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의 비밀

by 홍종민


한 부부가 있었다. 결혼 10년 차. 아이도 둘. 밖에서 보면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밥 때문에 이혼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작 밥 때문에. 처음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밥은 그냥 밥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각자의 어린 시절이, 결핍이, 그리고 사랑에 대한 절망적인 갈구가 담겨 있었다.

심리학자 성귀자가 상담한 A씨에게도 "하얀 쌀밥은 그냥 밥이 아닌, 자신의 '엄마'였던 것이다"(성귀자, 2023: 173)라고 했듯이 밥그릇 속에서 엄마를 찾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왜 성인이 된 후에도 한 숟가락의 밥에서 어머니를 찾으려 할까. 바로 여기에 인간 마음의 가장 깊은 비밀이 숨어 있다. 피부로 실감한다. 이게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니라는 걸.


고픈 엄마를 찾는 사람들


그 부부의 남편 A씨를 보자. 택배 일을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종교에 빠져 집을 자주 비웠다. 포교 활동으로. A씨는 동생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집에 오면 반찬이 없어 간장에 밥을 비벼 먹을 때가 많았지만 그것도 밥이 있을 때 이야기였다"(성귀자, 2023: 171). 하지만 가끔 어머니가 집에 와서 밥을 해주시는 날이면 현관부터 구수한 냄새가 났다.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갓 지은 밥에 돼지고기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가 차려진 밥상. 그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도 현관에 들어서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버릇이 생겼다. 냄새만으로도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습관은 남아있다. 집에 들어설 때마다 냄새를 맡는다. 아내가 밥을 했는지 확인하는 거다.


프로이트가 말한 전이가 바로 이런 현상이다. 어릴 때 충족되지 못한 욕구가 다른 대상에게로 옮겨가는 것. 특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결핍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A씨에게 결혼 후 아내 Y씨는 단순한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주는 이상적인 엄마였다. 식당에서 고봉밥을 가득 담아주는 Y씨의 두툼한 손을 보며 "이 여자랑 살면 밥 걱정은 안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진 게 아니라 어머니를 찾은 거였다. 바로 이거다.

한 남성이 있었다. 회사원이었다. 30대 중반. 혼자 살았다. 그런데 매일 집 근처 식당에 갔다. 같은 식당. 같은 메뉴. 된장찌개 정식. 3년간 반복했다. 왜 그럴까. 알고 보니 그 식당 사장님이 60대 여성이었다. 밥을 가득 담아주고 반찬을 계속 리필해주는 사장님. "더 먹어" "모자라면 말해"라고 말하는 목소리. 그게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일로 바빴다.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늘 혼자였다. 냉장고에 돈이 놓여 있었다. "알아서 먹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먹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식당 사장님이 어머니가 된 거였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왔어?"라고 반겨주는 목소리. 그게 안전이었다. 산소처럼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작동한다.


사랑의 언어가 다른 사람들


아내 Y씨를 보자. 6살에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할머니의 욕받이가 되어 편한 날이 없었다"(성귀자, 2023: 171-172). 어린 Y씨에게는 매 순간이 생존의 문제였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한다고 학습했다. 그래서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A씨를 만났을 때 그가 자신이 차려준 밥을 복스럽게 뚝딱 비우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왠지 모르게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A씨가 식당에 오지 않는 날이면 굶을까 봐 애가 타기도 했다"고 했으니 이미 연애가 아니라 모성애에 가까웠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였을까 Y씨에게 요리는 사랑의 표현이었다. 밥을 차려주는 것이 곧 사랑이었다.

위니코트가 말한 거짓 자아가 바로 이런 것이다. 진짜 자신의 욕구보다는 타인의 요구에 맞춰 행동하게 되는 것. Y씨가 남편을 위해 갖은 반찬을 해놓고도 "언제 오냐?" "어디 가냐?" "몇 시에 올 거냐?" 꼬치꼬치 물어댔던 것도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필요한 존재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던 거다.


