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이 되지 않고 살아남는 법

by 홍종민

상담실에서 만난 한 직장인이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저는 왜 맨날 저런 상사들만 만날까요? 이번엔 정말 다를 줄 알았는데..." 그 순간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일라이가 떠올랐다. 석유왕 다니엘 플레인뷰 앞에서 굽신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던 그 모습 말이다. 일라이는 다니엘에게 인정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볼링핀처럼 맞아 죽었다. 왜 그럴까?

둘의 공통점은 명확했다. 갑을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스스로를 더욱 투명하게 만들어가고 있었다는 거다. 정혜신은 "갑과 을 같은 사회적 관계로 너와 나의 관계 전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인지할 수 있어도 갑을 관계를 갑갑의 관계로 바꿀 수 있다"(정혜신, 2018: 210).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과연 갑질이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을인 내가 진짜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회피와 충성, 두 얼굴의 자기 지움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일라이를 자세히 보면, 그는 다니엘을 대하는 방식을 극적으로 바꾸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종교인이라는 권위로 다니엘과 맞서려 하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굴복하며 자신의 신앙까지 포기한다. 겉으로는 정반대의 태도 같지만, 사실은 둘 다 같은 패턴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다니엘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하는 거다.

칼 융이 말한 '페르소나'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페르소나란 사회적 가면을 뜻하는데, 일라이는 상황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쓸 뿐 진짜 자신은 계속 숨기고 있다. 종교인이라는 가면을 쓸 때든, 굴복하는 신도라는 가면을 쓸 때든, 그의 진짜 욕망과 감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다니엘은 그런 일라이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냥 도구일 뿐이다.

멜라니 클라인의 '분열-편집적 자리' 개념으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일라이는 다니엘을 절대 악으로, 자신을 절대 선으로 나누는 원시적 사고에 빠져 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맞서거나 아니면 완전히 굴복하거나, 극단적인 선택만 반복한다. 중간 지점에서 자신을 지키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성숙한 방법을 찾지 못하는 거다.

<기생충>의 기택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박사장 가족에게 발각되기 전까지는 완벽한 하인 역할을 연기한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은 철저히 숨기고, 박사장이 원하는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다가 모든 게 드러나는 순간, 극단적인 폭력으로 폭발한다. 일라이처럼 중간 지점이 없다. 완전한 굴복 아니면 완전한 파괴.

실제 직장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상사 앞에서는 고개만 끄덕이다가, 뒤에서는 욕을 퍼붓는 사람들. 아니면 상사의 취미에 맞춰 등산도 가고 골프도 배우면서 완전히 맞춰주려는 사람들. 겉으로는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같다. 자신의 경계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거다.


비온이 말한 수용과 경계의 기술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 주커버그를 보자. 그는 하버드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도, 윈클보스 형제의 압박을 받아도, 자신의 경계를 확실히 지킨다. "만약 당신들이 페이스북을 발명했다면, 페이스북을 발명했을 거예요"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게 바로 건강한 경계 설정이다.

마크가 특별한 건 상대방을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는 거다. 윈클보스 형제를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자신의 관점을 명확히 표현한다. 비온이 말한 '수용' 개념이 바로 이거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입장을 이해하되, 그것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

정혜신은 "그가 나를 의식해야 그의 일방성이 주춤하기 시작한다"(정혜신, 2018: 212).라고 했다. 마크가 정확히 그걸 해내고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을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만드는 거다. 단순히 반항하거나 맞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차분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내부자들>의 안상구도 비슷한 면이 있다. 그는 검사라는 갑의 위치에 있지만, 더 큰 권력 앞에서는 을이 된다. 하지만 안상구는 완전히 굴복하지도, 무모하게 맞서지도 않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때로는 협력하는 척하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의 원칙을 지킨다.

이게 바로 성숙한 을의 태도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되, 자신의 핵심적인 가치는 포기하지 않는 것. 융이 말한 '개성화 과정'의 일부이기도 하다. 외부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면서도, 무모한 저항으로 자신을 파괴하지도 않는 균형을 찾아가는 거다.

현실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상사의 불합리한 요구에 대해 "이 부분은 이런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방법은 어떨까요?"라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 직접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표현하는 거다. 그런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상사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경계를 지키는 것이 먹고사는 길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든다. 정말 모든 상사와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같은 사이코패스적 권력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혜신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그런 사람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그 관계는 내가 먼저 끊어야 한다"(정혜신, 2018: 212).

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먹고살기 위해 참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정혜신은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끊어야 한다"(정혜신, 2018: 212).라고 단언한다. 자기 학대와 모멸을 스스로에게 강제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는 거다.

<기생충>의 기택이 결국 폭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자신을 지우며 살았다. 박사장의 "선을 넘지 마세요"라는 말에 폭발한 것도, 사실은 오랫동안 쌓인 자기 부정의 결과다. 만약 기택이 처음부터 자신의 경계를 지키며 살았다면, 그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정혜신은 "자기를 지켜내는 힘에서 만들어진다"(정혜신, 2018: 212).라고 했다. 이게 핵심이다.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더 건강하게 먹고살 수 있다는 거다. 단기적으로는 손해 같아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그게 생존 전략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마크가 결국 성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처음부터 자신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친구들의 압력에도, 투자자들의 요구에도, 자신의 핵심 가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 최대의 SNS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사람들이 결국 더 오래간다. 처음에는 "까칠하다"거나 "협조적이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사람들이 더 신뢰받는다. 왜냐하면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혜신은 "질문이 잘못됐다"(정혜신, 2018: 213).라고 말했다. "상사와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나를 잘 보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물어야 한다는 거다. 관계의 중심을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바로 성숙한 어른의 태도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정말 안 되는 관계는 과감히 끊는 용기를 갖는 것. 그때서야 우리는 진짜 갑갑의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참고문헌: 정혜신(2018). 당신이 옳다. 서울: 해냄출판사.

20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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