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SNS를 통해 알게 된 모임에 참석했던 지인이 불평했다. 모임에 온 사람들이 서로 자신을 드러내려고 조급해하니 대화가 지나치게 전투적이고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동창회에서는 누가 더 성공했나 경쟁하고, 직장 회식에서는 누가 더 인정받는지 겨루고, 심지어 카페에서도 누가 더 여유로운지 과시한다. 일상에서 '나 좀 봐달라' 드러내기 경쟁이 치열하다. 만성적 '인정받고 싶은 마음'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런 전투 속에서 정작 자기 자신은 사라진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으로 변신하느라 진짜 나는 어디론가 증발해버린다. 김서영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분명히 B인데, 그 사람이 A로 보인다면 지금 전이가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김서영, 2024: 44)라고 했다. 우리도 모르게 과거의 누군가가 현재의 관계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고백을 들어보자. 어린 시절 마약중독자였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결국 그와 똑같아져 있었어요." 바로 이거다. 전이의 무서운 힘이다.
정신분석에서 전이는 과거의 중요한 인물에 대한 감정을 현재 만나는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옮겨놓는 걸 뜻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처음 발견한 이 개념은 상담실을 넘어 우리 일상 곳곳에서 작동한다. 환자가 분석가를 과거의 아버지나 어머니로 보는 것처럼, 우리도 새로 만나는 사람들을 과거의 누군가로 착각한다.
프로이트는 전이를 '과거의 반복 강박'이라고 불렀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행동으로 반복하게 된다는 거다. 다우니 주니어가 바로 그랬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상처는 그의 행동 패턴이 되어 반복됐다. 감독들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동료 배우들과 경쟁할 때마다, 늘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튀어나왔다.
다우니 주니어는 아버지를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게 바로 전이의 아이러니다.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촬영 현장에서 마약을 했을 때도 "아버지처럼 되기 싫다"고 말하면서 정작 아버지와 똑같은 행동을 했다. 의식적으로는 아버지를 거부했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있었던 거다.
프로이트가 분석한 '동일시'의 메커니즘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대상을 내면에 받아들여서, 그 대상처럼 행동하게 되는 과정. 다우니 주니어는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그 미움이 오히려 아버지와의 동일시를 강화시켰다.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든 것이다.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아버지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어요. 행동도, 말투도, 심지어 분노하는 방식까지 똑같았죠." 이게 전이의 무서운 점이다. 의식적 의도와 상관없이 과거가 현재를 지배해버리는 것.
안젤리나 졸리, 어머니를 향한 복잡한 감정들
안젤리나 졸리의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배우였던 어머니 마르셀린 베르트랑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감정 때문에 그녀는 오랫동안 자해를 했다.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어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연기를 할 때마다 어머니가 되어가는 제 모습을 발견했죠."
도널드 위니코트의 이론으로 보면 졸리는 전형적인 '거짓 자기'를 발달시켰다. 위니코트에 따르면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이의 진짜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이는 어머니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어간다. 진짜 자기는 숨기고, 거짓 자기만 드러내게 되는 거다.
졸리의 어머니는 유명한 배우였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어린 졸리는 어머니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진짜 감정은 억압했다. 위니코트가 말한 '환경적 어머니'의 실패가 바로 이런 것이다. 아이가 진짜 자기를 표현할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
그 결과 졸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거짓 자기로 살았다. 연인들을 만날 때마다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빌리 밥 손튼과 함께 있을 때는 반항적인 록스타 같은 모습을, 브래드 피트와 함께 있을 때는 완벽한 어머니이자 아내의 모습을 연기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들은 모두 거짓 자기였다.
위니코트는 거짓 자기가 발달하면 '진짜 자기에 대한 갈망'이 생긴다고 했다. 졸리가 자해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거짓 자기로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진짜 자기를 찾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 거다. 자해는 그녀에게 진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김서영은 "내가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상황을 반복하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 반복을 이용하면 반복의 악순환이 지속됩니다"(김서영, 2024: 45)라고 경고했다. 졸리가 여러 번의 이혼을 겪은 것도 이런 거짓 자기의 반복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저는 항상 구원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끌렸어요. 그들을 구해주려고 했지만, 사실은 제가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그들에게서 받으려고 했던 거죠." 바로 이거다. 거짓 자기는 항상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 진짜 자기가 사랑받을 수 있는지 확신이 없으니까.
위니코트가 분석한 '중간 대상'의 개념도 여기서 중요하다. 어린 시절 엄마와 분리될 때 위안을 주는 담요나 인형처럼, 졸리에게는 연인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런 대상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진짜 자기의 발달이 멈춘다. 졸리가 관계에 중독적으로 매달렸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새로운 반복, 치유의 시작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전이는 동시에 치유의 기회이기도 하다.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했듯, 졸리가 인도주의 활동을 통해 진짜 자신을 찾았듯, 우리도 새로운 반복을 만들어갈 수 있다.
프로이트는 전이를 '기억하고, 반복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면 반복하게 되지만, 기억하게 되면 극복할 수 있다는 거다. 다우니 주니어가 변화한 계기도 바로 이런 통찰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다른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아내 수잔 다우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잔은 그를 아버지로 보지도, 반항아로 보지도 않았다. 그냥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자체로 사랑했다. 프로이트가 말한 '교정적 경험'이 바로 이런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는 것.
졸리에게는 입양한 아이들이 그런 역할을 했다. 위니코트의 이론으로 보면, 졸리는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충분히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었다. 자신이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무조건적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진짜 자기를 발견했다.
위니코트는 "진짜 자기는 창조적 놀이에서 나타난다"고 했다. 졸리가 UN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찾은 소명 의식, 그것이 바로 그녀의 진짜 자기였다. 더 이상 누군가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김서영은 "이번에는 다르게 선택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르게 반복하는 거예요. 늘 서먹한 관계였다면 이번에는 말을 붙여 볼 수도 있고, 늘 복종하기만 하는 관계였다면 이번에는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김서영, 2024: 45)라고 제안했다.
그래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과거의 누군가로 보일 때, 그 순간이 바로 기회다. 새로운 반복을 시작할 수 있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자. 과거의 나였다면 움츠러들었을 상황에서 당당하게 말해보자. 항상 거짓 자기로 살았다면 이번에는 진짜 자기를 드러내보자.
전이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유령 놀이다. 하지만 그 유령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다우니 주니어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처럼, 졸리가 거짓 자기에서 진짜 자기로 나아간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 당신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한 번 살펴보라. 혹시 과거의 누군가가 그 관계를 점령하고 있지는 않은가?
김서영(2024). 한 사람을 위한 정신분석. 서울: B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