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문구점에서 본 한 장면,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아당기며 새로운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집에 똑같은 거 있잖아"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이건 달라요! 새로 나온 거예요!"라며 더욱 간절하게 매달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의 눈에서 단순한 욕심이 아닌, 뭔가 더 깊은 갈망이 느껴졌다. 마치 그 장난감이 없으면 안 될 것처럼 절박해 보였다. 일상 속에서 만난 평범한 부모와 아이의 이야기가 때로는 가장 깊은 심리적 진실을 담고 있다. "물질에, 돈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장난감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이유섭, 2018: 159). 그게 바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진실이었다.
동네에서 발견한 끝없는 갈망
동네 카페에서 자주 보는 한 중년 여성이 있다. 매번 새로운 핸드백을 들고 나타나는데, 브랜드는 달라도 비슷한 디자인의 가방들이다. 어느 날 그분이 또 다른 가방을 자랑하며 지인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 "이거 새로 샀어요. 예쁘죠?"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진짜 만족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계속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유욕은 단순히 물건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 뿌리는 훨씬 깊고 원시적이다. 그게 바로 프로이드가 말한 구순기 고착이다. 아기가 엄마 젖을 빨며 느끼는 쾌감과 안정감, 그 원초적 만족감이 평생에 걸쳐 우리를 지배한다. 당연하다.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했던 사람일수록 무언가를 소유함으로써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절대 우연이 아니다.
동네 편의점에서 일하는 청년의 관찰이 정확했다. "손님들 보면 매일 같은 걸 사는 분들이 있어요. 담배, 술, 복권... 마치 그것 없이는 하루도 못 살 것처럼요." 그가 보고 있는 건 중독이 아니다. 사실은 어머니 젖을 빨며 느꼈던 그 따뜻함과 안전함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가난이 만든 소유욕의 그림자
"그러한 소유욕 증후군은 자라나는 환경 속에서 가난의 아픔, 사랑과 관심의 부재, 대화 및 상호 교감의 부재 등에서 기인합니다"(이유섭, 2018: 160). 이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왜 어려운 시절을 겪은 사람들이 유독 소유욕이 강한지를.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는 한 아저씨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어릴 때 너무 가난했어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옷도 형이 입던 걸 물려받고...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했죠. 커서 돈 벌면 내가 원하는 건 다 사겠다고." 분명하다. 그분은 지금도 월급의 대부분을 저축하고, 가끔 자신에게 비싼 물건을 사준다. "그래야 마음이 놓여요"라는 말에서 50년 전 그 가난한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이거다.
1950년대, 196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폐허 속에서 자란 세대들에게 소유는 생존과 직결됐다. 없으면 죽는다는 공포가 몸에 배었다. 그래서 지금도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워두지 않으면 불안하고,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밤잠을 못 이룬다. 소유가 곧 사랑이고, 안전이고, 존재의 증명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본 한 기업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미 수십억 재산을 가진 사람이 탈세로 구속됐다는 소식이었다. 기자가 "왜 그런 일을?"이라고 묻자 그는 "더 가져야 안심이 된다"고 답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소유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구멍이 있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결핍이 만든 그 빈자리를 평생에 걸쳐 무언가로 메우려 하지만, 물질로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는 것이다.
진짜 필요한 건 무엇인가
"아이가 조르는 것을 사주기보다는 힘들더라도 사랑을, 관심을 아이에게 확인시켜 주는 방법을 택하십시오"(이유섭, 2018: 161). 이 조언이 모든 걸 압축해서 말해준다. 아이가 원하는 건 장난감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이미 어른이 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린 시절의 결핍을 지금 와서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먼저 자신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왜 이걸 사고 싶어 할까?" 하고 한 번만 물어보면 된다. 정말 그 물건이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채우려는 건지 구분하는 것이다. 그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한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가 힌트를 준다. "아이가 자꾸 뭔가를 사달라고 해서 고민이었는데, 어느 날 시간을 내서 같이 놀아줬더니 신기하게 조르지 않더라고요. 그제야 깨달았어요. 얘가 원한 건 물건이 아니라 엄마의 관심이었다는 걸."
어른도 마찬가지다. 진짜 필요한 건 관심과 인정이다. 가족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친구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취미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이런 작은 변화들이 소유욕을 건강한 관계욕으로 바꿔준다.
물질적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순하다.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대신 물질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작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 진심 어린 관심 하나였다.
문구점에서 봤던 그 아이도, 카페의 중년 여성도, 편의점 단골들도 모두 같은 걸 찾고 있었다. 어린 시절 충분히 받지 못했던 사랑과 관심을. 하지만 이제 알았다. 그건 사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것이라는 걸.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모든 걸 말해준다. 진짜 풍요로움은 많이 갖는 게 아니라,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게 현실이다.
이유섭(2018).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 서울: 박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