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간 공감이 어려운 진짜 이유

by 홍종민

왜 우리는 가족에게만 화를 낼까? 직장에서는 참을성 있고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 집에 오면 돌변한다. 남편에게 짜증내고, 아이들에게 소리지르고, 부모에게 날카롭게 대답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인데 왜 그럴까? 영화 '기생충'의 기택 가족을 보면 답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은 전혀 몰랐다. 정혜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일수록 공감에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정혜신, 2018: 236)고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서로를 가장 많이 상처주고 있었던 거다.


기택 가족의 착각, 우리는 서로를 안다는 믿음


기택과 충숙, 기우와 기정. 이 가족은 반지하에서 함께 살며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피자 상자를 접으며 대화하고, 박 사장 가족을 속이기 위해 완벽한 호흡을 보였다. 하지만 관객들은 몰랐겠지만, 이들은 이미 서로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기택이 느끼는 굴욕감을 가족들은 몰랐고, 기우의 절망을 아버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 욕구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왜 가족 간에는 그 공급이 이렇게 어려울까?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이론으로 보면 명확하다. 가족은 서로에게 가장 강력한 자기대상이 되어야 하는 존재들이다. 자기대상이란 내 자존감을 떠받쳐주는 사람을 뜻한다. 문제는 그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다는 것이다.

기택은 아들 기우가 자신을 존경해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기우는 아버지를 실패한 사람으로 봤다. 기우는 가족들이 자신의 꿈을 지지해주기를 바랐지만, 가족들은 현실적인 조언만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자기대상이 되지 못한 거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고, 더 쉽게 실망하게 된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가족들도 똑같다. "우리 남편은 나를 전혀 이해 못 해요", "우리 애는 맨날 저한테만 짜증을 내요". 그게 바로 가족의 역설이다.

영화 속 기택 가족이 박 사장네 집에서 각자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완벽한 팀워크를 보인 건 아이러니다. 남남인 박 사장 가족에게는 완벽한 공감 능력을 발휘하면서, 정작 서로에게는 그러지 못했다는 거다. 외부인에게는 기대가 적어서 관대하지만, 가족에게는 기대가 커서 인색하다. 일종의 법칙이다.


82년생 김지영의 고립,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몰이해


기택 가족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족 내 공감 실패를 보여주는 인물이 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김지영이다. 김지영은 남편 대현과 딸 아영, 그리고 친정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누구도 진짜 김지영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페어베언의 내적 대상관계 이론으로 보면 더 명확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 구성원들의 기대와 역할을 내면화한다. 김지영에게 가족들은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 되기를 요구했다. 문제는 김지영 자신의 진짜 욕구는 그 어떤 역할에도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점점 자기 자신과 멀어져갔다.

남편 대현은 김지영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김지영이 느끼는 답답함과 절망은 전혀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김지영이 이상한 행동을 보일 때도 "스트레스 받지 마"라는 말로 넘어가려 했다. 정혜신의 표현을 빌리면 "옆집 사는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 있게 대해도 내 배우자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정혜신, 2018: 236)는 말이 딱 맞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상대방의 변화나 고통을 놓친다. 김지영의 엄마도, 남편도, 심지어 김지영 자신도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너무 늦었지만 말이다.

볼비의 애착 이론으로 보면 김지영은 안전한 애착 관계를 맺지 못한 상태였다. 가족들과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었지만 정서적으로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던 거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빌려서라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다. 그게 김지영이 찾은 마지막 방법이었다.


가족 공감, 가장 어렵지만 포기할 수 없는 숙제


그럼 가족 간의 진짜 공감은 불가능한 걸까? 그렇지 않다.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게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를 자동으로 이해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가족일수록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택 가족이 마지막에 뿔뿔이 흩어진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기택이 아들의 꿈을 조롱하지 않고 진심으로 들어줬다면? 기우가 아버지의 굴욕감을 알아차리고 위로해줬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김지영도 마찬가지다. 만약 남편 대현이 진짜 김지영의 마음에 귀 기울였다면, 김지영도 자신의 고통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정혜신은 "서로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지겨워하지 않고 비난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꺼이 공급하며 공급받는 일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동력을 마련하는 일이다"(정혜신, 2018: 237)라고 했다. 가족이야말로 이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실패하기 쉬운 사람들이기도 하다.

가족 간의 공감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첫째는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다. "가족이니까 당연히 알아줄 거야"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둘째는 진짜 관심을 갖는 것이다. 매일 보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까지 매일 보는 건 아니다. 셋째는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다. 조언하려 들지 말고, 고쳐주려 들지 말고, 그냥 들어주면 된다.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그 관계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 기택 가족처럼 서로를 상처주며 살 수도 있고, 진짜 서로를 이해하며 살 수도 있다.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따뜻할 수 있다면, 그게 진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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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정혜신(2018). 당신이 옳다. 서울: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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