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본 한 가족의 모습,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딸이 엄마에게 무언가를 조르며 울고 있었다. "왜 동생만 사주고 나는 안 사줘요!"라며 소리치는 아이의 목소리가 마트 전체에 퍼졌다. 엄마는 당황스러워하며 "언니가 양보해야지"라고 달래려 했지만, 아이는 더욱 격렬하게 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순간 이유섭 교수가 분석한 한 사례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의 극심한 신경질과 불만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일상 속에서 만난 평범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가장 깊은 심리적 진실을 담고 있다. "사실 아이들은 형제 간, 자매 간, 사촌 간에 많은 시기, 경쟁, 적대 감정을 겪습니다"(이유섭, 2018: 130)라는 말이 바로 그런 현실을 보여준다.
동네 놀이터에서 발견한 보이지 않는 전쟁
동네 놀이터에서 자주 보는 자매가 있다. 언니는 초등학교 고학년, 동생은 저학년쯤 되어 보인다. 처음엔 평범한 자매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언니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다. 동생이 그네를 타려고 하면 언니가 먼저 달려가서 차지한다. 동생이 울면 "엄마가 왔어!"라며 재빨리 양보하는 척한다. 겉으로는 착한 언니 같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경쟁심이 숨어있었다.
형제자매 간의 갈등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깊다. 특히 큰아이가 여자이고 작은아이가 남자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남아 선호 사상이 언니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 부모는 공평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프로이드가 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사춘기에 다시 표면화되면서, 특히 여자아이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그 사랑을 독차지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그 놀이터 자매를 보면서 깨달은 건, 아이들의 경쟁은 단순한 장난감 차지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한 생존 경쟁이다. 신데렐라가 새어머니와 언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 바로 첫째 아이의 심정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에서도 이런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학원 앞에서 본 사춘기 소녀의 마음
학원가에서 자주 보는 중학생 여학생이 있다. 엄마와 함께 오는데, 항상 표정이 굳어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엄마에게 소리치는 걸 봤다. "왜 맨날 동생 얘기만 해요! 동생은 뭘 해도 귀엽다고 하면서 저는 뭐만 하면 잔소리예요!" 엄마는 당황해하며 "그런 게 아닌데..."라고 변명했지만, 아이는 이미 돌아서서 학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춘기에 들어선 소녀에게는 이런 복합 감정이 더욱 거세게 일어난다. 이유섭 교수의 말처럼 "이 시기에는 초등학교 시절 동안 잠재되어 있던 오이디푸스 감정이 다시 표면화되므로 대체적으로 여자아이는 어머니를 멸시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감정을 갖게 됩니다"(이유섭, 2018: 131). 그래서 아버지가 동생을 더 챙기는 것처럼 보이면 배신감은 더욱 커진다.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에게 들은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저도 어릴 때 남동생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부모님은 공평하게 대한다고 하셨지만, 전 그렇게 안 느껴졌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제가 너무 예민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거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아이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형제자매 경쟁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원초적 욕구와 현실 사이의 갈등이다. 특히 사춘기 여아는 아버지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면서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욱 예민해진다. 그런 마음을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는 더욱 고립감을 느낀다.
해결의 실마리는 일상 속 작은 관심에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난, 명령, 충고, 지시 등을 되도록 삼가는 것은 물론, 아이에게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고 싶은 마음을 참고 아이의 말을 잘 경청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이유섭, 2018: 131). 이 말이 핵심이다. 해답은 복잡한 심리 이론에 있는 게 아니라, 일상 속 작은 관심과 이해에서 시작된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공평한 대우가 아니라 특별한 관심이다. 동생과 똑같이 대해주는 게 아니라, 언니만의 고유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춤이든, 음악이든, 운동이든,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감정을 승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을 찾았듯이, 현실의 아이들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 마트에서 울던 그 아이도, 놀이터의 언니도, 학원 앞의 중학생도 모두 자신만의 '왕자'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 왕자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자신만의 특별함을 인정받는 것이다.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이 모든 걸 말해준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그 시작이다.
이유섭(2018). 현대인의 심리분석 에세이. 서울: 박영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