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양복을 벗지 못하는 남자
서울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 앞. 70대로 보이는 남성이 10년 된 경차에서 내린다. 경비원이 고개를 까딱하지 않는다. 옆 주차장에 벤츠가 들어서자 경비원이 허리를 굽힌다. 그 남성은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아무도 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투명인간 취급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남성이 집에 들어가서도 계속 양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오늘 거래처 미팅 잘 마쳤어"라고 말한다. 5년 전 퇴직했는데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퇴직 후에도 여전히 회사원인 척하는 사람들.
왜 그럴까. 사랑하는 아내를 속이면서까지.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체면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니다. 두려움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공포. 바로 이거다. 퇴직이 끝이 아니라 시작인데 끝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인생이 멈춰버린다.
닭장에서 모이 받아먹던 시절
동양학자 조용헌은 퇴직 후 사람들이 거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눴다. 닭-꿩-매. 첫 번째가 닭이다. 조직이라는 닭장에서 모이를 받아먹던 존재. 회사가 월급을 주고 지위를 주고 명함을 줬다. 그게 자신이었다.
한 남성이 찾아왔다. 50대 중반이었다.
"선생님, 저는 퇴직하고 나서 계속 불안해요. 친구들 만날 때마다 양복 입고 나가거든요. 퇴직한 지 3년 됐는데도요."
"왜 양복을 입으세요?"
"그냥... 친구들이 제가 뭐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서요."
"친구들이 실제로 물어본 적은 있나요?"
침묵이 흘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니요. 사실 별로 안 물어봐요. 제가 먼저 얘기하죠. 요즘 이런 일 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그럼 친구들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불안한 건 아닐까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맞아요. 제가 불안한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조용헌이 말한 닭의 특징이 정확히 이것이다. 조직 밖에서는 살 수 없다고 믿는다. 타인의 평가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직함으로 답한다. 정신분석에서는 이를 환상이라고 부른다. 타자가 나에게 원하는 모습을 내가 연기하는 것. 명함이 사라지자 자신도 사라진다.
라캉 이론으로 매칭하면 이렇다. 닭은 환상 속의 주체다. 조직이라는 상징계에서 타자의 인정을 받아먹으며 사는 존재. 예외가 없다. 멈출 수 없다.
야생에서 비리비리한 들짐승이 되다
그로부터 1년 후 또 다른 남성을 만났다. 60대 초반. 동네 치킨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퇴직하고 나서 어떠셨어요?"
"처음 1년은 진짜..."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힘드셨나 봐요."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냈다가 말아먹었어요. 퇴직금 다 날렸죠. 그때도 여전히 성공한 사업가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후엔요?"
"아파트 경비 일을 했어요. 격일제로. 서러웠죠."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신기한 건요, 그 시간을 견디고 나니까 뭔가 보이더라고요."
"뭐가 보였는데요?"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요. 요리를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회사 다닐 땐 몰랐어요."
그가 겪은 프랜차이즈 실패는 환상 유지의 시도였다. 여전히 닭이었던 것이다. 타자의 기준에 매달린 것. 경비 시절은 조용헌이 말한 꿩의 단계다. 야생으로 나와 비리비리하지만 나름 독한 들짐승이 되는 것. 환상 붕괴 후의 공백기. 상징적 죽음의 시기. 치킨집은 매의 단계다. 환상 가로지르기 후의 주체 출현. 타자가 아닌 자기 욕망을 발견한 것이다. 확실하다.
창공을 나는 맹금류가 되다
조용헌의 세 번째 단계가 매다. 운이 좋으면 창공을 날아다니는 맹금류가 된다. 조용헌은 "외물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생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사회적인 평판 역시 외물에 해당한다. 평판에 연연하다 보면 자기 삶을 놓친다"(조용헌, 2025: 274)고 했다. 바로 이거다. 외물을 내려놓고 자기 삶을 찾는 것.
또 다른 남성이 있었다. 60대 초반. 대기업 지점장 출신. 퇴직 후 1년 동안 허우적거렸다.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골프 치고 등산 다녔다. 그런데 점점 공허해졌다. 돈도 마음도 빈곤해졌다.
