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를 닮아 살고 있는가

by 홍종민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윌이 숀 교수의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우는 장면을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울컥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우리는 윌의 눈물에 그토록 공감했을까? 윌의 그 순간은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 그의 내면을 지배해온 동일시 패턴이 마침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윌의 행동은 완벽하게 설명된다. 그게 바로 동일시의 힘이다. 영화는 픽션이지만, 그 속의 심리는 현실 그 자체다. 맥 윌리엄스는 "한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에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상으로 삼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함은 정신건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McWilliams, 2005: 199)라고 했다.


윌의 방어막: 버려진 아이가 선택한 생존 전략


윌의 공격적이고 거친 모습 뒤에는 복잡한 동일시의 메커니즘이 숨어있다. 그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나 폭력적인 양아버지들과는 정반대로 살아가려 했다. 하지만 동시에 거리의 거친 남자들을 닮아가며 자신을 보호해왔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역동일시'라고 부른다. 싫어하는 사람과 반대로 살려다가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비슷해지는 거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먼저 거부하고 상처주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프로이드가 발견한 방어기제 중에서 동일시는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것이다. 아이는 자신을 보호해줄 강한 존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한다. 윌에게 그 존재는 거리의 터프한 남자들이었다. 수학 천재라는 정체성조차 그에게는 위험했다. 똑똑하다는 것은 관심받는 것이고, 관심받는 것은 결국 버려지는 것이라고 학습해버린 거다.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위니코트는 '참자아'와 '거짓자아'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진짜 나와 가짜 나라는 뜻이다. 윌의 거친 모습은 철저한 거짓자아다. 진짜 윌은 수학을 사랑하고,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그 참자아는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거짓자아라는 갑옷을 입고 세상과 맞서야 했다.

영화로 쉽게 설명하면, 윌의 모든 행동은 "나는 상처받지 않을 거야"라는 무의식적 다짐에서 나온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주먹다짐을 하는 것도, 스카일라와의 관계에서 먼저 도망치려는 것도, 모두 같은 패턴이다. 상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난 내담자 중에도 윌과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상처받기 전에 먼저 벽을 쌓는 사람들이다.


전이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한 마음


숀 교수와 윌의 상담 장면들을 보면 '전이반응'의 생생한 예시를 볼 수 있다. 전이란 과거의 중요한 관계에서 느꼈던 감정을 현재의 상대에게 그대로 투사하는 현상이다. 처음에 윌은 숀을 무시하고 공격한다.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처럼 자신을 판단하고 버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차 변화가 일어난다. 숀이 자신의 아내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자, 윌은 혼란스러워한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전이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윌도 마찬가지였다. 숀이 자신을 진짜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저항했다.

맥 윌리엄스는 "전이반응에서 나타나는 동일시를 평가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이반응의 전반적인 느낌을 감지하는 것이다"(McWilliams, 2005: 201)라고 했다. 윌이 숀에게 보이는 반응들은 그가 지금까지 어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건축학개론의 승민이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서연에 대한 그의 태도에는 이상화와 좌절이 동시에 나타난다. 첫사랑에 대한 전이는 어머니에 대한 무의식적 감정들이 투사된 것이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 역시 미아에게서 자신의 꿈을 지지해줄 이상적인 존재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현실의 관계는 그의 무의식적 기대와 달랐고, 결국 이별로 이어진다. 그게 전이의 위험한 점이다. 과거의 상처를 현재에 그대로 가져와서 새로운 관계를 망쳐버리는 거다.


치유의 순간: 동일시 패턴을 깨뜨리는 용기


윌이 숀의 품에서 우는 장면은 단순한 감정 폭발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그를 지배해온 동일시 패턴이 마침내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것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숀의 말을 듣고 윌이 보이는 반응은 트라우마적 동일시에서 벗어나는 과정 그 자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나를 이해해주는 특별한 존재'가 필요하다. 심리학자 코헛은 이를 '자기대상'이라고 불렀다.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떠받쳐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숀이 바로 윌에게 그런 존재가 된 거다. 지금까지 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인 사람들을 흉내내며 살아왔지만, 숀을 통해 다른 종류의 강함을 경험하게 된다. 진정한 강함은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치유하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거다.

스코틀랜드의 정신분석학자 페어베언은 '내적 대상관계'라는 이론을 만들었다. 우리 마음속에는 과거의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대로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다. 윌의 내면에는 "나를 버리는 나쁜 대상"과 "버려지는 무력한 자아"가 고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숀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내적 대상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좋은 대상"과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자아"를 경험한 거다.

맥 윌리엄스는 "적절한 치료를 하기 위해서 치료자는 내담자가 나타내는 태도와 행동의 의미를 동일시와 관련지어 파악할 필요가 있다"(McWilliams, 2005: 200)라고 강조했다.

영화에서는 윌이 스카일라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화의 시작이다. 윌이 보여준 용기,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는 그 용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성장은 과거의 동일시 패턴을 깨뜨리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스크린 속 윌의 눈물이 우리 마음을 울린 이유는, 그 순간이 바로 우리 모두가 꿈꾸는 해방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Nancy McWilliams. (1999). Psychoanalytic Case Formulation. 권석만, 김윤희, 한수정 외 역(2005). 정신분석적 사례이해.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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