한 여성이 있었다. 40대 주부. 매일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줬다. 10년간.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챙겼다. 그런데 남편은 고마워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 아냐?". 그 말에 그녀는 상처받았다. 알고 보니 그녀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바빴다. 어머니는 "엄마가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고 했다. 그녀는 혼자 밥을 차려 먹었다. 외로웠다.

성인이 된 후 남편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건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네가 외롭지 않게 해줄게". 하지만 남편은 몰랐다. 도시락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는 걸. 그래서 당연하게 여겼다. 그녀는 점점 지쳐갔다. 전쟁터였다. 매일 전투를 치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연애할 때는 듬직하고 말 없는 모습이 좋았지만 결혼 후에는 그런 A씨의 모습이 답답하고 둔하게만 느껴졌다. Y씨의 지나친 챙김이 A씨에게는 잔소리로 다가왔고 A씨의 무덤덤한 반응은 Y씨에게 거절감으로 느껴졌다. 둘 다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달랐던 거다. Y씨는 챙김으로 사랑을 표현했고 A씨는 묵묵한 존재감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하지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식이다.


이해와 순환의 시작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변화는 상대를 바꾸는 게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 부부는 1년에 걸쳐 변화했다.


첫 단계는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A씨가 처음으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집을 비우던 날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기억. 밥 냄새만 맡아도 안심이 되는 이유. Y씨는 처음 들었다. 40년간 남편이 숨겨온 이야기를. 눈물이 났다.

Y씨도 말했다. 어머니가 떠나던 날. 할머니에게 맞으면서도 밥을 차려야 했던 기억. 누군가를 챙겨야 존재 가치를 느끼는 이유. A씨는 처음 알았다. 10년간 아내가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밥이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는 걸.


두 번째 단계는 표현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A씨가 아내를 위해 산 오렌지를 말없이 툭 던지듯 건네고 가버렸을 때 Y씨는 상처받았다. "아 정말... '당신 생각해서 사 왔어.' 그 한마디면 감동해서 떡 벌어진 밥상을 차려줄 텐데"(성귀자, 2023: 173). Y씨가 원한 건 과일이 아니라 마음이었던 거다.

A씨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당신 생각해서 샀어"라는 한마디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Y씨의 표정이 달라지는 걸 봤다. 그 한마디가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다. Y씨도 변화했다. A씨가 현관에 들어서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됐다. "밥 냄새 나?"라고 먼저 물었다. A씨가 환하게 웃었다. 10년 만에 처음 보는 진짜 웃음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순환을 만드는 것이었다. 성귀자는 말했다. "내가 잘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잘 주는 것이 중요하다"(성귀자, 2023: 174). 이건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일방적인 베풂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는 순환 구조에서 나온다.

Y씨가 A씨의 내면에 있는 "고픈 엄마"를 이해하고 정성껏 밥을 차려주면 A씨도 그 마음을 알아차리고 감사를 표현하게 된다. 그러면 Y씨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받게 되고 더 기꺼이 베풀게 된다. 이런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거다. 명백하다.

그 회사원 남성도 변화했다. 3년간 다니던 식당 사장님에게 처음으로 말했다. "사장님 밥이 제일 맛있어요. 엄마 밥 같아요".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자주 와". 그는 알았다. 사장님이 진짜 엄마는 아니지만 그 따뜻함은 진짜라는 걸. 그걸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도시락 싸주던 여성도 변화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나 도시락 싸주는 거 힘들어. 하지만 당신이 고마워하면 기분이 좋아. 그러니까 가끔 고맙다고 말해줘". 남편은 처음엔 놀랐다. 하지만 이해했다. 그날부터 매일 "고마워"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당신의 식탁은 어떤가. 혹시 고픈 엄마를 찾고 있지는 않나. 아니면 누군가의 고픈 엄마가 되어주고 있지는 않나. 오늘 저녁 식탁에서 한 번 확인해보자. 밥 한 그릇에 담긴 사랑의 비밀. 결국 우리 모두는 어린 시절의 빈자리를 채우려 한다. 누군가는 음식으로 누군가는 선물로 누군가는 말로. 중요한 건 서로의 전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작은 이해가 관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변화는 온다. 반드시 온다. 거기까지다.


성귀자 외(2023). 모신엄마. 대구: 달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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