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미워할 때

by 홍종민

주위를 보면 너나없이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냉혹한 판사가 되어 있다. 타인의 실수는 관대하게 넘기면서도 자신의 작은 실수에는 며칠 동안 자책하는 사람들 천지다. 근래에 조용하고 빠르게 확산하는 현상 중 하나가 이런 자기 징벌이다. 전문가들의 진단 없어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는 걸 피부로 실감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같은 사람이 보여주는 이 극명한 이중성이 말이다. 김서영은 "내가 내 편인가요? 늘 내 몸과 마음이 제일 중요해요. 그런데 내 마음이 결심을 하고 나 자신에게 벌을 주기도 합니다"(김서영, 2024: 69)라고 했다. 바로 이거다. 자기 징벌이라는 이상한 현상의 핵심을 정확히 짚은 것이다.


마음속 독재자의 탄생


심리 치료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자기 수용이다. 자기 수용은 힘이 세다. 강한 위력을 지닌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만큼은 독재자가 되어 있는 거다.

내가 만난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의 실수에는 "괜찮다, 다음에 조심하자"며 따뜻하게 격려한다. 그런데 본인이 수업에서 작은 실수를 하면? 며칠 동안 자책한다. 그게 현실이다. 같은 사람 안에 두 개의 판단 기준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가 바로 이런 상태다. 어린 시절 학습한 도덕과 규범이 내면화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휘발유나 전기 없이는 자동차가 1밀리미터도 움직일 수 없듯, 이런 내적 비판자는 자기 연민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종의 법칙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초자아라는 녀석이 남에게는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24시간 가동된다. 김서영의 표현처럼 "내가 어딜가든, 어디로 숨든, 어떻게 위장하든, 늘 내 결심이 함께 있잖아요"(김서영, 2024: 69)인 것이다.

자기 징벌은 예외가 없다. 줄어들 수 없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심하다. 남들이 보기에는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가장 가혹하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절대 만족하지 않는 독재자가 살고 있는 것이다.


완벽주의라는 독


내가 아는 한 의사는 환자에게는 한없이 친절하다. "괜찮습니다, 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어요"라며 위로한다. 그런데 본인의 작은 실수에는? 극도로 가혹하다. 처방전 오타 하나 때문에 며칠 동안 자책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여기서 번쩍 깨달은 게 있다. 자기 징벌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고통만 연장할 뿐이다. 바로 여기가 포인트다.

칼융이 말한 '그림자'와의 만남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완벽하려는 의식적 자아가 불완전한 무의식적 측면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생기는 갈등인 것이다. 건설적인 반성은 "다음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묻지만, 자기 징벌은 "내가 왜 이럴까?"만 반복한다.


그게 바로 현실이다. 남에게는 부처님이지만 자신에게는 염라대왕인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책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개선 방안을 찾는 데는 집중하지 못하는 거다. 마치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것과 같다.

더 이상한 건, 이런 자기 징벌이 결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위축시키고 창의력을 떨어뜨린다. 자기 비판이 심한 사람들이 오히려 같은 실수를 반복할 확률이 높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제 해결보다는 자책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는 독이다. 적당한 양의 독은 약이 될 수 있지만, 과도한 독은 생명을 위협한다. 자기 징벌이라는 독은 이미 치사량을 넘어선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독을 마신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자기 수용이라는 해독제


이게 핵심이다. 진정한 성장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수용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자기 수용이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채찍질의 근거가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다.

친구가 실수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야단치는가? 아니다.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응원한다. 그런데 왜 자기 자신에게는 이런 친절을 베풀지 못할까? 그런 이유일까. 어린 시절부터 "완벽해야 한다"는 메시지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다.


자기 수용은 결코 자기 방종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실수를 했을 때 자책하는 대신 "아, 이런 실수도 하는구나. 다음에는 더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자기 자신을 친구처럼 대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순간 모든 게 명확해진다. 실수에 대한 관점이 180도 바뀌는 것이다. 실수는 더 이상 자책의 근거가 아니라 학습의 기회가 된다.

자기 수용을 하기 시작하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우선 스트레스가 확연히 줄어든다. 자신에게 관대해지면 남에게도 자연스럽게 관대해진다. 관계가 개선된다. 창의력이 증가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된다.


내 편이 되는 마법


김서영은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로이트는 모든 길이 어둠으로 통하는 것 같다고 말해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의 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편이 되면,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바로 이거다. 내 편이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는 것이다. 이건 자기 방종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깊은 책임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 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되 그것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내 편이 되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늘 실수했구나. 속상하겠다. 그래도 괜찮아. 내일 더 잘하면 돼."

반면 내 편이 아닌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또 실수했네. 정말 한심해. 이러니까 안 되는 거야."

어떤 말이 더 힘이 될까? 어떤 말이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까? 답은 명확하다. 따뜻한 격려가 냉혹한 비판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남에게는 격려를, 자신에게는 비판을 할까?

김서영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편이면 우리는 움직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둠은 늘 거기 있겠죠. 하지만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김서영, 2024: 71). 바로 이게 답이다.


오늘부터 내 편 되기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자신과의 대화 방식을 바꿔라. 자책하는 말 대신 격려하는 말을 하라. "왜 이럴까?" 대신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를 물어라.


둘째,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라. 화나고 속상한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아, 지금 화가 나는구나. 속상하구나"라고 받아들여라.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수용의 첫걸음이다.


셋째, 완벽함 대신 성장을 추구하라.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하라. 작은 진보도 진보다.


넷째,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주라. 친구에게 하듯이 자신에게도 따뜻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라. 친구의 실수를 용서하듯이 자신의 실수도 용서하라.


다섯째, 자기 돌봄을 실천하라. 몸과 마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제공하라. 충분한 휴식, 좋아하는 활동, 의미 있는 관계를 소중히 하라.


내 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첫걸음이다. 자기 징벌은 이제 그만. 오늘부터라도 나 자신의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보자. 그게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예외가 없다.


김서영(2024). 한 사람을 위한 정신분석. 서울: B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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