지민이가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

"진짜예요. 화려하지 않지만 솔직해요. 꾸미지 않고 본질만 말하잖아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 영어는 '홍 부장'의 영어가 아니었다. 권위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았다. 그냥 50대 대학원생의 솔직한 영어였다.

이것은 '진정성(authenticity)'이다. 가면을 벗고 진짜 자기를 드러내는 것.

우리 모두의 전이: 인간 관계의 본질

마지막 스터디 모임에서 우리는 각자의 전이를 정리했다.

지영: "저는 아빠를 찾고 있었어요. 모든 연애에서." 민수: "전 아버지의 인정을 받으려고 했어요. 모든 상사에게서." 수진: "저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했어요. 모든 시험에서." 나: "나는 '홍 부장'을 유지하려고 했어. 퇴직 후에도."

그리고 우리는 깨달았다.

전이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관계 맺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그것을 반복할 운명이다."

라캉은 덧붙인다: "반복은 실패한 만남의 재연이다."


자유의 시작


지금은 새벽 2시.

다음 학기 준비를 하고 있다. 라캉의 전이 개념을 다룬다고 한다. 프랑스어 원서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이해해야 한다.

전이 위에 전이 위에 전이.

언어의 전이, 개념의 전이, 관계의 전이.

하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내가 영어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알았고, 지영이 왜 같은 남자를 만나는지 알았고, 민수가 왜 팀장을 무서워하는지 알았고, 런던 여성이 왜 벤치에 앉는지 알았다.

알아차리는 순간, 자유가 시작된다.

프로이트는 말했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이드가 있던 곳에 자아가 오게 하는 것이다(Wo Es war, soll Ich werden)."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의식화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포로에서 현재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휴대폰이 울렸다. 스터디 단톡방이었다.

"다들 자요? 전이 과제 너무 어려워요 ㅠㅠ" - 지영 "저도 못 자고 있어요.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개념이 어려워요." - 민수 "전이 속의 전이를 영어로 쓰려니 머리가..." - 수진 "우리가 지금 이 대화에도 뭔가 전이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 나 "ㅋㅋㅋ 맞아요. 우리 서로한테 가족을 전이하고 있는지도." - 지영

그렇다. 우리는 서로에게도 무언가를 전이한다.

이것은 코헛(Kohut)이 말한 '자기대상 전이(selfobject transference)'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안다.

그리고 아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C'est le début de la liberté." (그것이 자유의 시작이다.)

세 번째로 배운 프랑스어다. 라캉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정신분석은 우리를 완전히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묶여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적중률 70%. 전이를 알아차릴 확률.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하다.


"반복은 기억하지 못하는 방식의 기억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전이는 사랑이다. 그러나 잘못된 주소로 보낸 사랑이다." - 자크 라캉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찾고 있다. 문제는 현재에서 과거를 찾는 것이다." - 50대 정신분석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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