그는 멈췄다. 6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감감한 곳에서 벽을 더듬듯 자기 속마음을 더듬었다. 어느 날 헬스장에 갔다. 20대 때 운동을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지금은 헬스장 트레이너로 일한다. 수입은 지점장 때의 3분의 1이다. 하지만 매일 즐겁다. 70대 할머니가 처음 와서 "나도 운동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3개월 후 그 할머니가 덤벨 5kg을 들었다. 눈물이 났다.
바로 이거다. 환상 너머의 욕망. 타자가 아닌 나의 욕망. 회사 다닐 땐 닭이었다. 타자의 욕망을 살았다. 퇴직 후 1년 동안 꿩이 되었다. 공백을 견뎠다. 라캉이 말한 상징적 죽음의 시기. 그리고 매가 되었다. 진짜 욕망을 발견했다. 주체의 탄생이다.
라캉은 환상을 가로지르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필연적이라고 했다. 환상 속에 머물면 주체는 영원히 타자의 욕망을 살게 된다. 조용헌이 말한 "남의 눈치를 보는 비겁함을 극복하는 지혜는 체면과 평판에 대한 집착을 놓는 것"(조용헌, 2025: 273)이 바로 라캉의 환상 가로지르기다. 닭에서 꿩으로, 꿩에서 매로. 그 여정이다.
조용헌은 낙동강 홍수 이야기를 했다. 소와 말이 물에 떠내려갔다. 소는 네 다리를 움직이지 않고 물결에 몸을 맡겼다. 살아났다. 말은 살기 위해 다리를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탈진해서 익사했다. "사회적 비용은 체면을 차리는 비용이다. 고급 자동차를 사는 데 지출하는 돈은 거의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조용헌, 2025: 272)이라고 했다.
말은 환상을 붙잡으려는 사람이다. 체면을 지키려고 평판을 유지하려고 허우적거린다. 결국 탈진한다. 소는 환상을 내려놓은 사람이다. 물결에 몸을 맡긴다. 타인의 시선을 놓아버린다. 그렇게 살아남는다. 생존의 조건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인가
결국 퇴직 후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닭으로 남거나 꿩이 되거나 매가 되거나. 대부분은 닭으로 남으려고 발버둥친다. 새로운 조직을 찾는다.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다. 여전히 "성공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럴수록 더 공허해진다는 것이다. 닭장이 바뀌어도 여전히 닭이면 자유가 없다.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사는 것이다. 마치 산소 없는 곳에서 숨 쉬고 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용기 있는 사람은 꿩이 된다. 야생으로 나온다. 처음엔 비리비리하다. 모든 게 낯설다. 불안하다. 하지만 이 시간을 견딘다. 6개월에서 1년. 텅 빈 시간을 견딘다. 그러면 서서히 보인다.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운이 좋으면 매가 된다. 창공을 나는 맹금류.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존재. 수입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커진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즐겁다. 그게 조용헌이 말한 매의 삶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단계인가. 아직도 닭장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야생에서 비리비리하게 버티고 있는가. 혹시 이미 매가 되어 날고 있는가. 어느 단계든 괜찮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퇴직은 끝이 아니다. 시작이다. 30년 40년 동안 타인의 욕망을 살았다면 이제 자기 욕망을 살 때다. 명함이 사라졌다고 당신도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진짜 당신이 모습을 드러낼 기회다.
지금 붙잡고 있는 그 체면 그 평판 그 모든 게 정말 당신 것인지 물어보자. 회사가 준 명함이 아니라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보자. 20대 때 좋아했던 것 30대에 하고 싶었던 것 40대에 포기했던 것. 그걸 다시 꺼내보자.
당신은 닭이 아니다. 꿩도 아니다. 매다. 창공을 날 수 있는 맹금류. 다만 아직 날개를 펴지 않았을 뿐이다. 퇴직이 그 신호다. 이제 날개를 펼 시간이다. 시작이다. 지금 당장.
조용헌(2025). 팔자 고치다. 서울: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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